내 것들/아이들

지금은 작전중입니다.

꿈꾸는 세상살이 2007. 2. 17. 19:05
 

지금은 작전중입니다


며칠 전에 택배를 보냈는데 잘 받았다는 연락이 없다. 배달 소요기간을 넘겼고, 휴일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고 일반인처럼 물어 볼 수도 없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엄마가 벌써 세 시간 전에 문자를 보냈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제는 남편을 닦달하기 시작한다. 자식에게 물건을 보냈는데 아무런 대꾸가 없고, 문자를 보내도 응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들이 대답하지 않는 것을 낸들 어떡하란 말인가. 조금 더 기다려보라고 말을 해도 막무가내다. 말 못할 어떤 고민으로 심란하기 때문에 그러니 좀 알아보란다.  엄마는 이렇게 속이 타는데 아빠는 태평이고 항상 될대로 되라는 거냐고 묻는 데는 할 말이 없다.

 

일요일이나 쉬는 시간이면 가끔씩 전화해서 안심을 시켜주던 녀석이 연락이 없으니 답답하기가 굴뚝이다. 내 생각으로도 걱정이 되기는 매 한가지다. 그러나 나마저 조급해서는 안 되겠기에 애써 태연한 척 해본다. 

저녁 9시. 아마도 쉬는 시간일 것으로 추측되었다. 나이트에 들어가려면 11시 까지는 미리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취해 주어야하기 때문이었다. 단잠을 깨우는 것이 미안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신호는 가는데 얼른 전화를 받지 않는다. 보통 때 같았으면 그냥 끊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하는데 그때서야 받는다.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난 듯한 그림이 그려졌다.

“지금 작전중이에요.”

“응? 알았다.”

다른 말이 필요 없이 얼른 전화를 끊고 말았다. 에고!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기다려볼 것을 하고 후회를 하여도 이미 늦고 말았다. 작전이라니! 내일 모레가 설인데 전투력 측정은 아닐 것이고, 경계강화 지시라도 내려진 것일까. 여러 가지 별의 별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무장공비가 출현했던 지역이라서 경계를 더 해야만 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지형이 험하다는 것을 대변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설 명절을 일주일 앞두고 보낸 택배는 군부대 위문품이 되고 말았다. 야간 경계근무 때 행여 조는 일이 없도록 따뜻한 차를 나누어주라고 보낸 물품이었다. 사실 물건이야 잘 받으나 안 받으나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내심 바라는 것은 그것을 핑계로 아들 녀석 목소리 한 번 더 들어보고 잘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아들은 그런 마음을 알까 모른다.

한 시간이나 흘렀을까.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까는 실제상황의 작전이었단다. 뭔가 이상 징후가 포착되어 한바탕 긴장을 했다고 하였다. 왜 쟤네들은 좋은 날만 골라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내일 모레가 설 명절에다, 평창 실사 첫날인데 그렇고, 육자회담 선언문 어떻고 하는데다가 지난 번 핵실험 때도 그렇고, 대선 때마다 그렇고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방법은 그냥 항상 긴장하고 경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밖에서 보는 시각과 안에서 보는 시각은 이렇게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내가 따뜻한 아랫목을 찾을 때, 아들은 졸지 말라고 따뜻한 차를 배달하고 있었다. 내가 아들을 걱정하며 근심하고 있을 때는 반대로 국가를 걱정하며 안보를 근심하고 있었다.

 

아! 정녕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내가 너희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 땅의 부모들은 너희들에게 또 하나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낳고 키운 은공이라지만 너희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마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