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과 타향을 잇는
어느 특정한 날에 초등학교를 졸업 한 후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이 모였었다. 그간 수차례 전화 통화는 하였으나 만나 보는 것은 어느덧 40년 만의 일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개교 80주년을 기념하여 총동창회에서 모임을 마련하였고, 자식 같이 어린 재학생들의 재롱도 격려할 겸하여 동창회를 치른 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취지의 행사가 있다 해도, 그리고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마련한 행사 하여도 모든 졸업생들이 다 참석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어렵게 참석했다 하더라도 내가 기대하던 친구들을 다 만나보는 것도 아니니 문제는 참석하려는 자의 성의라 하겠다.
대체로 그렇듯이 졸업 후에 수도권으로 수도권으로 하면서 서울을 향하여 떠나간 사람들이 많은 우리 동창들이었다. 그 중에 한 명인 이 친구 역시 졸업 후에는 소식이 끊어졌었다. 그러더니 세월이 흐르는가 싶더니 이제 중년을 넘기자 여기저기서 소식들이 모여졌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근황을 전달해주는 창구가 되어 준 사람이 있으니 이름하여 김복자다.
그는 수도권에 사는 다른 사람들의 소식을 알기 위하여 자주 연락을 하는가 하면, 무슨 전달사항이나 모임을 소집해야 할 사항이 있으면 으레 백기사가 되어 돌아왔다.
김복자의 안테나는 친구들에 국한 된 것이 아니었다. 졸업할 당시인 6학년의 담임선생님이었던 은사님의 소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달해 왔다. 마치 손에 쥔 공기돌이 다섯 개이면서 이리저리 그 위치만 변하고 있을 뿐 숫자에는 변함이 없는 것과 같이 꿰뚫어 차고 있었다.
세상사 모든 일에 있어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은 힘들지 않고 즐겁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하여 하는 일 자체야 그렇다고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평상시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몰라도 그만 알아도 그만인 어릴 적 동창들 소식이야 그와 성격이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연락하며 위로해주는 가운데서 소식도 알게 되는 것이니 중간 매개체가 여간 부지런해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소식은 어쩌다보면 한참 세월이 지난 다음에 알게 되는 것이 보통인데, 마치 실시간 중계라도 하듯이 상세히 그리고 빠르게 전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성의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일을 잘 해온 친구가 바로 김복자였던 것이다.
복자는 초등학교 동창이면서 같은 반에 있었다. 당시 남녀가 각각 세 반씩 나뉘어 있었고, 추가로 우리 반만 남녀 공학으로 있었는데 그때도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노는 게 대부분의 상식이었다. 그래서 나도 김복자와의 인연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나마 나는 반장이라는 명분으로 이리저리 나대고 다녔기에 조금은 더 많은 기회에 더 많은 급우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면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에 속할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남녀가 유별하였지만, 이때를 기회로 하여 여자 동창들과 복자의 연락은 동창 소식통의 풀가동으로 들어왔다.
누구말대로 그렇게 하면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떡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열심이었던 것에 대하여 그런 복자를 고맙게 생각한다. 정말 그것은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서 순수했던 동심의 추억을 놓지 않으려는 순진한 마음의 발로였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얼마가 지난 후 내가 동창들의 소식을 그리고 담임선생님의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이 대부분이 복자를 통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야! 너 그 소식 아냐?’ 하면서 묻는 것이 대부분인데 복자는 그렇게 묻기 전에 ‘누구는 이번에 뭐를 하여 어떻게 되었더라.’하는 말로 화두를 이끌어 갔다. 말하자면 카더라 통신에 의한 전달이 아니라 직접 단독으로 취재하고 수집한 소식을 동창들에게 뉴스로 전달했던 것이다.
나는 이런 복자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만약 복자가 없었더라도 누군가는 이런 일을 했을 것으로 볼 수는 있지만, 음지와 양지처럼 누가 안 하면 누가 한다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니 전혀 연락 없이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졸업 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만나기는 커녕 소식조차 모르는 친구가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도 친구라고 불러야 하는 의아심이 생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친구라는 단어가 오래 전에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면 아무리 소식이 없어도 친구는 친구인 것이다.
하긴 40년 전의 동창생들이 연락을 하면 얼마나 할 것이며, 연락을 안 하면 사는데 무슨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생살이가 꼭 돈만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현실에만 젖어 사는 것도 아닌 것이니, 만물의 영장으로서 추억과 고향이 동시에 필요한 사람살이라면 맞는 비유일지 모르겠다.
이런 추억과 고향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는 것이 초등학교 동창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들은 위아랫 집에서 살았거나 부모 혹은 형제들이 서로를 잘 알며 지냈던 사람들이다. 또 어릴 적의 순진하고 아직 때 묻지 않았던 당시의 일상을 같이 했었다는 작은 공동심리가 존재하는 사이다. 이것은 지워지지 않는 무의식 속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각인된 지울 수 없는 기억에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고 친 형제자매가 서로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위로하는 것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그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고 생활의 활력을 주는 그런 관계임도 확실하다. 그러나 때로는 친 형제자매보다 더 가까운 것이 초등학교 동창일 수도 있다. 이들은 어릴 적부터 서로를 잘 알아왔으며 현재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로, 긴박한 상황에서는 멀리 있는 친척들의 도움을 받기 전에 가까이 있는 지인들의 도움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타지에 나간 자식이 부모의 임종을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으며, 임종까지야 아니더라도 위급한 경우에 초동 대처를 하는 것은 역시 가까이에 있는 남들인 것을 감안하면 초등학교 동창은 역시 중요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먼 데 있는 단장보다 가까이에 있는 쓴 장이 더 낫다는 속담이 생겨났던 것이다.
부모형제가 미국에 살거나 영국에 살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거나 어떤 권력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서로 생사도 모른 체 살아가는 것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 일까는 잘 모르겠다. 이들은 아무리 세월이 좋아져서 하루면 오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만사 제쳐두고 하루 만에 달려와서 같이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또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서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실시간 화상통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어딘지 허전하고 텅 빈 것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가까이에서 자주 바라보면서 서로 부대끼고 함께 생각하는 것이 사람살이의 진정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복자가 해왔던 일들은 어쩌면 자신이 필요해서 자신이 정보를 수집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그렇게 소중하게 얻은 정보를 많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것은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세상 이치가 좋은 일을 한 사람은 칭찬 들어 마땅하고 보상 받아 마땅한 것이다. 비록 여건이 되지 않아 그렇게 보상받지 못하였더라도 정의가 살아있는 한은 그렇게 되어야 합당하다.
당시 키가 작아서 앞에 앉았던 나와 달리 키가 큰 복자는 뒤에 앉았었는데 이름부터도 벌써 복이 많게 생겼었나 보다. 지금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은 모두가 그이 이름 덕분이 아닌지 혼자서 생각해본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남을 위하여 자신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그런 마음 때문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올해 치러진 개교 80주년 행사도 수도권에서의 연락은 이 친구가 책임졌었다. 누가 어떤 이유로 책임지기로 약속한 적도 없었고 특별히 누구를 지명하여 책임을 부여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복자는 불만도 없이 불평도 없이 혼자서 그렇게 진행해 왔었다. 그리고 그가 전해준 결과는 대 만족이었다. 우리 기수의 동창들만 하여도 서울에서 버스 한 대를 동원하여 참석하였으니 진행자들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을 일거에 소개시켜 주었으니 그것 또한 즐거운 일이었다. 이럴 때를 두고 즐거움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생겨났는가보다 했었다.
출신 고향과 지금 살고 있는 고향이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자주 왕래하지 못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현재 고향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친구들이 그래도 지난 고향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자신의 향수를 달래는 자기보호 본능에 의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오지랖이 넓어서 주체하지 못하는 끼를 발산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고마운 친구임에는 틀림없다.
어느 날 누군가가 그리워서 전화를 할 때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인생에 있어 복잡한 마음을 열고 수다를 떨고 싶을 때 만만한 상대가 있다는 것은 고해 같은 세상에서 위안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해서 위로를 받고 재충전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인생을 괜찮게 살아 온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있어 자문역을 맡았던 사람은 어떠할 것인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부탁하기 위하여 누군가를 찾고 있지만. 반대로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상담역이 된다면 그것 또한 성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이 비록 거창한 인생의 삶에 비유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한 사람의 길잡이가 되는 멘토라고까지 표현할 수야 없다고 하더라도 보람 있는 인생이 되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비록 내가 그의 의중을 생각지 못하고 혼자만의 평가를 내린다 하여도, 그의 행동 자체야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이번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이나 참석한 친구들 모두가 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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