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운동하고 택시타고 오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어도 한 학년에 같은 이름이 여럿 있는 경우가 있다. 우리 동창 중에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된다. 그 중에 진병철은 차상리에 사는 데, 어디서 알아왔는지 일반 상식 그 중에서도 특히 건강에 좋다는 것은 누구 못지않게 꿰고 있는 사람이다. 누구나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하지만 진병철은 오래 살고는 싶지 않으나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말은 달고 살았다. 하긴 누군들 건강하지 않으면서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어릴 적 병철이는 막걸리를 잘 마셨던 것으로 기억난다. 물론 대 놓고 들이 붓는 타입이 아니라 그냥 심심찮게 마시는 그런 부류에 속했었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 있다. 핑계야 차를 가져왔다느니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느니 하지만 실제로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 병철이가 왜 술을 마다할까, 그것은 정확한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건강에 이롭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임은 분명하다. 물론 담배도 태우지 않고 있다.
이런 병철이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닭을 키우고 음식점을 경영하는 그런 농촌의 전형적인 범부다. 그러나 그가 닭을 키움에 있어서도 시중에서 파는 사료를 중심으로 먹이지 않으며,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부산물로 키우는 것이 특이하다. 시골에 흔한 푸성귀를 포함하여 생선전에서 나오는 부산물이 병철이가 키우는 닭에게는 주된 영양 공급원이 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항생제가 들어간 사료보다야 훨씬 좋을 것은 확실하다. 유전자 변형 옥수수로 만든 사료는 사람 몸에 좋지 않을 것도 명확하다. 수시로 별도의 치료약을 먹이는 것보다 자체 면역력이 높아 건강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다른 육계보다야 맛이 좋을 것도 당연하다.
나도 이런 병철이네 닭을 애용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집에서 먹는 닭이야 많이 먹어본들 얼마나 먹을 것이냐 마는, 단체 야유회를 간다든지 특별한 회식이 있어 닭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병철이네 닭을 고집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키운 닭은 시중 닭보다 비싼 값에 팔려나간다. 우리가 매일 먹는 쌀도 유기농 쌀이라고 하면 훨씬 비싼 값을 주고도 아깝지 않게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몸집도 크고 육질도 좋지만 그보다 더 우선인 것이 무항생제라는 것이다. 물론 정말로 100% 완벽하게 사료를 먹이지 않았느냐는 따질 필요가 없다. 사실 그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그런 줄 알아야지 하루 종일 붙어서 감시하고 살펴볼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마치 시장에서 중국산을 국산이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지 어떻게 따져볼 것인가. 또 따져 본다고 해도 일반인들은 구별할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진병철네 닭도 마찬가지다. 주인이 그렇다고 하면, 병철이가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믿는 것이 우리다. 사실은 우리가 이렇게 믿고 사는 것은 병철이도 그런 것에 있어서는 신용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병철이를 내가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 그 중 제일 첫 째는 미륵산을 뛰어 올라간다는 것이다. 나는 미륵산에 올라 갈 때에도 쉬엄쉬엄 걸어서 약 50분이나 걸려야 하는데 병철이는 25분이면 된단다. 정말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나도 남들처럼 빨리 올라가고 싶다. 그것은 체력이 뒷받침된다는 것이며 폐활량도 좋다는 것이다. 그럼 왜 이런 차이가 날까. 물론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한다는 것도 있을 것이고 원래 타고난 체질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시골에서 맑은 공기 마시면서 흙을 밟고 사는 것도 큰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을 꼽자면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표정을 들 수 있다. 언제 어떤 장소에서 누구를 만나도 변함이 없는 그의 행동은 어찌 보면 약간은 덜 자란 초등학교 시절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말투도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격의 없이 대하는 것도 그렇다. 혹시 누가 돈을 많이 벌었어도 혹은 돈을 벌지 못하였어도, 어느 누가 직장에서 직급이 높더라도 혹은 직급이 높지 않아 말단이더라도, 혹시 어느 누가 공부를 많이 하여 학식이 많다고 하더라도 혹은 학식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가리지 않고 대하는 것이 마음에 드는 친구다. 나는 속으로 그런 병철이를 존경한다. 그렇다고 병철이가 남을 돕는데 앞장서거나 많은 재산을 기부하고 그런 것도 없으면서도 남을 즐겁게 하고 서로 마음 상하지 않게 대하는 것이 보기 좋은 것이다. 나는 그런 병철이를 또 존경하고 싶어진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든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해놓고 행하는 것도 보기에 좋다. 그러다보니 조금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본인도 실망할 때도 있으나 그렇다고 이런 일들이 남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그런 옳지 못한 행동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본인이 남으로부터 불공평한 대우를 당해도 본인은 남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면서 정해진 규율대로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혹은 도움을 받는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 길을 알려 주는 사람과 길을 묻는 사람의 관계 등을 확실하게 수행하기 때문에 욕을 먹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있어야 할 제 자리에 있는 것이 진병철의 생각인 듯하다.
가끔 만나는 병철이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의 공부로만 따지면 앞에서 선두다툼을 하는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이야기 하다보면 앞에서 좌중을 이끌어가는 그런 면에서 놀라곤 한다. 내가 글을 쓴다고 하면 글에 관한 이야기를 읊어주고, 누가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면 건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을 건넨다. 누가 소를 키운다고 하면 소는 어떻게 키워야 한다고 일러주며, 식당이야기가 나오면 음식을 만드는 재료구입부터 조리하는 것까지 도대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해박하다. 그것도 질문의 당사자인 작가 혹은 식당 주인, 아니면 건강과 관련된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까지 세세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물론 그의 말이 다 맞는 말이며 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말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다들 그렇게 알고 있는 사항들이니 그것을 놓고 누가 뭐라고 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이러니 겉으로는 내가 병철이를 미워하는 척해도 속으로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도 병철이는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활보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수도 있다. 그는 평소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 않는 것으로 소문이 나있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자동차 외에도 멋있는 오토바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것만 생각하면 병철이가 욕을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병철이는 자동차를 탈 때와 오토바이를 탈 때, 그리고 걸어서 다닐 때를 확실히 구분하여 행동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운동을 해야 하는데 피해갈 수 없는 다른 볼 일이 있을 경우에는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혹시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갈 때는 택시를 타고 가더라도 올 때는 걸어서 오는 그런 열성을 보이고 있다. 매사에 이렇게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매사에 신중을 기하는 그를 보면 왜 그가 상식에 해박한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요즘도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병철이가 부럽다. 물론 나에게도 병철이에게 없는 다른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미륵산을 25분 만에 올라가는 것에 대해서는 부럽다. 그래도 아직 한 번도 병철이게게 부럽다는 말은 더구나 존경한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어쩌면 너무 쑥스러워서 계속하여 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솔직히 자랑스러운 것은 자랑스럽지만 부러운 것은 부러운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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