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익산! 3000년 세월의 흔적

22. 유구한 역사 용안현의 용안향교 대성전

꿈꾸는 세상살이 2010. 3. 3. 09:32

용안향교대성전(龍安鄕校大成殿)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교동리 163-1번지에 용안향교가 있는데, 그중 대성전 1곽에 대하여 1984년 4월 1일 문화재자료 제86호로 지정하였다. 이는 향교관리재단의 소유로 용안초등학교의 뒤편이며 용안동헌과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들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 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기능이 없어지고 제사기능만 남아 있다. 용안향교는 고려 공양왕 3년 1391년에 처음 지었으며, 현 위치에서 약 600여m 이격되어 있던 것을 조선 태조 7년 1398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또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되었다가 광무 2년 1897년에 중건되었다. 1924년에 전사재(典祀齋)가 중건되었는데, 1927년의 화재로 대성전만 남고 모든 건물이 없어지자 대성전 터 앞에 용안초등학교를 지었다. 지금도 초등학교의 정문을 지나 학교를 우측에 두고 뒤로 돌아가면 향교를 만날 수 있다.

1961년에는 유림과 지방민이 성금을 모아 현재의 위치에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을 비롯하여 여러 부속건물을 지었다. 1982년에는 다른 향교에서 볼 수 없는 충효관을 건립하고, 1985년에 대성전의 기와를 다시 잇는 번와(燔瓦)와 단청(丹靑)을 하였다. 1993년 명륜당을 중수하였으며, 1996년 대성전을 보수하였다. 1997년에는 전사재를 복원하였으며, 1998년에 다시 단청을 하였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건물이며,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또한 대성전에는 공자의 영정이 있으며,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안마당에서 대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3개로 되어있으며, 이들은 대성전 3칸에 맞춰 하나씩 배치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 그리고 송대(宋代)의 4현, 즉 주자(周子),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주희(朱熹)를 배향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 18현을 나누어 동무에는 설총(薛聰), 안향(安珦), 김굉필(金宏弼), 조광조(趙光祖), 이황(李滉), 이이(李珥),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 송준길(宋浚吉)을, 서무에는 최치원(崔致遠), 정몽주(鄭夢周), 정여창(鄭汝昌), 이언적(李彦迪), 김인후(金麟厚), 성혼(成渾), 조헌(趙憲), 송시열(宋時烈), 박세채(朴世采) 등을 배향하고 있다.

용안향교는 기존에 차지하였던 장소의 상당부분을 용안초등학교에 내어주고, 현재는 종심이 짧고 좌우 길이만 긴 형상을 하고 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자신이 배우던 곳에서 후손들이 배울 수 있도록 양보한 것도 훌륭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런 뜻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른 향교에 없는 것들이 있으니 제기(祭器) 일체와 제복(祭服)들이며, 특히 종래의 구제술병, 즉 희존(犧尊), 상존(象尊), 산뢰(山罍)가 남아있어 향교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용안초등학교 뒤의 언덕에서 마을뒷산까지의 공간에 들어선 용안향교는 외삼문과 내삼문 사이에 어떤 건물도 세우지 못할 정도로 폭이 좁다. 내삼문을 지나서 대성전 토방에 이르기까지는 높은 계단을 올라야 하며, 그 사이에 있는 마당의 폭도 좁다. 따라서 내삼문에서 대성전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으면 내삼문의 기둥에 걸려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정도이다. 그래서 용안향교 대성전의 사진은 항상 정면이 아닌 비스듬한 모습을 보여 줄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이 계단은 마치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를 연상시킨다. 언뜻 보면 산기슭 등성이에 지은 절터와도 같다.

뜰안에 아름답고 화려한 돌계단이 있는 것처럼, 용안향교에는 여러 가지 돌비석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맨 처음 홍살문이 있던 입구의 하마비와 향교 안내석부터 시작하여 돌계단까지 세기 곤란할 정도의 돌비석이 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과 향교로 들어가는 갈림길에 안내표지석이 있고, 선행찬양기금마련 기념비와 기념표지석, 단청기념비, 단청기념 표지석, 용안향교 중수비, 각종 행사 때마다 심어놓은 기념식수 기념비들, 주차장 알림비, 건물을 알리는 명패까지 크고 작은 비석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하지만 이들은 구석에 아무렇게나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일일이 가꾸고 다듬은 화단에 자리를 잡았으니 그 정성이 아름답다. 돌이 많기로 유명한 익산사람이 보아도 마치 돌정원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거기에다가 좁은 공간을 애써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아담하고 예쁘게 꾸며놓은 정원이 눈길을 끈다. 용안의 가을향기는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작은 공간이라도 그냥 헛되이 버리지 않고, 정성들여 가꾸고 다듬은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일까, 두드리고 불러야만 문을 열어주던 다른 향교와 달리 항상 문을 열어두고 무시로 출입하는 여우를 준다. 여기서는 그 흔한 견공도 찾아볼 수 없다.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까봐 멀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시끄럽다고 어른들이 나무란 때문일까. 용안향교 마당에는 가을볕 따사로운 기운이 한마당 가득하다.

부지런한 벌들과 작은 나비들은 무엇을 그리 찾고 있는지 분주하다. 혹시 꼭꼭 숨겨두었던 신학문 책들일까, 아니면 어디 두었는지 모를 공자왈 맹자왈의 명심보감일까. 나에게 물어보면 나도 거들어줄 수 있을텐데. 양지밭에 앉은 나도 어느새 학동이 되어 손에 든 책을 향해 꾸벅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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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투데이 2010.02.24 게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