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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야 못해주겠나 대답하는

꿈꾸는 세상살이 2013. 8. 9. 13:01

그 정도야 못해주겠나 대답하는


대야면사무소 앞 사거리 4차선 큰길에서 꺾여 조금 들어 간 곳에 내가 아는 카센터가 하나 있다. 그러나 골목이라고는 하지만 그 길 역시 4차선으로 뻗어나간 멋진 길임에 틀림없다. 그것도 면사무소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면 말이다. 국도에서 지방도로 접어들어 약 50m 쯤에 위치하여 넓은 공터를 필요로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어쩌면 카센터라는 곳에서 차량을 수리하려면 간선국도 4차선보다야 이면 4차선이 훨씬 나을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더구나 대형 트럭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사업장으로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 길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처럼 면소재지에서 다시 다른 면으로 이어지는 비교적 한산하고 조용하기가 별 수 없는 시골길이다. 이러한 곳에 사업장을 낸 것은 한눈에 들어오는 몫 좋은 입지는 아닌 듯해보였다. 언젠가 내가 성규에게 물었을 때 대형 차량이 드나들려면 이렇게 조금은 여유가 있는 곳이 좋다고 하였던 그다.

나 역시 국도 26호선은 자주 오가지만 거기서 몇 발짝 떨어진 성규의 사업장을 방문하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큰길에서 겨우 한숨만 몰아쉬며 들어가면 될 터이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는 말이다. 정해진 일이 없으면 어쩌다 한 번, 그것도 일부러 짬을 내야만 방문이 가능한 것이 우리네 세상살이인가 싶다.


지난 늦가을에 길을 지나다가 방향을 틀어 일부러 들러 본 그곳은 조용하기만 하였다. 주변의 인근 상가들 역시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갈수록 유동인구가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면단위의 전체적인 인구는 그대로 인데 상가의 활기만 줄어든 것은 아닌지 불안한 감을 느꼈다. 그 이유를 따지자면 여기저기로 새로운 길들이 생기면서 사통팔달의 편리한 교통망이 통행량을 분산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를 운행하는 우리가 볼 때는 이리저리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게 되어 반가운 일에는 틀림없다. 언제 어느 때든지 차량의 집중을 막아주며 분산유도를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는 기반시설에 반가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도심을 벗어난 곳에 대형 유통시설을 갖추어 도심에서의 교통을 외곽으로 끌어내는 것도 잘 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조금은 외지면서 어떻게 보면 시내에 있는 것 같은 사업장이지만 그래도 한산하기는 변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경기가 안 좋으니 다른 업종을 선택해 보라는 것이나, 요즘 수입이 적어 다른 연계사업을 펼쳐 보라는 등의 말은 하지 못했다. 내가 몇 번을 고쳐 생각해서 하는 말일지라도 상대방의 의견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성규 나름대로는 다른 사업에 대한 검토와 계획을 준비하거나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는 마당에 내가 그와 방향이 다른 업종을 추천하여 혼란을 야기 시키면 안 되는 것에 속했다. 최소한 자신이 먼저 그런 일에 대하여 상의를 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친구는 친구로서 사업 파트너는 파트너로서 할 일이 따로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들렀을 때에도 성규네 사업장은 크게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부지는 남의 땅을 빌어 차린 곳이니 마음대로 건물을 짓기도 쉽지 않겠지만, 커다란 간판도 없고 화려한 안내판도 없는 상태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은 조금은 손을 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였다. 내가 끝까지 책임져 주지도 못할 처지에 혹시 친구사이에 의 상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방문한 시간은 막 점심 식사시간이 지난 참이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점심을 마친 시간이었고, 일이 있었던 사람들은 아직 때를 놓친 경우도 있을 그런 시간이었다. 나는 당시 식전이라 배가 고팠었지만 어디 식당에 혼자 들어가 먹기도 뭐해서 그냥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러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40분은 족히 더 가야 되는 거리로 중간에 있는 여기를 들려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 고민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춰 선 곳이었다. 정말이지 배가 고파 밥을 먹을 목적으로 들렀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시간도 넉넉하여 서둘러 갈 필요가 없었던 참이니 들러서 친구 얼굴이나 보자는 심산이었다. 어차피 시간은 점심을 넘긴 시간이니 친구가 점심식사를 끝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한 후였다.

이날도 빈 시간에 TV를 시청하고 있던 친구는 정색을 하고 반겼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성규는 세상 돌아가는 내용에 모르는 것이 없었다. 예전의 성규를 생각해보아도 다재다능하여 특출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반 상식이나 교양은 풍부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지금은 그에 더하여 국제 정세며, 국내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면에서 다양하게 꿰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문화인이며 문화적인 일을 한다고 하지만 성규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친구였다. 이런 때의 나는 모르는 것도 그냥 아는 체를 하며 반대로 확실히 아는 것도 다소는 모르는 척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래야만 상대방은 내가 잘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한다는 평가를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때가 바로 많은 말을 하기 보다는 남의 말을 잘 들으라는 것이 와 닿는 순간이었다.


이면 도로에서 손님이 많지 않은 어쩌면 시간의 지루함이 성규를 박식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닿자 내심 안타까워졌다. 차라리 손님이 많아 일반 상식이나 지식에 조금은 둔한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직원을 두지 않고 혼자서 하는 일이니 손님이 있을 때 자기가 직접 나서야 하는데 일손을 놀리고 있다는 것이 덜 좋아 보였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움직임이 바로 수익과 직결되는 직업을 가진 성규에게 그냥 별 일도 아니면서 방문하는 내가 방해가 될까봐 부끄러웠던 적도 많았다. 그날도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당도하였던 성규네였다.

기약도 없이 찾아간 곳이었지만 그래도 밥 때가 되었다고 끼니 걱정을 해 주는 친구가 고마웠다. 게다가 나를 위로하려는지 어디를 가다보면 혼자서 밥 먹는 것이 마땅치 않아 굶는 수가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는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더 이상 어렵게 어디 가지 말고 굳이 여기서 시켜 먹으라고 성화를 댔다. 지금 이 시간에 다른 곳에서 일을 끝내고 나왔으면 아직 식전인 것이 분명하니 아무 말 하지 말라는 식이었다.

내가 이런 저런 얘기로 화제를 바꿔도 성규는 다른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반드시 필요한 오늘의 점심얘기만 하자고 정색을 하였다. 결국은 성규의 의견에 따르기로 하였지만 사실 허기를 느끼던 시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나도 덧붙여 점심을 아직 안 먹었으면 같이 가서 먹자고, 내가 사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 끼에 몇 만 원짜리 아주 비싼 것을 먹는 것도 아닌데 걱정하지 말라며, 그래도 자기네 사업장에 온 손님 대접은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하였다. 그냥 지나가다 들리는 나도 손님 축에 들어가는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일일이 따져 말장난을 하는 것보다는 친구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도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보는 성규네의 수입이 넉넉하지는 않음을 안다. 요즘 너도나도 차리는 것이 자영업이고, 자동차관련 사업이 호황이라는 말에 편승하여 생겨나는 것이 카센터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친구를 손님대접하며 나서는데 그런 정마저 물리칠 수는 없었다. 사실 내가 그간 성규네 사업장에 여러 번을 방문하였지만 일부러 밥 때를 피해 방문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그날 한 끼는 대접을 받아도 손님을 대하는 마음에 부응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물론 언제 어디서든 친구지간에 밥 한 끼 먹는 것이 크게 떠들 일은 아니다. 그때의 성규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관점은 평소 성규가 행하던 일에 비추어 보면 고마울 뿐이었기에, 내가 성규에게 작은 신세라도 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가졌던 마음이었다.


그 전에 방문하였을 때에도 인근에 사는 지인의 이야기나 학교 동창들의 이야기 그리고 서로 대화가 통하는 해박한 상식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었다. 굳이 일반인들이 공통으로 관심을 가지는 분야에서 나눈 대화였지만 그래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한편 나는 성규가 하는 사업에 대하여는 문외한이라 달리 할 말도 없었다. 그래서 사업상 이야기를 꺼내 보았자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들으며 나가는 대화는 좋은 화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얘기만 하자며 애써 화제를 돌리던 그 친구에 새삼스럽게 부담을 느꼈다. 세상에는 남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며, 겉으로는 남을 위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본심을 읽히는 경우가 많은데, 일부러 화제를 돌려 말을 막는 성규의 배려에 고마운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어릴 적의 성규는 앞에 나서서 일을 벌이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이것저것 참견하거나 자기주장을 위주로 펼치는 친구도 아니다. 이런 일들이 가볍게 생각하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 실행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가식이나 일부러 마음먹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원래 천성이 고와서 자연스레 대하는 행동은 성규가 좋은 친구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새해 아침 그리운 친구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친구야! 정해년에 복 많이 받고 건강하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