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내가 부족해도 배려하는

꿈꾸는 세상살이 2013. 8. 9. 13:02

내가 부족해도 배려하는


내가 객지에 나갔다가 고향에 온지 대략 10여 년이 지난 즈음 창성이를 만났다. 회사 일로 여기저기 알아보던 차에 특수장비 임대사업을 하고 있는 김창성을 소개받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창성이는 지게차 임대사업을 하고 있었다. 종업원도 7,8명 두어 제법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이었디. 당시는 지게차를 이용할 일이 많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반대로 지게차 임대업을 하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대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독과점 품목에 들어 이익이 많은 업종 중의 하나였다면 맞을 것이다.

그때 나는 어느 회사의 과장으로 있을 때인데, 그런 창성이가 나에게 물었다. 요즘 회사의 과장들은 월 200만원은 받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런 정도는 된다고 말하였는데, 사실은 당시 내가 받던 월급은 300만원도 넘던 시절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규모가 갖춰진 회사의 과장과 자신이 운영하는 소규모 업체의 과장이 받는 급여의 차이를 잠깐 착각한 듯하였다. 그렇다고 내가 그보다 더 받는 다고 말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로 인해 설명과 해설이 길어질 것에 비하면 차라리 그냥 그렇다고 대답해 주는 게 더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당시 창성이도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던져 본 200만원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급여를 조금 높게 올려서 물어 본 금액일 수도 있고, 자신이 지불하는 종업원의 급여가 그 정도 수준일 수도 있었기에 나도 편하게 대답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창성이가 중장비 정비공장을 차렸었다. 그때까지의 경험으로 판단해보니 오랫동안 해 오던 지게차 용역보다는 차라리 정비업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정비업의 개업 날에 교회 목사님을 초청하여 축하예배를 부탁하였다. 그런데 막상 목사님을 모시고 축하예배 장소에 가보니 예배를 보아야 할 자리에 동업자가 차려 놓은 고사상이 버티고 있었다. 그 순간 창성이는 할 말을 잃었고, 목사님을 뵐 면목이 없어 그 뒤로부터 지금까지 멀리하여 지내고 있다. 그때 지인이 고사상을 차린 다고 말만 하였더라도 잠시 동안의 예배를 마친 뒤에 놓으라고 했었을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 떼어 놓아 서로의 불편함을 사전에 방지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다고 자신을 위해 설치한 고사상을 두고 왜 그랬냐고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참으로 답답하기만 한 사건이었다.


생각하기 따라서는 그냥 넘어갈 수도 혹은 왜 그랬느냐고 따질 수도 있었겠지만 창성이는 그래서 해결될 일이 아니니 굳이 핑계를 대거나 변명할 필요가 없다는 심산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이후 한 동안 그의 의중을 알아보는데 신중을 기하였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는 마음에 나도 반 박자 늦춰 대답하고 조언하는 그런 태도로 변해갔다.

또, 그가 지게차 용역업을 접고 정비업을 시작할 즈음에는 가지고 있던 지게차를 모두 처분하는 상황도 있었다. 당시 장비 한 대에 운전자 한 명씩 고정 배치하여 운영하던 고정배차제였기에, 자신이 운전하던 장비는 자신이 매입하도록 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 과정에서 갑자기 장비를 인수할 몫 돈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벌어서 갚는 조건으로 선인계후입금 방식을 제안하였었다. 이에 모든 운전자들이 고맙게 여기며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모두는 개인사업자로 변하여 자신의 일을 자신이 직접하는 일에 대한 즐거움도 제공하였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용할 사무실도 이와 같은 방식을 제안하였는데, 그때까지 창성이가 사용하고 있던 사무실을 그대로 사용하되 임대보증금은 생각하지 말고 자신들이 벌어서 전기요금과 전화요금 그리고 공동사용 분담금 등 사무실 운영경비만 충당하도록 하였다. 이 역시 지게차를 매입할 때와 같이 큰돈이 없어도 새로운 사업장을 마련할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을 정도의 파격이었다.

내가 듣고 보아온 창성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조금 나으면 내가 그를 배려하고, 내가 조금 못하면 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어려운 상황을 만들지 않는 세심함을 지니고 있었다.

각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이 직접 하는 일이라서 남의 눈치를 안보며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나면 모여서 화투를 치면서 생산적이 않은 일에 열중하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하려면 내 사무실에서 나가라는 엄포를 놓기에 이르렀고, 그 뒤로는 사무실에 자주 들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가 지난 후 건물 임대인을 만난 창성이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들었다. 그간 밀린 월세로 인하여 보증금을 돌려줄 금액이 남아있지 않다는 말이었다. 이때 창성이는 자신이 배려하고 돌보아준 사람들에게서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였다. 이런 사실을 확인하려고 찾아간 사무실은 벌써 전기가 끊어져 대낮인데도 어두웠으며 전화마저 차단된 상태라서 어떻게 된 거냐고 따지기 위한 연락조차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선인계후입금 조건으로 넘겨준 지게차 대금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 내가 이 말을 들었을 때에는 창성이가 야물지 못하고 어리석어서 그렇다고 하였었다. 또한 무슨 일을 하려면 조금은 냉정하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 놓고 가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창성이는 사람을 믿고 일을 해야지, 어떻게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서류로 작성하고 담보를 잡고 그러느냐면서 오히려 나를 나무라기도 하였다. 하긴 나도 어떤 때는 그냥 믿고 사는 게 인생인데 일일이 따져 미주알고주알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하다가 한두 번 당한 것이 아니니 사돈이 남 말 할 때는 아니었다.


그런 창성이가 최근에 다시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 아주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지게차 용역 대금을 9개월째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금액이야 많든 적든 9개월째 대금정산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은 자초지종을 모르는 나로서도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상대방은 국내 대기업으로서 요즘 사회통념상 용역에 대한 결제를 한 달 이상 미룰 그럴 상황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 그렇다.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겪어 온 창성이의 행동으로 보면 창성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창성이가 하루 속히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사람들은 조금만 가지고 있어도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니,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 것이 분명하므로 서로 돕고 격려하는 사회의 선순환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또한 남을 돕는 사람들이 인정받고 보답 받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삐뚤어진 심보로 말을 하자면 그래야 동창회 발전기금으로 많은 물질을 혹은 나에게 밥을 사는데 더 많은 금액을 내 놓을 수 있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