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신작리곰솔(益山新鵲里곰솔)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신작리 518번지에 약 350년이나 된 커다란 소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1967년 7월 11일에 주변 1,828㎡를 포함하여 천연기념물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망성면 신작리는 익산의 북동부에 위치하며 인근의 충남으로 통하는 접경지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으며 멀리에서도 소나무의 위용을 볼 수 있다.
신작리곰솔의 전체 높이는 10.2m, 가슴높이의 둘레가 3.45m, 밑부분의 둘레가 6.2m에 이른다. 소나무의 가지는 동서남북으로 균형 있게 뻗었으며, 전체적인 나무의 모습은 밋밋하게 오르다가 아래로 쳐져서 삿갓모양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가지의 끝부분은 다시 위로 올라가 생동감을 준다. 주변에는 보호철책이 낮게 둘러져 있으나 사람의 출입이 자유로워 경계를 구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나무는 임진왜란 때 이곳을 지나던 한 나그네가, 지형을 보더니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 심어놓은 나무라고 한다. 익산시 망성면 신작리 수월마을 주민들과 충남 논산시 강경읍 채운동 주민들은 매년 음력 섣달그믐이면 이 나무에 치성을 드리던 풍습이 있었다. 당시 주민들은 이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이 믿었던 마을의 수호신은 커다란 나무나 바위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곳에는 돌을 쌓아 정성을 드리며, 제사를 지내는 도구를 보관하거나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집을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곳을 성황당(城隍堂)이라도 하고, 지역에 따라 할미당, 천왕당, 국사당 등으로 불러왔다. 그러니까 커다란 나무의 앞에는 작은 돌탑을 쌓고, 옆에는 집을 지어 신을 모셨던 것이다. 이 성황당은 서낭당이라고 부른다. 위치로 보면 마을의 입구나 고갯마루, 또는 커다란 신작로와 샛길의 사이, 예전부터 전해오는 마을의 유래가 있는 곳 등에 설치되었다.
신작리 곰솔의 위치도 현재 거주하는 마을의 중심에서 약간 벗어나 있고, 익산에서 망성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는 곳이라 볼 수 있다.
익산구지(益山舊誌)에 보면 ‘천년송이 북일면 연주산 사곡(寺谷)에 있어 수백 년 이전부터 천년송이라고 불러왔으므로 몇 천 년이나 된 소나무인지도 모른다. 붉은 갑옷과 푸른 구레나루 수염의 용이 서린 듯하고, 호랑이가 웅크린 듯하니 우뚝 선기상은 군자의 늠름함 같다. 나뭇가지는 서린 것 같고 덮은 것 같아 그 그늘이 한 골짜기를 꽉 채웠다. 소치는 더벅머리 아이들과 나무꾼들이 더위를 피하여 쉬고 유량과 풍류객들이 모여 시를 읊고 술 마시며 노니 볼만한 곳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에는 이 신작리 곰솔이외에도 거목의 소나무들이 수 그루 더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이처럼 지역별로 특정한 구역에서 커다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살았던 곳도 제법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물론 현재까지 잘 보존된 경우는 없지만, 문헌에 그 이름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무분별한 남벌이나 산불에 의해 훼손된 것은 아닌지 생각된다.
소나무는 세계적으로 약 100 여종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북반구에서 잘 자라며 바늘모양의 뾰족한 잎을 가지고 있다. 잎은 수에 따라 보통 2엽송, 3엽송, 5엽송으로 구분되며 2~3년이 지나면 떨어져 나간다.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되어있는 소나무는 석유나 석탄의 연료사용이전에는 주요 땔감으로 사용되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나무는 해송과 확연히 구분되며, 지역별로 무리를 지어 자생한 상태로 분류하고 있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식재면적을 차지하고, 또한 나무의 개체숫자도 가장 많다. 그중에서도 태백산맥 부근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재질이 단단하고 곧게 자라는 성질이 있는데 특별히 춘양목이라 이름한다. 특별히 굵게 자라며 중심부가 황적색을 띠는 나무는 황장목이라 하여 주로 관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었다. 소나무는 장수(長壽)의 상징으로 여겨져서 십장생(十長生)에 속하며, 추운 겨울에도 눈서리를 이겨내고 항상 푸른빛을 띠므로 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우리의 애국가에도 등장할 정도로 우리와는 아주 깊은 연관이 있다.
원래 곰솔이라는 이름은 기존 재래의 소나무에 비해 잎이 딱딱하고 굵은 데에서 곰을 연상하여 붙여진 것이다. 곰솔은 주로 해안가에서 잘 자라는 특성에 따라 해송(海松)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을 살려서 바닷바람을 막는 방풍림(防風林)으로 심기도 하고, 파도를 막는 방조림(防潮林)으로 심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해수욕장이나 해변가에 많은 나무들은 이런 연유에 기인한다. 해송은 줄기의 껍질이 기존 재래소나무의 붉은색 계통에 비해 검은 색이 돋는다. 따라서 해송을 일명 흑송(黑松)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줄기의 표피는 거북이의 등처럼 두터운 딱지가 져서 쉽게 떨어져나간다.
이 신작리 곰솔과 같은 나무들은 여기저기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인근의 전주 삼천동에서도 곰솔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전주에 있는 소나무 역시 도로가 생기면서 위치를 옮겨 심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익산신작리 곰솔은 나무 자체가 크고 수형도 화려하려니와,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란 커다란 해송이라는 이유로 희귀성을 가져 천연기념물에 지정되었다. 전주 삼천동의 곰솔이 천연기념물에 지정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익산신작리 곰솔은 2007년 8월 낙뢰로 인하여 고사하였다. 따라서 더 이상 그 위용을 뽐낼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은 2008.12.15 천연기념물에서 지정 해제되었다. 그것도 인근 서천 신송리의 천연기념물이 낙뢰사고로 고사한 후 특별관리가 계획되었으나, 그 계획이 실행되기 전에 발생한 일이라고 하니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남의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된다고 하는 말이 실감나는 부분이다.
신작리곰솔이 낙뢰를 맞은 후 관계 전문가들이 대거 투입되어 긴급 복구 작업에 들어갔지만 결국 고사하고 말았다. 지금은 그 옆에 작은 자목 세 그루가 자라고 있으나, 크기가 너무 차이가 날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 인식된 곰솔의 이미지를 찾을 수가 없다. 따라서 최근에는 곰솔을 대신할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검토 중에 있다. 곰솔은 천연기념물로서 그냥 바라보는 나무가 아니라, 익산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주고 꿋꿋한 기상을 전해주는 정신적인 지주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 주민들이 제를 지내면서 가까이에 두고 싶어했던 연유는 따로 묻지 않아도 알만한 것이다.
내가 충청도 지방으로 여행을 가거나 업무상 지나갈 길이면 항상 들러서 인사를 하고 갔던 소나무인데, 이제 그 자취를 볼 수 없으니 안타까운 심정이다.
전국의 곰솔은 익산 신작리곰솔을 포함하여 모두 6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대체적으로 이들 소나무의 수령은 150년에서 600년 정도이며, 높이는 10m에서 28m에 이른다. 곰솔 이외의 소나무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백송 6그루, 반송 3그루, 기타 20그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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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6 익산투데이 게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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