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등불을 담은
초등학교 졸업 후에 50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동창들도 있다.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식이라도 듣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생사조차 모르고 전혀 연부를 듣지 못한 친구들도 부지기수다. 물론 이것이 세상 살아가는 이치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보고 싶은 간혹은 소식이라도 전해 듣고 싶은 친구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동창 중에 한 명이 이흥갑이다. 우리 어릴 적 만하여도 사는 게 힘들어 헐벗고 주린 것은 필수였으며, 기와집에 대문이라도 번듯하게 만들어진 집은 항상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배고픈 사람이 더 많은 시절이었으니 너나 나나 서로가 비슷한 환경에서 잘 어울리며 지냈던 때였다. 흥갑이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흥갑이는 성격이 활달하여 여러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 이야기 하는 축에 들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떠벌리며 사사건건 끼어들어 참견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냥 지내기 좋을 만한 그런 부류에 속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당수는 이리저리로 흩어졌지만, 그래도 고향에 남아 있던 친구들은 비교적 오래까지도 서로 내왕하며 만나고 있었다. 흥갑이도 그렇게 고향에 남아있어 여러 지인들과 어울리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더니 어느 날 갑자기 고향을 떠나 객지로 나서고는 소식이 끊어졌다고 하였다. 내가 한 번쯤은 만나고 싶었던 사람 중에 한 명인 흥갑이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동창의 모임인 인터넷카페가 개설되고 얼마가 지난 후에 흥갑이가 회원으로 등록을 하였다. 그때가 바로 작년이다. 여태 소식을 몰랐었지만 떠날 때처럼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이 흥갑이라며 문을 두드릴 때는 정말 반갑기 그지없었다.
나에게 있어서의 흥갑이는 그냥 착한 아이였다. 비록 최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평범하면서도 붙임성 좋은 모범생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한 가지 단점을 들자면 나 혼자 생각인줄은 알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나에게 잘 대해줬었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일까.
어릴 적에 코흘리개였던 흥갑이가 도를 닦는 선인이 되었다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니, 그만큼 많은 세월이 흘러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하긴 나도 어디를 가든 아버님께서는 어쩌고 저쩌고 하거나 어르신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들으니 흥갑인들 어찌 변하지 않았을까.
도를 닦는 사람들이 다 그러하는지 흥갑이도 아직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놓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딱히 자신을 숨기고 있지는 않다고 하면서도 만나기 어려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인 듯하다. 오랜만에 접하는 그를 대하니 세상의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였었는데, 잠시 후 그 순간을 벗어나니 뭔가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한 마디 글귀 한 자에서 묻어나는 의미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흥갑이는 처음부터 애써 그런 면을 나타내지 않으려 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정말 흥갑이는 도를 닦아서 다른 사람의 마음조차 헤아리고 있단 말인가. 카페를 드나들면서 관심 없는 친구들은 잘 속였는지 몰라도, 나한테는 자기도 모르는 어느 사이에 신분을 들키고 만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손에 등불을 들고 자신이 갈 길을 밝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머리에 전등을 달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밝히지만, 어떤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불을 밝히지만, 흥갑이는 마음에 불을 당기고 여러 사람의 영혼을 밝혀주고 있었다.
홀로 높게도 있는 자(者)요
홀로 낮게도 있는 자(者)요
편견(偏見)도 없는 자(者)요
차별(差別)도 없는 자(者)요
기울지 않는 평등(平等)으로
세상의 등불이 되는 자(者)다.
흥갑이는 이름하여 심등(心燈)이다. 심등이 불교용어로써 모두가 평등하며 급하거나 더딜 것도 없으니 마음의 평화를 얻고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이다. 시간이 된다면, 여건이 된다면 한 번쯤 흥갑이를 찾아가서 만나고 싶은 지기다. 그냥 어릴 적 친구를 만나는 것도 아주 뜻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내가 경쟁과 시기와 질투를 떠나 조용한 평화를 얻기 위한다면 어쩌다 한 번쯤은 찾아가 봄직도 할 것이다. 마치 한창 떠오르는 힐링으로 편백나무숲을 즐겨찾는 사람들처럼....
흥갑이는 아직도 고향의 옛 동무들에게 나서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하는 행동을 보면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을 위하여 좋은 말을 하면서 남도 나와 같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전하는 그가, 심신을 수련하면서 욕심을 비우는 그가, 우리 고향 동창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도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격려와 응원을 보낼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도를 닦아 신령이 되는 것을 꿈꾸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 많은 수련을 쌓으면 배가 없어도 강을 건널 수 있고 천리길고 하룻밤 사이에 다녀올 수 있다는 꿈도 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수양을 통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마음의 양식을 전햊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모든 사람들의 꿈을 실현해낸 흥갑이는 아주 성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이 꿈꾸던 일을 자신이 달성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바를 다른 사람들이 믿어주고 따라주는 것이라면 더욱 값진 인생일 것이다. 마음 한 구석에는 나도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하는 생각이 고개를 내민다. 혹자는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도피수단으로 자기 수양을 하며 은둔자의 길을 간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한 것이 거의 모두 틀렸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도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나 외에는 모두가 생활의 낙오자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친구 중에 불교에 심취한 자가 있었다. 그 친구는 미얀마에 가서 수도생활을 하여 이른바 득도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다. 나는 그 친구를 일부러 방문한 후에 도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친구였는데 몹쓸 병이 들어 치료차 왔다갔다 하다가 미얀마에 정착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혹독한 수도자의 길을 걸었다고 하였다. 마당쓰는 일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선각자가 된 후 지도자가 된 것이었다.
그때 이 친구는 순식간에 깨달음이 왔다고 하였다. 내가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무슨 일에 대한 해명이 되고 이치가 해석되었다고 하였다. 그렇다. 깨달음이란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부지불식간에 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기까지는 많고 많은 수행이 따랐을 것은 불문가지다.
흥갑이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 정도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한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에 깨달음이 오기까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뇌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흥갑이가 다시 뵈는 것이다. 비록 그 보다는 못 미쳐 훨씬 낮은 수준이라 하더라도 이미 삶을 터득한 선각자일 것이다. 나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 그런 처지일 줄은 알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만나고 싶은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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