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앵무새도 새는 새다. 그래서 먹이가 필요하고 성격이나 습관에 따라 사람에게 해로운 일도 한다. 너무나 시끄럽게 군다든지, 털이 날리고 냄새가 나는 것도 그렇다. 거기다가 기생충이 서식하면서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앵무새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 아주 사람 흉내를 낸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나타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그냥 사람인척 하는 행동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감정이 실리지 않은 것으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다. 그러나 앵무새가 사람이 아닌 것처럼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위치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
어떤 일에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고 다수결이나 민중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하더라고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흑색인종과 백색인종의 차별이 아주 심하던 때, 흑인이 누명을 쓰고 백인의 배심원에게 판결을 받게 되었다. 평상시 행동으로 보면 백인들은 흑인을 용서할 의사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흑인이 무죄일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없는 죄도 뒤집어씌워 죄를 만들었을 법한 상황이었다. 이때도 배심원들이 전원일치나 혹은 다수의 의견으로 죄를 부여한다면 죄인이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비록 죄가 되지 않는 것이나, 죄가 없는 경우에도 그랬다.
앵무새는 사람처럼 비쳐지는 새에 지나지 않았고,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필요없는 사회악을 죽이는 것이다. 사람의 탈을 쓴 사람이 아닌 사람, 자신의 사고나 이념이 없는 그냥 휩쓸리는 사람 등이 앵무새는 아닐까. 편협된 사고로 자기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앵무새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사고가 다르다고 하여 사람을 죽이자는 얘기는 아니다. 사람이 아닌 사람 즉 앵무새를 죽이자는 것이니, 진정한 사람의 본질을 잃지말자는 얘기와도 같은 것이다. 앵무새처럼 조잘대기만 할뿐 자신이 직접 알아보는 노력도 없고, 남의 의견에 편승하여 가기만 하는 앵무새를 죽이자는 것이다.
어른들이 만든 앵무새의 덫에서 사람들은 빠져 나와야 한다. 앵무새를 잡으려는 덫이든, 앵무새로 포장된 가식의 덫이든 벗어나야 한다. 잘못하다가는 앵무새를 잡으려다 사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