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익산! 3000년 세월의 흔적

2010.01.05 아침 눈길에 공단을 둘러보았다.

꿈꾸는 세상살이 2010. 1. 5. 10:27

눈이 내렸다.

일기예보에 많은 눈이 내릴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아침 일찍 밖을 내다보니 온통 뿌연기운이 감돈다. 그렇다. 이것은 필시 눈이 많이 온 증거리라 생각하고 창문을 열어제켰다. 정말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지난 크리스마스때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라고 하더니 눈이 오지 않았었다. 그리고 비가 올 것이라고 하더니 비도 오지 않았었다. 신년이 되어서도 일기예보는 그리 잘 맞는 예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보가 아니라 뒤늦게 중계방송을 하거나 어정쩡한 멘트로 묻어가는 듯한 인상도 주었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예보대로 많은 눈이 내렸다. 창틀에 많은 눈이 쌓였음에도 창에는 얼음이 얼지 않았다. 북향한 창문 유리는 조금만 추워도 얼어있어 밖의 기온을 감지하는데 요긴한 가늠자였는데, 오늘은 얼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리 춥지 않은 날씨인듯 하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눈이 왔는데...

다른 날보다 10분은 일찍 집을 나섰다. 길이 미끄러워서가 아니다. 길이야 부지런하고 친절하신 공무원들이 제설작업을 하였을 터이니 나는 그들만 믿으면 된다. 이렇게 믿고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게 정말 좋다.

그러나 문제는 차에 쌓인 눈이다. 나는 이것을 치워야 했기때문에 조금 일찍 나선 것이다. 이렇게 서둘렀어도 눈을 치우는데 10분이 넘게 걸렸나보다. 시동을 걸어놓고 눈을 치우면서 예열을 하였지만 다른 때보다 늦게 출발한 것을 보면 눈 치우는 작업이 만만치 않은 거였나보다. 그런데도 앞차는  여자 혼자서 눈을 치우고 있다. 복장을 보아하니 출근할 폼은 아니고 게다가 아직 시동도 걸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당장 출발할 차는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왜 여자 혼자서 눈을 치우고 있을까. 남자가 출근하는데 여자가 눈을 치워주는 배려를 베푸는 것일까? 그렇다면 옷이라도 따듯하게 입고 나올 것이지...

 

눈을 다 치웠다 싶은데 벌써 주차장을 빠져 나가는 차가 있었다. 언뜻보니 동창생이다.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가라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도로에 나서니 아직 제설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믿었던 공무원들은 아마도 상황이 안좋은 곳으로 제설작업을 나갔나보다. 하긴 내가 다니는 길은 평지이니 그리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사정은 그게 아니었다. 나야 이런 날을 대비해서 걸맞는 차를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아무런 방비가 없었던 차들이었다. 그들은 조심조심 눈길을 걸어갔다. 신발도 작은 데다가 길마저 미끄러우니 다른 방법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아는 차였다면 미리 체인이라도 치고 나올일이지... 게다가 길가 양쪽에 세워놓은 차들은 그야말로 주행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었다. 버스라도 만나면 나는 서있다가 지나가야만 했다. 혹시나 미끌어질까봐 조심하는 차를 피해서 빨리 달릴 공간이 없었기때문이다.  

다른 평일에도 사고가 나는 것이야 그렇지만 오늘 같은 날 사고가 난다면 더욱 난감한 일이 되고 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출근하는 동안 교통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출근하다가 잠시 길을 돌려 공단관리사무소 마당에 들렀다. 누가 보아도 잘 가꾸어진 화단에서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침 7시 40분의 관리사무소는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손길이 눈을 쓸고 있었다. 나만 부지런한 줄 알았었는데 더 부지런한 사람도 많이 있음을 느낀다.

회사에 도착하여 정리를 하고 잠시 틈을 냈다. 공단의 풍경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지난 가을에도 낙엽드는 거리를 돌아본 적이 있었는데, 오늘 같은 날에 다시 둘러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늘 아침은 여산면에 가서 백운사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낭산면에 들러 석천대를 보고 오려하였었는데 너무 많은 눈이 내려 일정을 수정한 상태였다. 그래도 조금은 먼길에 꼬불꼬불하고 경사진 산사를 찾아가는 것은 눈길을 피하는 것이 좋을 듯해서였다.

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담너머의 설경을 보니 평화롭고 아름답게 보인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는데 어떤 회사의 정원이 이렇게 멋있었을 줄이야. 무조건 들어가니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사진기를 보여주며 사진을 찍으려한다니 무사통과다.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아도 통했나보다. 뭐가 그리 통하게 하였을까. 하얀 눈이 가슴속 답답함을 덮어 정갈하게 하였을까. 이것저것 많은 잡념을 덮어 오직 하나 순결한 마음만 남게 하였을까. 지저분한 이물질을 덮어 새하얀 세상으로 연결되게 하였을까.  

 

눈은 10cm정도가 내렸지만 기온이 영상이라 햇볕에 녹아내리기 시작하였다. 공단의 도로는 제설작업을 하지 않아 그냥 조심해서 다녀야 한다. 출근하는 차들이 반질반질하게 다져놓았다. 그러나 습기가 많은 눈이지만 기온은 영상이라서 얼지 않았고, 촉촉하게 젖은 눈길은 다행이 빙판은 아니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반질반질하지만 그래도 미끄러지지 않는 길이라서 한시름은 놓았다. 전주에서 군산에서 익산의 공단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데 사고소식이 들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넓은 길가에 별도로 만들어진 인도는 플라타너스를 가로수로 하여 작은 길을 만들어 놓았다. 혹은 답답한 울안이 싫어 고개를 내밀고 세상구경을 하는 향나무들이 눈더미를 만들어 주었다. 넓은 축구장에는 은빛 세상이 열렸다. 그 위에 내려쬐는 햇빛은 정말로 눈이 부시다. 순백이다.

지나가는 택시들이 빵빵거리며 자신을 알리고 사람들은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어색한 눈길을 보냈다. 이렇게 눈이 와서 발이 빠지고 길이 미끄러운데 한가롭게 사진이나 찍고 있는 모습이 한심해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시민들이 생활하는 공단의 사계절을 간직하고 싶었다.

내가 비록 멋있는 화보집을 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나만의 공간에서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공감하기를 기대할 것이다. 같은 도시에 살면서 같은 공단에 근무하면서, 같은 생각을 한다는것은 정말 행복한 일일 것이기때문이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활력소가 된다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을 찾아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공단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여 힘을 내라.

나도 오늘 아침 5시 15분에 일어났고, 아침 7시 50분 회사에 도착하였다. 열심히 일하고도 능력이 없어서 많은 돈은 못벌지만, 남들보다 몸은 편한 일이라서 많은 돈을 달라는 말은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고민도 있고 나름의 행복도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1월 5일 오늘 하루도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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