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야 세상이 보인다는
눈을 뜨면 길이 보인다. 그 길은 세상의 도시와 건물을 연결해주기도 하고, 공원과 건물을 연결해주는 길이기도 하다. 또 길과 길을 연결해주기도 하는 교차로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그 길로 걸어간다. 바쁘면 뛰어 가지만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잠시 걸터앉아 쉬어도 간다. 아무 소용도 없는 것 같은 길은 이렇게 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아니 나의 생활 전부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길을 내가 편한 대로 다루고 있다. 내 욕심에 따라 길의 용도를 달리 해석하고 고유한 길의 가치마저도 달리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김장으로 배추 200포기를 하는 친구가 있다. 한 지붕 아래 같이 살고 있는 식구라야 단 두 명으로 가장 작은 단위의 핵가족이니 기본 20포기만 되어도 족할 것이지만, 먹는 것보다 퍼주는 것이 더 많다 보니 이것도 모자란다고 하였다. 그 사람은 오늘 이글의 주인공인 문승규다.
그렇다고 길가는 사람들을 아무나 붙잡고 혹은 안면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 신세를 진 사람들을 포함하여 어딘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어느 누군가가 아직 수입이 없어도 필요한 만큼의 기부를 하면, 그 만큼의 수입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여 결국에는 그 꿈을 이룬다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받는 사람 혹은 나누는 남들 중 어떤 사람의 기준은 다를지 몰라도 승규 나름대로는 반드시 나누어야 할 곳을 찾아 나누어 주는 것이란다.
초등학교 동창인 문승규가 마을 이장을 맡고 있다. 요즘 농촌에는 젊은 사람들이 부족하여 나이 50이면 아직도 어린 나이에 속했던 탓이다. 50후반기에 들었다고 해도 농촌에서 아직 어리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이장님이든 다 마찬가지겠지만, 마을 일이라면 자신의 일도 제켜두고 앞장서는 일꾼이 바로 승규다.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다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자기 일은 다음날에 다시 시작하는 한이 있더라도 동네 일을 끝까지 책임지고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이장이다. 누구나 일을 하다보면 능력이 부족하여 아니면 환경여건이 맞지 않아 원하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이런 때에 자신은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어쩔 수 없어 일을 완성하지 못하였다고 말하면, 자초지종을 들어 본 후 이해해줄만한 것이 현 시대의 사람들이다. 요즘은 모두가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른바 생활수준이 향상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승규는 자신이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여기저기 전화를 하여 알아보고, 혹시 연관이 없는 사람 중에서라도 그런 일을 처리할 사람이 있는지 친구들에게 물어보아 처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승규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일화는 아주 많이 있다. 이장으로서 마을 사람들이 단체 야유회라도 갈라치면, 마을 기금 혹은 갹출한 가용금액 범위 안에서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부족하고 서운한 부분을 채워줄 방법을 찾아내고 만약 여의치 못할 경우에는 개인적으로라도 챙겨 넣는 그런 사람이다.
사람은 욕심이 많은 동물이다. 일반적으로 집에서 기르는 가축은 자신이 먹을 양만큼을 먹고 혹시 여우가 있어 남는다면 그냥 남겨두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 다시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을 하며, 혹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와서 먹지는 않을 까 걱정을 하면서 배가 불러도 모두 먹어 치우는 성격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동물에 없는 성인병 즉 생활습관병이 생긴다는 것이다. 먹는 것이 그렇고 입는 것이 그러하며 경제적 척도의 돈도 그렇다. 오죽하면 자신의 몫이 아닌데도 일부러 빼앗는 어리석음까지 빚어내고 있을까. 그러면서도 게으른 배짱이 혹은 꾀 많은 여우를 놀리며 비아냥대는 것이 사람들이다.
이런 마당에 공동의 기금 외에 자신의 비용을 더하여 장만하는 사람이 있다면 보통사람들은 제 정신이라고 말할까? 시골에서 돈을 마련하기야 쉽지 않지만 자기 손발로 농사지은 곡식은 다소간 내어 줄 수도 있으니 승규가 그런 핑계를 대며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같은 시골에서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농사를 안 지어 내어 놓을 쌀이 없고 콩이 없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문승규의 베푸는 정신은 동창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고향에 산다는 이유로 동창회장을 맡았을 때 1년에 한 번씩 나가는 야유회에서 항상 찬조금을 내던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찬조금은 반드시 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서 엄밀히 따지면 금품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남에게 베풀고 기부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금액의 액수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듯이, 행사에 필요한 것을 충당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쌀이냐 팥이냐를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떤 때는 소요되는 돈보다, 얻어진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진행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야유회에 가는 날은 항상 차를 승규네 집 가까이에 대야 한다. 바리바리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려면 무게를 감당하기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밥이며 떡, 김치를 비롯하여 특정 날에 골라 먹는 홍어무침과 후식용 과일들이 줄이 잇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승규는 항상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에 부치든 안 부치든 자신이 판단하여 그냥 해줄만 하니 해주는 것이라서 말이 없단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을 두고 왜 이렇게 했느냐 맛이 왜 이렇게 싱겁냐 하는 말들을 하지 않는다. 성의가 문제이지 결과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공감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동창회장을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나의 능력이 부족하고 나의 환경이 맘에 들지 않는 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동창들에게 좋은 동창회원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나는 맨 뒤의 저 끝에 앉아있고 승규같은 친구들은 항상 중앙에 앉아 있는 것을 본다. 사실은 그래야 좋은 모임이 될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모임을 앞장서서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일을 처리하는 것임으로 그들이 우선적으로 대우받아야 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동창으로서는 누가 누구보다 잘 나고 누구보다 못 났는가는 따지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그 모임은 계속하여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규는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맨 뒤에 앉아있는 나도 그런 승규를 보면서 큰 소리로 야단을 치기도 하고 때로는 잘 했다고 칭찬을 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우리 동창들이 좋은 것이다.
승규는 올 해에도 농사를 잘 지어 기쁨에 찬 수확을 하고 있었다. 황금물결 일렁이는 들판에서 벼를 베고 나락을 훑어낸 후 포대에 담아내는 일에 열중하였다. 옛날처럼 땀이 나면 허리에 찬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홀태로 낟알을 털던 때가 아니니 그마나 다행이기는 하다. 구석구석 세세한 일을 포함하여 일련의 모든 일들까지 하나같이 기계화되어 있으니 일하기도 한결 쉬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칭타칭 전문가라고 말하던 승규가 농기계에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편리한 기계 덕분에 여러 가지 복잡한 일도 혼자서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많은 일을 동시에 혼자서 하다 보니 수확 철에 바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일인 삼역을 하던 중에 당한 사고는 인근 대학병원에서도 손보기 어렵다고 하여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후송되는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던 것이다.
문승규는 여러 차례의 대형 수술을 통하여 외과적인 상처는 아물었지만 마음의 상처와 함께 커다란 장애가 남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위로하고 걱정을 해주면 그런 순간에도 승규는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큰 소리를 쳐댔다. 그런데 그의 말을 곱씹어보면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비록 다친 다리는 장애가 남아있다 하더라도 굳이 그 다리를 얘기할 것이 아니라 다치지 않은 다리를 얘기하면 될 것 아니냐는 내용이다. 혹시 장애가 남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두고두고 걱정하며 안타까워하면 조금이라도 낫는 거냐고, 그렇게 슬퍼하면 다른 일이 잘 풀리는 것이냐고 묻는 승규는 대범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렇게 멀쩡한 다리가 있는데 왜 장애가 남은 다리만 가지고 이야기하는가가 쟁점이던 것이다.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 승규의 장점이었다. 남이 생각할 때 조금은 동떨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는 확고한 신념으로 판단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승규를 위로하러 갔던 친구들이 오히려 위로받고 용기를 내어 돌아왔다는 얘기는 문승규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훌륭한 장점을 부각시킨다.
나는 이런 승규가 좋다. 승규가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나는 문승규를 좋아한다. 조금은 부족한 듯하면서도 풍족한 사람들에게 베풀 줄을 알고 그들을 가르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승규 같은 사람들이다.
문승규가 병원에 있을 때 어려운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렵더라도 모두 극복하고 눈을 떠야 옆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자신에게 잘 하는지 못 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기에 억지로라도 눈을 떠야 했다는 말도 들었다.
인생에 있어 눈을 뜬다는 것은 감은 눈을 떠서 사물을 바라보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래야만 나에게 닥칠 위험이 무엇인지 그리고 언제쯤 닥칠지 감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육체적인 눈뿐만 아니라 마음의 눈을 떠야 여러 사람을 잘 볼 수 있는 것도 확실하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보려면 마음의 눈을 떠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문승규는 일치감치 마음의 눈을 뜬 훌륭한 친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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