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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일주를 시켜주겠다는

꿈꾸는 세상살이 2013. 8. 9. 13:12

전국일주를 시켜주겠다는


얼마 전 양구의 수색대가 새해 아침 특집 프로로 방영된 적이 있다. 나를 위하여 하루를 여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시작하는 수색대원들이기에 그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프로로 만든 것이었다. 또한 국민에게 그들의 실상을 자세히 알려 노고를 칭찬해달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누가 뭐래도 바로 우리의 아들 국민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그날 방영된 내용은 바로 내 아들이 근무하는 수색대를 소개하는 참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방에 살고 있는 탓에 그 시간대에 지역별로 편성된 지방 방송을 보아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참으로 아쉬움이 많은 시간이었다.


운고는 사나이 중의 진짜 사나이다.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에서 보듯이,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이 진짜 사나이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자기도 군대에 갔다 왔다고, 군대만 갔다 오면 다 진짜 사나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 비해 운고는 1군의 최전방에서 근무를 하였다. 그것도 철책을 지키는 수색대원으로 복무하였으니 진짜 사나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수색대원은 특수부대가 아닌 일반 육군이면서도 군기가 세고 생활이 고되기로 정평이 나있다. 적의 침투를 1차 저지선에서 직접 막아야 하며, 때로는 철책 안으로 들어가서 매복을 서야 하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부대이다. 그런 면을 감안한 때문인지 예전에는 차출을 하였지만 요즘에는 지원자들 중에서 선발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수색대의 생활은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나 또한 1군에서 근무하였으며, 그 당시 민통선에서의 철조망작업을 비롯하여 철책 안에 들어가서는 지뢰제거 및 매설작업을 하였던 터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얼마 전에는 수색중대방인 아들을 면회하면서 부대를 돌아본 적도 있었기에 실감할 기회도 가졌었다. 

또한 온기 한 점 없는 가운데 엄동설한 매복은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도 경험한 바이다. 낮에 힘든 훈련을 하고 야간에 매복을 서다보면 아무리 추워도 쏟아지는 잠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러나 자칫 잠이라도 들면 저체온증에 걸려 그대로 동사하고 마는 상황도 벌어진다. 죽느냐 사느냐를 내가 선택하는 시점에서도 잠이 오는 것은 군대생활의 어려운 면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순간일 것이다.


운고가 휴가를 나와 고향에 있을 때 나 역시 휴가를 나와 정말 우연찮게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마침 며칠 후면 군에 가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군에 제출할 서류 중의 하나인 신상명세서를 보니 친구를 적으라는 난이 있었다. 그 친구는 우리를 보고 잘 되었다며 반갑게 대하더니 우리의 인적사항을 적어갔다. 당시 비록 소위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보다는 그래도 장교를 친구로 두었다고 하면 더 좋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나를 적었던 것이다. 그리고 운고의 인적사항도 적어갔다. 당시 운고는 수색대 복장을 한 상태였으니 폼으로야 제법 그럴듯하였던 때문일 것이다. 민정경찰이라는 단어가 뚜렷한 마크를 달고, 거기다가 공수낙하를 인정하는 윙마크가 있는 것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럴듯하였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 친구는 부산 해운대에 있는 하일리아부대에서 근무를 하였다.


수색대의 정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천리행군을 꼽는다. 천리행군이란 글자 그대로 천리를 걷는 훈련인데 처음 나갔던 병력이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다 들어오는 것이 원칙이다. 사실 우리야 말이 천리지 얼마나 먼 거리인지 생각이나 해보았는가.

다시말해 천리 즉 400km를 열흘 만에 주파하는 훈련이다. 그렇다면 하루에 40km씩 매일 반복해서 걸어야 한다. 우리 일반인들이 4km를 걷는데 보통 1시간을 잡는다. 마음먹고 걷기로 말하면 그보다 빠르기는 하겠지만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 것이라든지 몇날 며칠을 걸어야 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도 너무 과한 여정이다. 따라서 매일 10시간 씩 그리고 10일간을 걸어야 하는 훈련은 그야말로 지옥훈련에 속한다. 물집에 생겼다가 터져 피가 나오는 것은 기본이고 발바닥 껍질이 한 꺼풀 벗겨지는 고통도 따른다. 마침 비라도 오는 날이면 그야말로 생지옥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완전군장의 무게는 자그마치 35kg이상 40kg까지 나가는 것이니 정말 상상하기 힘든 과정이다.

혹자는 말한다. 그런 훈련은 특전사를 비롯하여 특수부대에서도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 다른 부대에서도 하는 훈련인 것은 맞다. 그런데 수색대는 길고 지루한 인내력의 훈련이며, 다른 부대는 빠른 시간 내에 침투하여 작전을 수행하는 속전속결의 훈련이라 할 수 있다. 더하여 생존훈련이라는 과목도 있기는 하지만 완전군장으로 다니지는 않는다. 각자가 개인의 역량에 따라 최선의 방법을 찾는 다른 부대의 훈련에 비하면 수색대의 천리행군은 1개 대대가 한 가지 목표를 두고 혹독한 훈련을 하는 아주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이러한 천리행군의 피날레는 낙오자 없는 전원복귀에 있다. 하지만 여러 상황으로 부상을 당하여 같이 하지 못하는 환자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마지막 위병소를 통과하는 순간만은 모든 대원이 힘찬 구호와 함께 걸어서 들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이렇게 보면 운고는 군대에 다녀온 진짜사나이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운고는 자신이 수색대에서 근무하였다는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남들이 말하는 수색대가 아무리 힘들다고 하더라도, 남들도 다 하는 곳인데 뭐가 그리 특별할 게 있느냐는 생각이었다. 정말로 나는 운고가 군대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보통의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는 약방의 감초라지만 운고에게는 쓴 익모초였는지 도대체 말이 없었다.

그런 그가 함부로 허튼 소리를 하지 않을 것도 틀림없다. 언젠가는 반드시 전국일주를 시켜줄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운고가 지금보다 더 형편이 나아지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여럿이서 탈 수 있는 다인승 차량을 하나 더 구입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박운고는 자신이 고생을 해보아서 그런지 남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또 누군가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더라도 화를 낸 적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운고는 그의 넓은 가슴만큼이나 마음이 넓다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운고를 두고 사람만 좋으면 뭐하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운고처럼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도 드물다. 개인택시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운고 역시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이 생기면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며 근육을 풀어주는 것은 기본이다. 장시간 앉아서 하는 직업의 특성상 반드시 해주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또한 일에 있어 무리하지 않는 다는 철칙을 지키는 사람이다. 무리하게 달리고 무리하게 일을 하다보면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따라서 조금은 늦더라도 조금은 덜 벌더라도 서두르지 않는 것이 특장이라면 특장이다.

택시운전자들은 난폭운전을 하는 것이 태반이다. 오죽하면 혼잡한 도로에서는 택시 뒤에 따라가는 것도 안 된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급가속에 급정거는 기본이고, 위험을 초래하면서까지 추월을 한다거나 고의로 서행을 하는 등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것이 택시 운행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신호등 없는 삼거리에 들어서려는 순간 좌회전하려는  차량을 만났다. 나는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 저 택시는 과속으로 달려올 것이니 내가 애먼 피해를 당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렸다가 가자는 생각을 하였다. 자칫하여 접촉사고라도 난다면 나의 기본 공제가 들어갈 것은 물론이며 나도 많은 시간을 손해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오는 택시는 생각보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완전히 차를 세운 후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하였으나, 그 차는 오히려 나보고 먼저 가라는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 거리나 주변 상황으로 보아서는 택시가 먼저 돌아가고 난 다음에 내가 돌아서는 것이 순리인데 택시운전자는 그러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러다가 사고가 나더라도 내 잘못이 더 크게 적용될 것을 우려하여 나는 먼저 가라는 신호를 계속하여 보냈다.

내가 그러면서 멈칫멈칫하는 순간에도 택시는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난 나는 창문을 열고 한 마디 해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택시운전수는 잘못하고서도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것이 상례이며, 때로는 몸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나 머리로는 이성을 찾고 있었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는지 저쪽의 택시 운전자도 창문을 내려 마주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누구인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박운고였던 것이다.


이렇게 운고는 다른 택시 기사들처럼 운전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도 답답할 정도로 안전운행을 하며 남을 배려하는 정신이 철저한 사람이다. 나는 그런 운고에게 충고를 해준 적이 있다. 지금은 비록 혼자서 운영하는 개인택시를 하고 있지만 익산에서 운고의 택시를 타면 모두가 행복해지고 유익한 시간이 되도록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공부도 하고, 정치며 문화, 사회, 경제 등 모든 것을 섭렵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친절하고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익산의 명물로 거듭나고 전국에서도 익산의 박운고를 알게 하는 그런 운전자가 되라고 했었다.

그러나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닌 것 같다. 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하였다고 운고가 그렇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안전운전은 지키고 있는 것 같아 고마운 마음도 든다. 물론 그것이 내가 하라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운고 자신이 원래 타고난 성격이 그래서 그런다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운고가 모범운전자인 것이다. 남이 하라고 해서 한다면 그것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인형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자신의 철학이 들어간 운전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래야 다른 부문에 있어서도 모범 운전자로서의 면모를 키워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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