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나의 주변 이야기

칼퇴근을 아시나요?

꿈꾸는 세상살이 2010. 7. 15. 09:07

칼퇴근을 아시나요?

 

어제는 월요일이라서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도서관은 월요일에 쉬는 예가 많은 기관이라서 행여 허탕칠까 염려가 되어서였다. 지난 목요일에 빌린 책을 오늘 반납하려는데, 혹시나 시간을 놓치면 다시 날을 잡아 방문하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른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근무 날을 확인하여 보았다. 마침 이번 월요일에는 근무를 하는 것으로 나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지난 번 책을 빌릴 때 확인해보니 근무를 하는 날은 저녁 9시까지 근무를 한다고 하였기에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도서관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 01분이었다. 부지런히 계단을 올라가는데 딸깍딸깍하며 내려오는 소리에 신경이 거슬렸다. 도대체 누가 이런데서 신발을 저렇게 신고 다니는지 궁금하여, 그 사람이 올 때까지 조금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 30살이 조금 넘었을까 하는 어떤 여성이 내려왔다. 그녀는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거침없이 통화를 하면서 내 앞을 지나갔다. 신발은 시원하라고 여름 샌들을 신었는데, 묶으라고 만들어놓은 끈은 묶지 않았으며 오히려 뒷쪽을 접어 신어 건들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심스럽게 걸어도 계단에서는 소리가 나게 마련인데, 까딱까딱 되는 데로 걸으니 소리가 요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혹시 나를 만나면 조금은 주의를 하면서 가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던 나는 허탈감에 빠졌고,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녀는 1층에서 지하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녀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얇은 망사도 달려있고 너덜너덜한 레이스로 장식한 치마는, 그렇다고 아주 짧은 미니는 아니었지만 무릎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치마가 나풀거렸다. 그녀는 내 앞을 지나가면서도 전혀 의식을 하지 않았고 오로지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는 개인주의형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하여 고개를 숙여 가면서까지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주시하는 것은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키도 작으면서 얼굴도 통통하고, 하얗게 드러난 장단지도 통통한 그런 여자였다. 어떤 여자인지 얼굴을 보고도 싶었지만 정말 일부러 볼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그녀가 멀어졌고, 나도 그만 방향을 틀어 2층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료실에 닿으니 출입문이 굳게 닫쳐있었다. 그리고 폐문이라는 팻말이 걸려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6시 0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나는 잠시 어떤 여자에게 한 눈을 팔았다지만, 그래도 겨우 6시 02분인데 벌써 문을 닫았다니 좀 야박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언뜻 스치는 생각에 지난 번 내가 확인한 시간은 도서관 본점의 근무시간이 오후 9시까지였고, 지점은 오후 6시까지였다는 것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었다.

 

기분이 상했다. 왜 어떤 일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분이 좋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찾아오기도 그래서 일반사무실로 향했다. 일과가 끝나면 행정사무실에서 반납이나 기증 같은 일을 대신 받아주고 있었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나는 반납할 책 3권과 기증할 책 5권을 들고 있었다. 아무리 책을 기증한다고 해도 일부러 매번 찾아오는 것도 좀 곤란하여 이렇게 오는 김에 묻어서 하려고 별렀던 참이었다. 기증하려는 책은 수필집도 있었고 시집도 있었지만, 소설책도 있어 제법 두터운 분량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무게가 나가는 책을 들고 힘들게 사무실에 들어섰다. 사무실도 이제 퇴근을 하려는지 다들 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떤 여직원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안하고 책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랬더니 반납요? 하면서 되물었다. 딱히 반납만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다시 손으로 책을 가리켰다. 그랬더니 다시 반납요? 하며 물었다. 반납도 하고 기증도 하려했으니 굳이 따진다면 여러 대답을 하기 싫어 책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 정도가 되었으면 입구에 서 있는 나에게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냥 자기 책상 앞에 서서 그렇게 묻는 것은 정말 기분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러자 다른 남자 직원이 다가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여태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었는데, 만약 말못하는 장애인이 들어왔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화가 나서 한 마디 해주었다. 내가 이 정도 하면 누군가가 와서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였고, 가만이 서서 그냥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것은 좀 그렇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자 직원은 대답대신 반납은 여기에 도서번호를 적으면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도서번호가 없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려다가 그냥 참았다. 이 책을 폐지로 팔아도 얼마는 받을 것인데, 차라리 버렸으면 버렸지 기증은 하지 않기로 순간적인 판단이 섰던 것이다. 그러나 문을 나선 나는 다시 후회를 하고 있었다. 신간 5권이면 최소 5만원은 되는데, 아깝게 왜 버리느냐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랬을 것이다. 반납할 책이면 거기에 있는 반납 장부에 기재한 후, 책을 놓고 가면 되니 그렇게 하라고 말하려고 했을 것이다. 물어보나 마나 뻔한 답이 아니겠는가.

 

나는 정작 퇴근시간이 6시 이후로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공무원 퇴근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허둥댔던 것이 우스웠다. 오늘은 은행시간에 맞춰야 하니 일찍 나서야 하고, 내일은 공무원을 만나야 하니 일찍 나서야 하고, 모레는 집안 일이 있어 일찍 나서야 하고, 다음 날을 병원에 가야 하니 일찍 나서야 하고, 그러고 보니 도대체가 일할 시간이 넉넉하지가 않음을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 12시간 이상을 근무하는데,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간다고 중간에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은 것이다. 칼출근을 하고 칼퇴근을 하면서 정년이 보장되었다가, 나중에 연금도 받는 그런 직장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는 그냥 단순 사무에 속하면서 일의 양조차 적은데도, 급여는 대기업수준으로 맞춰달라거나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은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기는 하다.

칼퇴근! 세상에는 칼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는가 보다. 그러니 이런 단어가 생겨났을 것 아닌가. 나에게는 오늘이 그런 사람들을 확인한 날이었다.

 

나는 다음날 다시 가서 책 5권을 기증하고 왔다. 그냥 버리느니 남들이 볼 수 있게 하고, 아니면 도서관장서 수라도 늘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4권을 빌렸다. 그런데 한 사람이 한 번에 3권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다고 해서 1권은 놓고 왔다. 이 책들은 남들이 잘 안 빌려보는 책이니 그냥 4권을 대출해주면 안되느냐고 했더니, 규정이 그래서 전산이 입력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였다. 결국 3권만 대출받은 셈이다.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을 할 때는 정해진 규정이 참 좋은 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정! 이렇게 좋은 규정을 왜 다들 안 지키고 있을까 그것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