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륵사지금동향로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실제로 사용되었던 향로다. 다리가 짐승의 얼굴모양을 한 것은 다른 향로와 비슷하나, 일반적으로 다리가 3개인 것에 비하여 독특하게도 4개인 향로는 처음 발견되었다. 미륵사지의 향로와 숭림사의 향로는 제작 기법이나 재질 등에서 서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
웅포면 송천리 산5-2번지에 숭림사(崇林寺)가 있고, 그 안에 청동은입인동문향로가 있다.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향로는 국가 소유로 1974년 9월 27일 시도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었다.
향로(香爐)란 절에서 마음의 때를 씻어준다는 의미를 가진 향을 피울 때에 사용하는 도구를 말하며, 훈로(薰爐)라고도 한다. 향로의 사용은 중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서 성행하였다. 중국은 전국시대에 동제(銅製)나 도제(陶製)의 박산향로(博山香爐)를 거쳐, 남북조시대에는 자루가 달린 병향로(柄香爐), 당대(唐代)에는 뚜껑이 달린 보주형(寶珠形)향로, 송대(宋代) 이후에는 옥제, 석제, 자제(磁製), 동제, 철제가 있었으며, 가마솥 모양인 정형향로와 원통형인 통형향로를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재질에 따라 주로 청자향로와 청동향로가 많다. 그런가하면 고려시대의 금속공예품 가운데 가장 세련된 모양과 의장을 지닌 작품은 바로 향로와 정병이었으며, 이들은 범자문(梵字紋), 당초문(唐草紋), 운룡문(雲龍紋), 포유문(抱有紋), 수금문(水禽紋) 등을 정교하게 은입사(銀入絲)하였다.
이 향로의 전체 높이는 11.0㎝이고 몸체 높이 8.0㎝, 뚜껑 높이 3.0㎝, 다리 높이 2.5㎝, 향로둘레는 12㎝이다. 유물의 표면에는 인동문(忍冬紋)과 목단화문(牧丹花紋)을 은입상감(銀入象嵌)한 형태로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청동은입인동문향로라는 말은 청동으로 된 향로이며, 인동초 모양의 문양이 있는데 은(銀)으로 모양을 내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은입인동문향로(靑銅銀入忍冬文香爐)는 뚜껑 중앙부에 사자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양을 붙였다. 이 사자상(獅子像)이 꼭지 겸 손잡이이며, 옆구리에도 사자머리 모양의 손잡이를 만들어 붙였다.
유사한 작품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국보 제171호 청동은입사보상당초봉황문합(靑銅銀入絲寶相唐草鳳凰文盒)과, 국보 제92호 청동은입사포유수금문정병(靑銅銀入絲抱有水禽紋淨甁)을 비롯하여 전북 남원시 실상사 백장암의 보물 제420호 백장암청동은입사향로(百丈庵靑銅銀入絲香爐),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의 보물 제778호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향완(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香?), 경상남도 통도사의 시도유형문화재 제101호 청동은입사향완(靑銅銀入絲香?), 제102호 청동은입사정병(靑銅銀入絲淨甁), 충남 예산군 수덕사의 시도유형문화재 제170호 개심사명청동은입사향완(開心寺銘靑銅銀入絲香?), 부산 문화재자료 제3호 순치8년명청동은입사향완(順治8年銘靑銅銀入絲香?) 등이 있다.
문화재로서의 향로는 여기저기서 가끔씩 발굴되고 있다. 최근에는 2000년 10월에 발견된 것으로 인근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금동향로를 꼽을 수 있다. 2009년 1월 14일에 발견된 미륵사석탑의 사리장엄구에서 보았듯이 사리외호와 사리내호의 제작기법이 현재 적용하는 기법과 같다는 것은 가히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발견되는 향로역시 그 주조법이나 합금법에 있어 현재의 기술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며, 그때 기술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만하다.
이런 향로에 대한 가치 또한 제작시기와 사용용도, 특이성, 보존상태, 조각기법, 희귀성, 그리고 그 시대를 대표할만한 작품인가를 따지게 된다. 숭림사의 청동은입인동문향로도 이런 기준에 따라 분류하여 지정되었다.
숭림사에 자주 들르면서도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관계로 항상 겉만 보고 다녔었는데, 이번에는 작심(作心)을 하고 청동은입인동문향로를 보자고 하였으나 그것이 그리 만만치 않았다. 스님에게 예약을 하고 승낙을 받은 후에만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에 사전예약을 하고 다시 오라는 친절한 주문도 잊지 않는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한더위에 지친 몸보다 더 무거웠다. 언제 가더라고 쉽게 만나 볼 수 있는 문화재관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청동은입인동문향로가 외형적으로 세로 형태라고 한다면 익산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금도향로는 가로로 된 향로이다. 미륵사지의 금동향로는 높이 30.0cm, 지름이 29.7cm 로 반원형의 뚜껑과 몸체 그리고 다리로 구분된다. 총 무게는 7.15kg으로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뚜껑에는 연화문(蓮花文), 하트모양의 심엽형(心葉形) 문양, 구름(雲) 문양이 새겨져 있다. 몸체는 사자얼굴모양이, 그리고 다리는 삼발이로 계자각 모양을 하고 있어 껑중하게 떠있는 형상이다.
우리나라에 전승되는 향로들이 대부분 3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으나 유독 미륵사지의 금동향로는 4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향로는 844년에 건립된 전흥법사 염거화상탑이나 893년에 건립된 실상사의 수철화상릉가보월탑과 같이 승탑에 장식된 부조에서 일부만 나타나는 것으로 실물은 처음이다. 또한 다리는 사자의 얼굴모양을 하여 호위무사의 역할을 보는 듯하다. 그런가하면 다리를 부착한 사이사이에 손잡이 4개를 부착하였는데, 여기에는 짐승의 얼굴모양을 넣어 위압감을 준다.
금동향로의 재질은 구리함량이 87.5%, 주석이 8.3%로 몸체를 만든 뒤, 나중에 다리와 손잡이를 만들어서 리벳을 고정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표면은 금과 구리의 함금인 아말감으로 도금하였다.
숭림사의 청동은입인동문향로에서도 재질은 구리함량이 87.5%, 주석이 8.3%의 비율로 주조되었으며, 표면의 도금은 금과구리의 합금 아말감법으로 하였다. 몸체에 붙어있는 사자형상은 나중에 따로 만들어 붙인 것이며, 몸체와 다리도 각각 다르게 만들어 붙인 것이다. 몸체에 붙은 사자얼굴상은 손잡이 역할을 하여 투박한 모양이지만, 뚜껑의 윗손잡이 모양은 사자가 자기 머리만큼이나 커다란 구슬을 잡고 있는 형상으로 섬세하면서도 깜찍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손가락으로 집어서 들어 올려야 하는 특성상 작게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가늘고 긴 부분이나 복잡하고 섬세한 부분은 따로 만들어 붙이는 현재 제작법과 같은 공정으로 볼 수 있다.
제작 시기는 향로와 함께 발견된 ‘대중(大中)12년’명(銘) 기와로 보아 858년 전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향로가 유사한 문양과 제작형태를 하고 있어서 이 향로를 통일신라 후반의 작품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은입사한 작품은 고려시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섬세한 것으로 귀족적이고 고급스런 고려 미술을 대표한다. 그렇다고 이 향로가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며, 다만 고려시대의 작품 기법이 조선시대에 적용되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이처럼 금마 미륵사지의 금동향로와 웅포 숭림사 청동은입인동문향로가 서로 비슷한 점이 많음을 느낀다. 크기나 형태 그리고 다리의 숫자에서 다른 점이 있기는 하나, 제작시기나 생활양상 그리고 불교용품이라는데서 유사한 기술이 전승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미륵사를 창건하면서 금동향로보다는 정국의 안정과 국민의 평안에 무게를 두어 사리장엄에 더 신경을 썼다고 할 수 있으며, 숭림사에서는 사회가 안정되고 평온해진 뒤라서 예술적인 면에 더 신경을 쏟고 은입사와 같은 섬세한 부분의 기술연마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내 것들 > 익산! 3000년 세월의 흔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69. 구익옥수리조합사무실 (0) | 2011.05.04 |
---|---|
68. 주현동구일본인대교농장사무실 (0) | 2011.05.04 |
71. 심곡사명부전지장보살 및 7층석탑 (0) | 2011.05.04 |
66. 학현산성 (0) | 2011.05.04 |
65. 함열향교대성전 (0) | 2011.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