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너는 늦게 와도 된다는

꿈꾸는 세상살이 2013. 8. 9. 13:03

너는 늦게 와도 된다는 


올해는 여름이 길고 지루하여 짜증나는 날이 많았었다. 이런 기세에 눌렸는지 한동안 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가을이 여름의 모퉁이에서 슬며시 고개를 드밀었다. 어서 빨리 여름이 가서 이제 그만 아픈 마음을 치유해달라고 기다리던 찰나에 가을이 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바라는 대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듯, 감히 자연을 거스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것처럼 한바탕 소동을 피우더니 잠잠해진 것이다. 가을이 이렇게 학수고대하며 애타게 기다림 끝에 오기는 하였지만 실상은 내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계절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듯 찾아왔다.

몇 해 전에는 매미가 온 나라를 휘젓고 다녀 눈총을 맞았었는데, 올해는 태풍나리가 추석빔을 한 곳에 모아 놓고 그만 싹쓸이를 해버렸다. 예부터 불난리는 타고 난 재라도 남아있지만 물난리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쓸어간다고 하였었다. 나리라는 이름을 가진 올해의 태풍은 물난리가 남김없이 모든 것을 쓸어간다는 말에 미안하였는지 흙과 나뭇가지 그리고 온갖 쓰레기를 남겨 두고 떠나갔다. 여름내 지은 농사도 못 쓰게 만들었으며, 농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조차 물가비상이라는 숙제를 던져주고 도망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원망하였으며 망연자실 넋을 잃고 있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그나마 돌부리라도 남겨두고 떠나간 태풍에게 고맙다고 하여야할 지 왜 조금만 남겨두고 갔느냐고 원망을 하여야할 지 알 수는 없지만, 한 동안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저렇게 만들어 놓을 줄 알았으면 차라리 깨끗이 쓸어가라고나 할 것을 하는 후회도 있었다. 그러면 어차피 사용하지 못할 것들 청소하기나 쉽지 하는 마음도 일었다. 태풍은 이렇게 큰 물난리를 주면서 그것도 모자라 어디서 모아왔는지도 모를 자갈과 흙을 논밭에 엎어놓고 가버렸다. 쓰러진 벼를 세우는 것은 고사하고 한 자도 넘게 쌓인 토사를 제거하는 일이 더 큰 일이었다. 치우다 치우다 다 치우지 못한 논에서는 아예 밭으로 만드는 사람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 주변을 치우고 정리할 틈도 없이 추석이 와버린 것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이라야 고작 숟가락 몇 개와 밥 지을 그릇 몇 개가 전부인 사람들도 많았다. 태풍을 맞은 추석의 연약한 현실은 처참하기만 하였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사람들이 성금을 모으고 자원봉사로 나섰다. 이와 더불어 수해지역에 연고를 둔 친척들과 지인들은 물난리를 수습할 요량으로 고향을 방문하여 밤낮을 잊은 지 오래다. 관공서에 근무하거나 심지어 군에 가 있는 자녀마저 특별휴가를 내어 일손 돕기에 나섰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사정이 좀 나은 편에 속했다. 당장 자신의 몸 하나 기거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그들을 돕겠다고 도움을 주러 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엄두조차 못내는 경우마저 생겨났다. 오죽했으면 돕겠다고 나선 자원봉사자들을 오지 말라고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을까. 물난리가 무섭다더니 과연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나는 여름이었다.


그런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서 바로 추석으로 이어졌다. 비록 수재민들은 시름에 잠겨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준비하여야 할 것도 많은 것이 추석이었다. 묵은 빨래를 하여 기분을 정갈하게 하면서 방문하는 친지를 맞을 준비를 하고, 가을에 수확한 곡식으로 새 반찬을 만들며 차례상에 올릴 음식도 준비하여야 한다. 그런가 하면 묘소 주위에 있는 나무들의 잔가지를 쳐내어 시원하게 하고 넓은 묘역의 벌초도 하여야 한다. 화장하여 납골당에 모시지 않은 이상은 벌초와 주변정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상황이 온 것이다.


즐거운 추석 명절을 맞아 조상의 묘를 벌초하면서 인근에 있는 남의 묘까지 손질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수해를 당해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 차원이 아니라 이용규처럼 매번 때가 되면 마치 자기 일처럼 여기며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오늘의 주제다. 대체로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의 묘라든지, 일가친척의 묘 혹은 특별히 부탁을 받은 경우에는 관리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벌초는 용규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용규는 고향에서 자랐고 직업을 택하는 성인이 되어서도 고향을 떠나지 않은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살다보면 잠시 객지에 볼일을 보러 가기는 하였더라도 근본적으로는 고향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는 지킴이다.

이런 고향은 여느 시골이나 매 한가지겠지만 한 집 건너 친척이고 한 집 건너 동창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어느 누구도 서로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인연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즐거운 추석을 맞아 자기 선대의 묘를 벌초하면서 항상 옆에 있는 묘까지 관리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 묘는 객지에 나가 있는 초등학교 동창네 것인데, 타향으로 돌아다니는 직업을 가진 친구에게는 커다란 짐을 덜어주고 있는 셈이다.

내 벌초를 하면서 그까짓 산소 한 기의 벌초하나 더 해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할까마는, 며칠 전부터 일정을 조정하고 날을 잡아 풀을 베는 것은 그냥 생각만큼 쉽게 되는 일은 아니다. 오죽하면 벌초를 못해 품꾼을 얻어 벌초를 하는 경우까지 생겨났을까. 이런 시절이니 벌초를 업으로 하는 직업군이 생겨난 것도 관과 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용규는 올 추석에도 말끔히 벌초를 해 놓았다. 하는 김에 조금만 신경 쓰고 시간을 내면 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좋으나 싫으나 참으며 옆에 있는 묘소까지 손질을 끝냈다. 이런 경우 남의 묘소에 대해서는 내 묘소에 비하여 더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도와준다고 어설프게 시늉만 냈다가는 오히려 눈치먹기 딱 좋은 일이 이런 일이었다. 말하자면 도와주고 빰 맞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처삼촌 벌초하듯 한다는 속담이 생겨났을까. 기왕 도와주더라도 예로부터 묘소를 잘 돌보는 것이 조상에 대한 효도라고 여기는 우리 풍습에 걸맞게 해야 된다는 말이다.


객지로 돌아다니는 직업을 가진 친구 역시 잘 정돈된 묘소를 보면서 그 고마운 마음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묘소에 벌초를 했으니 품삯을 주겠다고 하면 받을 처지도 아니며, 이런 경우 돈을 받으면 벌초를 해주지만 돈을 받지 않으면 벌초를 안 해준다는 소리를 듣기에 딱이다. 그러니 뭐를 바래서가 아니라 객지에서 일을 보다가 늦게 온 동창이 행여 제때에 벌초를 하지 못할 까봐, 그래서 조상에 대한 불효자라는 욕을 먹을 까봐 도와주는 차원이었다.

그렇게 벌초를 해 받은 친구도 그런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어차피 둘은 직업이 다르니 매일같이 혹은 매주 만나는 것도 아니지만 어쩌다 한 번을 만나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도움을 받고 있다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경우 그간의 회포도 풀 겸 조용한 시간에 만나 술잔도 기울이고 식사도 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니 넉넉한 인심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아마 이 둘은 벌써 마음이 통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추석 전에 벌초를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에 속한다. 직접 풀을 베고 나무의 가시를 쳐 내는 것도 힘이 들지만 그렇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직업을 제쳐두고 품을 내야 한다는 것이 어려운 축에 들어간다. 누구든지 추석에는 성묘를 하러 반드시 와야 하지만 그 전에 벌초를 하러 또 한 번의 시간을 일부러 내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 중의 하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교통체증이 덜한 시간 즉 추석을 맞아 성묘를 하기 전에 미리 벌초를 하는 틈을 타서 성묘를 마치는 실속파도 생겨났다. 이런 추세에 대하여 요즘 세태의 변화에 따른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말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따지기로 하면 일 년에 한 번 그것도 몰아서 2년 치를 연거푸 드리면 된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추석이라는 의미가 없어지면서 그냥 남이 해야 한다고 하니까 손가락질 당하지 않기 위하여 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집에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교통 혼잡이라도 덜어주고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한 시장의 편리함이라도 도와주라는 뜻이다.

이처럼 모든 일에는 정해진 사람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해야 하는 기준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내가 직접 하지 못할 경우에도 그와 못지않은 정성으로 행한다면 다른 측면에서 이해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용규의 마음씀씀이가 어찌 벌초 한 가지에 그친다고 볼 수 있겠는가. 나는 그들을 보면서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동행을 하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누가 누구에게 도움을 주려면 상대방이 그것을 필요로 할 때에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정말이지 배워야 할 시기, 성장해야 할 시기, 양육해야 할 시기, 도와주어야 할 시기 등 아주 적절한 시기에 해야 하는 일들이 아주 많이 있다. 요즘이 물질만능시대라고 하면서 맞벌이에 심혈을 기울이지만 정작 부모 없는 집안에서 아이들이 방치되거나 일정한 수당을 받고 운영하는 유아원에서 획일적인 학습효과만 받는다면 그 병폐는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예전의 효도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1년에 세 번의 벌초를 하고 있다. 풀이 자랄 때와 다 자랐을 때 그리고 추석 며칠 전에 다듬이용으로 하는 것이다. 이렇듯 복잡한 벌초를 무료로 대행해준다는 것은 그냥 이루어지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오늘도 이용규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모든 면에서 다 이렇게 신경을 쓰면서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해 준다는 것은 본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둘의 우정이 오래토록 이어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