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익산! 3000년 세월의 흔적

47. 천호산 문수사의 대웅전과 목조여래좌상

꿈꾸는 세상살이 2010. 11. 28. 06:05

◈문수사대웅전(文殊寺大雄殿)

여산면 호산리 69번지에 문수사라는 사찰이 있고, 그 중에서 대웅전 1곽을 1984년 4월 1일 문화재자료 제89호로 지정하였다. 이 대웅전은 문수사의 소유이다. 문수사(文殊寺)는 익산시 금마면에서 여산면으로 가는 도중에 있으며, 동쪽으로 3km 정도 떨어진 천호산(天壺山) 기슭에 있는 절이다.

문수사는 1965년 당시 주지였던 김종대(金鍾大)가 건립한 사적비에 의하면, 통일신라 헌강왕 7년 815년에 혜감대사(惠鑑大師)가 처음 세웠다고 한다. 중건비는 문수사 입구에 있으며, 대리석으로 높이 111cm, 폭 39cm, 두께 14cm이다. 비는 방형의 대석(臺石) 위에 세우고 옥개형의 개석을 얹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로 조선 초에 함허(涵虛) 스님이 중건하였고, 다시 허주대사(虛舟大師)가 중수한 사찰이라고 한다. 서향(西向)을 하고 있는 극락전의 북쪽에 명부전이 있고, 뒤쪽 석축위에는 삼성각(三聖閣)과 부도 2기가 있다. 또 서북방에는 근래에 지은 선방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재자료 제89호 대웅전은 사실상 문수사의 삼성각을 말한다. 이는 문화재 지정 당시 건물은 하나였지만 대웅전과 삼성각의 역할로 나누어 사용하다가, 1994년 보수공사를 마치면서 대웅전을 별도로 짓고 옛 건물은 이름 그대로 삼성각으로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삼성각이면서 이름이 문화재인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안에는 탱화 5점, 목조사자상 1구 등을 모시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가 아닌, 후에 지어진 대웅전은 세월이 지나면서 헐어내고 그 자리에 건물을 다시 지으니 현재는 극락전이라고 부른다. 명부전은 1993년에 지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이곳에는 지장보살, 시왕상, 동자상, 인왕상 2구 등이 안치되어 있다. 또한 지장보살은 결가부좌하고 있는데, 머리는 소라모양으로 틀어올린 나발에 법의는 통견으로 금물을 입혔다.

문수사대웅전은 사찰의 맨 뒤에 있는 건물로 작고 아담한 느낌을 준다. 나중에 지은 건물들이 크고 멋있어서 분위기를 압도하지만, 그래도 문수사의 터줏대감은 옛 대웅전이었던 현재의 삼성각이다. 요사채에서 바라보면 경내 끝에 있는 삼성각은 조금은 외진 듯하여 항상 닫아놓고 있다.

문수사로 가는 길은 여산 천호동굴로 가는 길목에서 개울건너로 갈라진다. 그곳에는 천호산의 정기를 받은 여러 사찰들이 모여 있다. 심지어 길 하나를 두고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를 차례로 붙일 정도로 많이 있다. 우선 여산 송씨의 제각으로 접어드는 길을 지나서 문수사로 가면 이어서 백련암, 백운사, 천일사 등이 나타난다.

◈문수사 목조여래좌상(文殊寺 木造如來坐像)

여산면 호산리 69번지에 있는 문수사의 목조여래좌상 1구는 2002년 12월 14일 익산시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되었다. 이는 사찰 문수사의 소유다.

문수사는 높이 500m의 천호산 서측 경사면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래좌상은 극락전에 봉안된 삼존불 중 본존불로서, 원래는 대웅전에 봉안하였으나 극락전을 새로 지어 모시게 되었다. 좌우에 있는 협시보살은 최근에 제작한 것이다.

목조여래좌상은 나무로 된 불상에 칠을 하였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탈락되었으나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머리는 오른쪽으로 틀어 소라모양을 한 나발이며, 부처님의 정수리에 볼록 튀어나온 부분인 육계(肉桂)는 조금 낮게 표현되어 있다. 사각형의 넓적한 얼굴과 오똑한 콧날, 넓적한 콧망울, 굳게 다문 입 등은 조선후기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수인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마주 잡고 있는데, 이러한 형상은 일반적인 석가여래상이나 아미타여래상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어서 구분하기가 어렵다. 신체는 안정감이 있고 균형잡힌 불신(佛身)을 보여주며, 양어깨에 걸친 통견의 법의가 양쪽 팔에 걸쳐서 결가부좌한 무릎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가슴 가운데에서 무릎까지 덮은 군의(裙衣)와 군의대가 있고 주름지듯 겹쳐진 옷자락도 눈에 띈다.

요즘의 시골 작은 사찰은 조용하기만 하다. 먼 곳의 사찰을 찾는 사람이 적어졌고 다양한 종교로 인하여 종교인이 분산된 영향도 있겠다. 그래서 조용한 산사라는 단어가 더욱 실감이 난다. 이 문수사 역시 조용하고 작은 산사다. 암자라고 하기보다는 크지만 그래도 아담한 편이다. 보살의 복장을 하면 남녀가 쉽게 구분가지만 스님복장을 하면 어떤 때는 여스님인지 남스님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때도 있다.

여기 문수사는 여스님이 계신 곳이다. 옛날에는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노랫말이 있어 여스님이 계신 사찰은 무슨 대단한 사찰인양 유명세를 탔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문수사를 비롯하여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비구니사찰이 바로 이런 곳들이다. 그러기에 이런 사찰은 여보살님들이 모여 종교에 관한 것은 물론이며 일상생활에 대한 것까지도 주고받는 사랑방역할도 하곤 한다. 내가 문수사를 방문하였을 적에 여기저기 살펴 볼 기회를 주지 않은 것도 이런 것과 연관은 없을까 생각해본다.

 

2010.09.15 익산투데이 게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