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현동 1가 719-1번지에 있는 혜봉원(慧峰院)은 한국불교 화엄종에 속하는 사찰이다. 이 경내에 목조석가여래삼존상이 있는데, 삼존상을 2001년 9월 21일 시도유형문화재 제190호로 지정하였다. 이는 혜봉원 소유로 되어있다.
혜봉원은 고종 31년 1894년 삼곤사(三坤寺)로 세워졌는데, 1955년 운영유지가 어려워진 이 절을 금산사의 승려 하규호가 인수하였다. 그 후 부근의 인가와 대지를 더 매입하여 중창(重創)하고, 자신의 법호(法號)인 ‘혜봉’을 따서 ‘혜봉정사(慧峰精舍)’라고 개칭하였다. 이 절에는 ‘모현동 부도’라 불리는 유물이 있으며, 그 외에도 조선시대에 제작된 5층석탑이 있고, 목조석가여래좌상(木造釋迦如來坐像)과 두 분의 목조보살좌상(木造菩薩坐像)이 있다.
‘혜봉원목조석가여래삼존상’은 법당인 ‘불이정사(不二精舍)’에 모셔져 있는 삼존상 가운데에 ‘석가여래좌상’과 ‘보현보살상’을 지칭한다. 불이정사의 삼존상은 ‘석가여래좌상’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보현보살상(普賢菩薩像)’과 ‘문수보살상(文殊菩薩像)’이 자리하고 있는데, ‘문수보살’은 잃어버렸다가 최근에 만들어 놓은 것이므로 문화재 목록에서 제외되었다가 2003년 11월 15일 익산시향토유적 제13호로 지정된 것이다. 삼존상 모두 금빛으로 칠해져있다.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은 머리칼을 작은 소라모양의 나선형으로 틀어 올려 붙여놓은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정수리부분에 상투모양의 육계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두툼하게 표현된 옷자락은 양어깨를 모두 감싸고 흘러내려 무릎까지 덮고 있다. 오른손을 무릎위에 올리고 손끝이 땅을 향한 손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인자세를 하고 왼쪽에 있는 ‘보현보살상’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석가여래좌상’과 비슷한 모습이다. 화려한 보관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칼은 양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오른손은 어깨부근으로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손바닥은 하늘을 향해 있으며, 왼손은 무릎위에 놓고 역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한편 문수보살좌상은 보현보살에 비해 고개를 반듯하게 들고 있으며, 앉아있는 형태는 중앙의 석가여래와 비슷하다. 오른손은 무릎위에 대었는데 손가락은 모두 자연스럽게 놓았다. 왼손은 가슴높이까지 들었고 손바닥을 펴서 앞을 향했다. 법의가 화려한 문양을 하였고 길게 흘러내린 자락은 무릎에까지 닿았다. 머리에는 월계관과도 같은 보관을 썼다. 양다리는 정좌를 하였으나, 석가여래와 보현보살의 무릎은 수평을 이루고 문수보살은 약간 앞쪽으로 기울어있다.
삼존상은 모두 연꽃모양의 좌대위에 앉았으나 석가여래는 조금 높은 위치에 있고 양쪽의 보살은 조금 낮은 좌대에 설치되어있다. 원래의 삼존상은 조선 숙종 38년(1712)에 부안의 ‘도솔암’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특이한 점은 보통의 보살상은 연꽃가지를 들고 있는데 비해 ‘보현보살’의 경우 불상과 같은 손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특히 불상이 만들어진 사연을 알 수 있는 불상조성 기록이 남아 있고, 조선후기 불상양식을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같은 사찰에 있으면서 같은 목적으로 세워졌더라도 탑이나 부도가 서로 다른 것처럼, 불교계의 석상이나 목상이 불상이나 보살상처럼 서로 다른 뜻에서 세워진다. 부처는 모든 법의 진리를 깨닫고 중생을 교화하는 불(佛) 또는 여래(如來)라 부르며 그 역할이 나뉘어져있다. 불상은 그런 부처의 형상을 말한다.
세상에 태어나 고행을 통해 진리를 깨달은 석가모니불을 석존(釋尊)이라고 하는데, 대승불교에서는 이를 응신불이라한다. 석존 열반 후 56억 7천만 년에 내려와 중생구제를 기약한 미륵불과, 과거를 지배했다는 정광불도 있다. 또 인간 세상에는 태어나지 않았지만 서방정토에 사는 아미타불(阿彌陀佛), 동방의 유리광정토(瑠璃光淨土)에 살면서 인간의 의약에 관계된 일을 장악한다는 약사불 즉 화신불(化身佛), 연화장에 살면서 몸은 법계에 두고 중생을 제도하며 보신불 또는 대일여래라고 불리는 법신불(法身佛)이 있다. 여기서 법신불을 모든 부처중의 으뜸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보살은 아직 성불(成佛)하지 못한 자로, 부처를 도와 자비를 베풀고 진리를 탐구하는 자를 지칭한다. 위에 언급한 불존은 신앙의 대상이지만 보살은 그 다음단계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보살도 예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가 절에 가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보살이라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위의 뜻대로 한다면 불교의 입문하여 열심히 덕을 쌓고 진리를 탐구하여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을 일러 보살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러므로 일반 불교신자들도 이에 합당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교계에서는 절을 찾는 여타 일반 사람들에게도 불교 신자처럼 혹은 아주 높은 덕행으로 부처에 버금간다는 뜻을 두고 동등시한다는 개념에서 예의상 확대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거의 일반화된 단어로 변하는 정도가 되었다. 하긴 칭찬해주고 높여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보살을 살펴보면 도솔천에 살면서 보살의 역할을 다하다가 56억7천만년 후에 석존을 계승한다는 미륵보살이 있고, 아미타불의 협시로 나타나는데 왼쪽에 위치하며 위험에서 구해주는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 오른쪽에 위치하는 대세지보살이 있다. 석가모니불 혹은 비로자나불의 좌우에 나타나는 협시보살은 지혜를 담당하는 문수보살과 보살행동의 실천자인 보현보살이 있고, 약사불의 좌우 협시로 나타나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 등이 있다.
보살은 대체로 불상과 달리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비를 베푸는 보살행위에 대한 보상의 표현이기도 하다. 상체는 옷을 입지 않는 대신 천의(天衣)를 걸치고, 하체는 치마를 입는데 군의 또는 상의라고 부른다. 머리는 틀어 올려 나발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양 어깨까지 내려뜨리기도 한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손에는 연꽃이나 정병 또는 보주와 같은 물건을 들고 있다. 놓인 형태에 따라 입상, 좌상, 교각상, 반가상, 유희좌상, 윤왕좌상 등으로 시기마다 다른 특징이 있다.
초겨울에 다시 찾은 혜봉원은 스산하기마저 하였다. 정원에는 불상과 돌탑이 여기저기 쌓여있고, 크지 않은 부도가 그 주위에 놓여 있다. 전에 보았던 잎이 무성하던 정원과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앙상한 속살을 보이는 정원에서 우리 인생을 본다.
원래 사찰이 조용하다고는 하지만 오후 해질 무렵에는 경읽는 소리마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짖어대던 개마저도 오늘따라 간데없다. 초봄에 왔을 때 초파일에 다시 찾아온다고 약속했는데, 막상 초파일이 되고 보니 갈 데도 많아 약속을 지키지 못했었다. 그렇다고 내년 초파일에는 꼭 온다는 기약도 없다. 그때도 다시 가봐야 할 데가 많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