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조백헌대령이 소록도의 병원에 온 뒤로 많은 사고들이 발생하였다. 그가 병원장으로 온 것은 새로운 각오요, 목표였던 조대령에게는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확고한 국가관으로 주민을 대하며, 희망을 잃은 환자들에게는 삶을 선물하겠다던 그의 기를 꺾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섬주민들에게는 조대령도 그냥 발령받아서 왔다가는 하나의 병원장일 뿐이었다.
섬은 작고 아담하며 둘러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정이 가는 곳이었다. 오죽하면 이름마저 소록도였을까. 멀리서 보면 평화롭고 아름다운 사슴, 그러나 가까이서 바라보면 눈망울이 커서 겁이 많고 슬픔을 간직한 사슴이다. 이런 사슴이 육지를 바라보며 마음껏 뛰기를 희망할때면 눈망울이 그렁거리는, 그것도 작고 힘이 없는 작은 사슴이었다.
조대령은 처음 시작할 때의 독한 마음으로 환자들을 돌보며 열심을 내었더니 얼마 되지않아 몰라보게 달라진 소록도가 펼쳐졌다. 황무지의 척박한 토양이 잘 닦여진 길로, 손질된 밭 등으로 보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느끼게 하였다.
투철한 군인정신은 나환자들도 육지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신념을 심어주었고, 급기야 고흥군민 체육대회에서 축구우승도 만들어냈다. 하면 된다는 강한 자신감도 생겼다. 바다를 막아 농토를 늘리고 개인 소유를 일깨우는 일도 추진되었다. 그것은 강한 조수를 삽 한 자루로 버티는 대역사였다.
육지에서는 연일 대서특필이었다. 남들은 가보기도 싫어하는 소록도를 지상낙원으로 만든 것에 대한 칭찬이었다. 조대령은 이미 영웅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어두운 면도 있었으니, 소록도 환자들과 축구시합을 할 상대가 없어졌다. 이것은 비극의 시초에 지나지 않는다. 둑이 완성되기도 전에 조대령은 섬을 떠나야 했다. 인사발령을 받은 사람이야 가면 그만이겠지만, 자신이 약속했던 지상낙원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떠나는 것은 정말 못할 일이었다. 사직서를 쓰고 남아서 둑을 완공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여건으로는 자신도 없었다.
조원장이 떠난 뒤로 3명의 원장이 바뀌었다. 그런 세월 속에서도 둑은 완성되지 못했다. 어느 날, 조원장은 늙은 촌로가 되어 돌아왔다. 비록 늙고 힘은 없었지만, 이제는 병원을 지휘할 능력도 권한도 없었지만 돌아온 것이다.
조원장은 다짐해본다. 아직까지 둑은 완성되지 못했어도, 사람으로서 사람간의 벽은 허물어버려야 한다고 되 뇌인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환자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위신을 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이 일이 진정으로 누구를 위하는 일인지 생각하여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