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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

꿈꾸는 세상살이 2013. 8. 9. 13:02

남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


그에게는 아들이 둘이나 있다. 그 대신 남들에게 있을 법한 딸은 없다. 그는 성질이 얼마나 급했던지 아들을 낳을 때 한 번에 둘을 낳았다고 한다. 그리고 키울 때도 한 번에 키워냈다. 지금은 그의 아이들이 모두 군대를 갔다 와서 다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아들이 군대를 갔다 와도 푸른 집에서 근무를 했다고 한다. 우리가 들어온 푸른 기와집은 예로부터 동네에서도 하나 혹은 아예 없을 정도로 부자인 경우에나 사용하던 단어였다. 그리고 누구네 집 누구네 집 하지 않고 푸른 기와집이라고 부르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런 동네의 부자 기와집과 차별하고 싶어 고상하게 한자로 만든 별도의 이름을 붙인 집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성질이 급하다고 하였지만, 달리기를 잘 한다든지 운전할 때 차를 과속으로 몬다든지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말을 많이 한다거나 따발총처럼 상대방을 정신없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매번 전화를 할 때보면 정말 성질이 급하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곤 한다. 예를 들어 전화통화를 할 때면 상대방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항상 선수를 치며, 상대방이 뭐라고 말을 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이 사람이 바로 최규훈인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렇게 성질이 급하니 남들은 나누어 낳는 아들도 한꺼번에 낳았는지도 모른다.

규훈이는 고향에서 전기업에 관련된 일을 하다가 서울로 가서도 같은 업종에서 근무하였다. 대기업의 어느 누구를 알아서 찾아간 것도 아니고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특출한 재주가 있어서 간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확실히 수주해 놓은 공사를 눈앞에 두고 갔던 것도 아니다.

그러니 객지에 가서 맨 몸으로 부딪히는 생활이 얼마나 고달팠을까도 짐작이 간다. 마치 군대에서 신입 이등병이 병장으로 제대할 때까지에 비유하면 맞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최규훈이는 남들이 가는 전방이나 뭐 이런 데는 가지 않았고 동네에서 마을을 지키는 동네방위사령부에서 생활을 하였다. 이런 것이 잘못되었다거나 나쁘다는 것은 아닌데, 이래서 이등병이 병장까지 가는 고충을 알 수 있겠느냐 하는 생각은 들었다. 이런데도 어떤 연유로 아들은 우리 동네가 아닌 남의 동네까지 가서 그것도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규훈이는 고향친구들에게 가끔 전화를 걸어 먼저 안부를 묻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그의 안부에는 진심이 묻어남을 알 수 있다. 설 명절처럼 어떤 특정한 날에 안부를 묻는 것도 아니고, 입학 등 축하할 일에 하는 것도 아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시기에 전혀 기대하지 않는 시간에 전화를 걸어오는 것은 분명 그 만의 어떤 철학이 있는 것임이 확실하다. 마침 내가 기진하여 피곤하거나 어떤 일에 만족하지 못하여 기운을 잃었을 때 전화를 하여 격려하고 용기를 주는 것은 평소 친구에 대한 그의 관심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런 친구에 대하여 내가 가지는 규훈이는 어떤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에 특별히 빨리 하지도 않으며 또한 많이 하지도 않는다. 그는 언제나 또박또박 말하면서도 천천히 말한다. 이것이 그가 가진 장점이다. 항상 신중하면서 남을 위하는 마음이 작동하며 그런 순수한 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한 동네에서 자란 탓으로 비교적 사정을 잘 알고 있어도, 그간의 변화를 감지하고 물어오는 그의 안부전화는 같이 걱정하며 같이 즐거워하는 말로 공감해준다. 물론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여도 내가 할 일에 비하여 친구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지극히 미미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면 피를 나눈 가족이라 해도 내가 당한 고통을 덜어주기에 역부족인 것도 사실이다. 한 집안의 가장이 느끼는 가족에의 중압감은, 자식이 이해하는 부모의 마음과는 차원이 다른 것과 같은 논리다. 


아무튼 전화통화에서 항상 선수는 그의 차지다. 그의 안부는 친구인 당사자는 물론 가족 하나하나를 일일이 거명하며 동정을 살핀다. 아이들은 건강한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군대는 어떻게 되었는지, 취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묻는다. 전에 아프다던 몸은 어떤지, 그럴 때는 어떻게 하고 저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다더라고 챙겨준다. 이런 세세한 안부가 듣든 당사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므로 말하기 곤란하여 꺼려하는 사항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라 해도 다시 생각해보면 죽고 사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도 분명한 일이다.

그런데 규훈이는 이런 일에 그냥 형식적인 안부만 들먹이는 것도 아니다. 요즘 추세로 보아 어떤 직군이 향후 직업에 유망하다든지, 현재는 어떤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도 상의를 해준다.

한참동안이나 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어떤 때는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 친구의 말에 가식이 있다거나 싫어서가 아니다. 지금 귀찮으니 나중에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나도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한 안부를 물을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나도 친구로서 최소한 해야 할 도리는 하고 살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내가 물질적으로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그 쪽 사정을 몰라 실마리를 풀어주지는 못하더라도 함께 나누고 공감하며 격려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규훈이네는 자기가 하는 전기공사업과 아내가 하는 식당업의 두 가지 직업이 있는 가정이었다. 그래서 잘 만 된다면 그래도 괜찮게 수입이 되는 그런 직업을 가진 셈이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정말 그런대로 잘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그는 자기가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이제는 아내가 하던 식당을 직접 맡아서 하고 있다. 그간의 사업이야 아주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하는 업을 생각하더라도 그럭저럭 꾸려나갈 정도는 되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집안에 우환이 찾아온 이후 아내가 하던 일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수술을 거친 끝에 이제는 완치되었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병이라는 말만 들어도 묘골이 송연하도록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가끔씩 증세가 나타나면 통증을 동반하여 사람을 괴롭히는 아픔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환자를 둔 그가 이제는 다 나았다고, 안전하다고 하면 우리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였었다. 나의 슬픔은 숨기고 남의 축하할 일을 찾아내어 칭찬하는 그는 대단한 성격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나는 평소 나의 슬픔을 앞세워 남의 아픔도 아랑곳하지 않았었는데, 거기에서 나아가 남의 칭찬을 찾아낸다는 것은 사실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남들이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피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보다 남의 걱정을 우선으로 여기는 그의 성격에 고마움을 느낀다. 설사 그것이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한 가식이라고 하여도 그렇게 오랫동안 일관되게 챙겨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규훈이는 또한 이런 저런 말만 앞세우는 그런 얌체도 아니다. 멀리 떨어져있는 고향에서 모임을 가져도 시간을 내어 참석을 하는 성의를 가진 사람이다. 식당업이라는 것이 남의 입에 밥을 먹이는 것이라, 직업의 성격상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때에 토의할 내용을 미리 전화로 확인하고 의견을 제출하며 결과를 부탁하는 친구다. 그리고 결정된 사항에 대하여 잘 따르고 이행한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그랬던 친구가 식당업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오겠다고 한다. 고향에는 연로하신 어머님도 계시고 친척들이 있으니 복잡하고 어려울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잘 되고 있는 직업을 마다하고 왜 고향으로 오겠다는 것인지가 문제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들이 듣기로는 힘들고 또 힘든 직업이 식당업이라고 하더니 많은 사람으로부터 시달리고 지쳐서 고향에 와서 쉬려는 것은 아닌지 짐작만 할 뿐이다.


힘들고 어려우면 고향을 찾아 쉬려는 마음! 어떻게 보면 이것은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다. 재충전을 하거나 새로운 삶의 방향이 주어지면 다시 고향을 떠나 자신의 욕구를 실행하는 잠시 머물러 재충전하는 장소로 고향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좋자고 찾았지만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던 힘든 것을 다 내려놓으면 고향은 항상 근심거리와 고통 그리고 어려움으로 쌓여 어찌 될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고향은 이 모든 고통을 껴안고 위로하며 지고 갈 것이다. 그리고 고향에 있는 사람들은 고향을 찾는 출향인들을 아무 말 없이 맞이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살펴볼 일은 평소에 고향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친구들에 대하여 냉대하던 사람들은 고향 찾기를 주저한다는 말이다. 반대로 규훈이는 어머님의 품과 같은 고향을 언제 아무 때나 찾을 자격이 있다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사람을 중히 여기고 사람이 베푸는 정을 고맙게 여기는 그의 심성으로 보아, 고향과 친구들이 그립다는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들린다. 좋아하고 아껴주는 사람끼리 부대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인간으로서 가장 행복한 덕목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마치 오래 전 문명도 없이 오직 사람과 사람만이 존재하던 씨족사회의 사람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