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영원하다.
1960년도의 미국산업은 경이로웠다. 당시 일본은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하긴 일본이 패망하고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승전국을 앞질러 갈 수 있었겠는가. 미국의 1,2,3차 산업비율은 1:3:6이었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나면서 산업구조는 조금씩 변해갔다. 공업에서 주춤거리더니 일본에게 추월당하기 시작하였고, 무역에서도 적자로 돌변하였다.
1차 산업이 없는 2차 산업은 위험한 것이며, 2차 산업이 없는 3차 산업은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언뜻 보기에 모든 산업은 결국 3차 산업으로 귀결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착시현상일 뿐이다. 산업이 단위 생산성이 높거나 부가가치가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서로가 같은 산업분류일 때에 비교대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역량을 3차 산업으로만 치중하게 된다면 곧 제조업의 공동화를 불러오고 만다. 이로써 산업간 불균형을 이루고 경제는 무너지게 마련이다.
1차 산업이나 2차 산업, 그리고 3차 산업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때 비로소 이상적인 경제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최근 미국의 산업이 세계경제의 축에서 차츰 빛을 잃고, 그 자리에 일본이 차지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양국간의 국민성에도 차이가 있다. 미국은 개인주의이면서 일본은 집단주의이다. 개인주의는 자신이 행한 것에 대한 적절한 보수를 요구하고, 그 요구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등을 돌리는 주의이다. 그러나 일본은 자신의 행동은 나를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사회나 국가를 위하여 양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일본은 개인의 이익보다는 집단의 이익이나 국가의 이익을 존중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업적이나 가치를 관철시키기보다는 공동의 이익이나 소속원들의 이익을 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정신은 자신보다는 자신이 속한 집단, 나 보다는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를 위하여 지금은 어렵더라도 나중을 도모하는 희생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공산주의식인 공동생산 공동분배와는 다른 자본주의적 집단주의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미국의 경영방식은 성과주의로써 내가 만든 현재의 성과는 지금 받아야 한다는 방식이다. 이것은 정말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뒤집어보면 아주 위험한 방식이기도 하다. 내가 성과를 얻으려면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지고 만다. 현재의 미국식 교육제도가 훌륭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초가 튼튼하고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운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가 현실과 접목되어 실용화 하는 데는 항상 헛박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이것이 미국의 대표적인 개인 성과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미국 산업의 공동화를 유발하는 한 요인이다.
반면에 일본은 이러한 기초과학을 쉽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이는 일본의 공동주의 방식으로 배려와 희생이 내포되어있는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던 세계경제 질서는 이제 일본이 쥐고 있다. 일본제일은 바로 세계제일이 되는 세상이다. 이쯤에서 일본타도를 외치는 미국이나 유럽은 그 폭을 쉽게 좁힐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거기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여있는 게 현실이다. 종업원은 이리저리 일자리를 찾아 떠돌아다녀도 경영진은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으며 군림하는 한, 미국식 경영이 다시 영화를 볼 날은 장담할 수가 없다. 그것은 산업의 공동화, 사회의 공동화를 불러오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한, 제조업은 영원할 것이다. 그 제조업이 후진국에서 영위되든 선진국에서 영위되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갈수록 품질이 우수하고 편리한 제품이 생산되는 것은 진화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형태는 변해도 산업은 계속되는 것이다.
이제 제조업이 영원하기 위하여는 각 산업간 비율이 적정해야 하며, 쉽고 편한 것만을 찾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때에 따라서는 투자도 해야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힘든 일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거기에다가 가끔씩은 개인보다는 공동의 이익을 우선하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보다 나은 품질을 갖추는 것은 제조업의 생명이다. 이것이 제조업이 살아가는 한 방편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경영의 합리화를 전제로 한다. 경영자가 만족하는데 종업원이 만족하지 못하면 그 경영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제조업도 영원하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 후세들이 살아갈 수 있다고 우리들은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