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고향지킴이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지 못한 채 대대로 지키고 있는 사람을 정통파 고향지킴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 중에서도 학교는 물론이며 남들이 다 가는 군대도 고향을 지키면서 마친 사람이 있다면 정말 정통파임에 틀림없다. 고종환이 이런 사람으로, 나이 60이 다 되도록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객지를 돌면서 문물도 넓히고 사회생활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얼핏 생각해보면 그 말도 일리는 있다. 자신이 접하지 못했던 환경에서 여러 형태로 쌓은 경험들은 어떤 일을 하는데 아주 귀중한 자산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시간에 객지가 아닌 고향에 남아있었다면 그 시간 동안 고향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경험은 오로지 고향지킴이만이 알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그러니 어느 일에 어느 것이 옳다고 가타부타할 수는 없으며, 다만 자신이 하는 직업에 혹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어떤 쪽이 더 합리적인지 따져보는 정도일 것이다. 고종환이 이런 생각을 하였는지 안 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교를 마치고 나서 지금까지 줄곧 고향에서 생활하고 있는 친구 중 한 명이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특정한 직업에 속해있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경험을 쌓으면 간접적으로나마 일에 도움이 될 것은 당연한 이치다. 앞으로 전개될 미래 세상에 대한 추정이라든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 경우에 객지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에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지에 대하여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가슴에 남는 어떤 말 중에 산을 지키는 것은 못난 나무들과 잡초라는 말이 있다. 내가 산을 오를 때 숲이 있고 계곡이 있다면 기분이 상쾌하면서 뭔지 모를 정감이 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건강 혹은 육체적 건강을 위하여 산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보다는 산이 나에게 주는 선물만을 받아들기 바쁘다. 내가 산에 오르도록 해준 여러 조건에 대하여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현재 주어진 환경만을 느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산을 이루는 나무에 대하여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거나, 산등성이를 안고 있는 잡초에 대하여는 무관심한 것이다. 만약 이런 잡초나 나무들이 없었다면 산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며, 내가 산에 올라도 예전과 같은 기분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산을 지키는 나무나 잡초는 사람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반듯하고 키가 큰 나무는 집을 짓는데 사용하기 위하여 잘라나가는 것이며, 통통하며 길고 곧은 풀들은 가축의 먹이나 퇴비용으로 베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사람들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객체들이 산의 주인으로 남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생긴 것으로 평가하지 말고 어떤 의미인지로 평가하라는 뜻이다.
이 말을 사람으로 비유하기는 좀 그렇지만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지킴이는 얼핏 들어 부적격자이거나 무능력자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지킴이가 없었다면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머리 돌리고 찾아갈 고향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고향에서 축적된 경험을 쌓고 자신의 일을 하면서 고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였음을 인정하여야 한다. 역시 고종환이 그런 예에 속한다.
객지에서 돈을 많이 벌었거나 지위가 높아진 친구들에 비하여 비싼 차를 사거나 해외여행을 많이 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런 외에 다른 면에서는 똑 같음을 알아야 한다. 돈 있는 친구들이 밥 세 끼 혹은 네 끼를 먹을 때 고향지킴이 역시 세 끼 혹은 네 끼를 먹는다. 돈 많은 친구들이 비싼 술을 마시고 취하여 추태를 부릴 때 가격은 좀 싼 술일지 몰라도 고향지킴이 역시 싫도록 마시다가 취하면 추태를 부린다. 여기서 비싼 술을 마시고 추태를 부렸다고 천당 가고 싼 술을 마시고 추태를 부렸다고 지옥 가는 것도 아니다. 하루에 밥 다섯 끼를 먹었다고 극락가고 세 끼를 먹었다고 연옥에 가는 것도 아니다. 객지에 살았다고 아들딸 낳고 고향에 살았다고 아들딸 못 낳는 것도 아니다. 객지에 살았다고 로또복권에 당첨되며 고향에 살았다고 당첨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객지에 사나 고향에 사나 다를 것은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종환이와 같이 고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좋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기적이어서 평상시 내가 배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그런 사람들의 고마움을 모른 체 살아간다. 고향이란 내가 피곤하고 외로울 때 찾으면 누군가가 나서서 술을 사고 밥을 사주지 않아도 스스로 위로를 받고 심신을 달랠 수 있는 곳이다.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고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고향에는 고향 지킴이가 있어야 편안하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내가 내 일을 하기 위하여 정신이 없을 때, 내가 돈을 많이 벌어 기분이 좋을 때, 내가 직급이 높아져 권위를 내세울 때, 내가 편안하고 여유로운 때에는 고향에 대한 고마움을 알지 못한다. 그럼으로 지금쯤 고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고향지킴이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관심도 없다. 하지만 고향지킴이는 그러는 도중에도 혹시 잦은 비에 고향이 떠내려가지는 않는지, 산사태에 고향이 묻혀버리지는 않는지,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막혀 외지와 단절되지는 않는지 온갖 근심과 걱정으로 고향을 붙잡고 있다. 그래서 내가 필요할 때 찾아오면 언제든지 반겨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고향이며 고향지킴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고향에 대하여 고향지킴이에 대하여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고향아 고맙다! 고향지킴이야 고맙다!
사실 나는 고향을 지키고 있는 고종환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고 형제들도 모두 고향을 떠나 객지로 나간 지 오래다. 거기다가 부모님이 사시던 고향집마저 다른 사람에게 팔아서 이제는 머리 돌리고 돌아갈 고향이 없는 셈이다. 이런 나에게 고향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길을 가다가 고향을 지나칠 때 들르는 곳이 있다면 바로 고종환이네 집이다. 그리고 가는 길에 들러 만나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고종환이다. 그러면 종환이는 내가 없었던 시기에 일어난 일들을 모아 나에게 전달해준다. 말하자면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마치 그 동안 고향에 살았던 것처럼 아름다운 추억들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고종환이라는 사람과 그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바로 고향을 방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고향지킴이가 바로 고향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런 고종환은 술도 잘 마시고 담배도 태우며 노래도 잘한다. 말하자면 남이 하는 것은 대체로 빠지지 않고 다 하는 숨은 인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담배도 태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 게다가 몸이 아프다는 이유를 달아 육식을 기피하며 식당에서 파는 일반적인 음식도 먹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 더하여 노래까지 못 한다. 이런 나를 고종환은 잘 이해해 주고 있어 마음이 편하다. 이렇게 따져놓고 보니 내가 고종환이보다 나은 게 별로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내가 고종환이를 방문해도 나에게 손해될 일은 없는 것이다. 실제적으로도 고향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손해 볼 일이 없다. 대체로 고향에 머무는 동안 휴식을 취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 재충전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고향의 역할이며 고종환이의 역할인 것이다.
이렇게 모든 알고 있다는 나도 고향에 대하여 그리고 고향지킴이에 대하여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지낸다. 말하자면 그냥 범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도 바쁜 일상 때문에 그냥 돌아가기 바쁘다. 더구나 사람을 방문하는 것은 더더욱 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 사람의 형편이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고향이나 고향지킴이에 대하여 그 존재감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잘 알지만 그 존재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을 잊고 살았더라도 고향은 나를 이해하고 감싸준다. 고향지킴이 역시 그런 나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준다. 이래서 고향이 좋고 고향지킴이가 좋은가보다. 최소한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을 찾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고향지킴이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부모 형제가 없는 고향에서딱히 내가 얻을 것은 없다. 그러나 고향을 찾고 고향지킴이를 방문하면 푸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지금은 남의 소유가 되어버린 고향집을 둘러보기도 하며, 고향지킴이를 방문하여 세월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 중심에 고종환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고종환이의 역할에 아주 크다는 것을 느낀다. 최소한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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