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재미로 산다는
내가 다니던 직장의 한 지점에서만 약 200명이 근무하던 곳이 있었다. 그때 나이가 몇 살 적은 후배사원으로 김용제가 있었다. 용제는 비교적 남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나 한 번 정을 주면 속마음을 전할 정도로 가까이 지내는 측면도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고르고 골라서 사귀는 신중함이 따를 것이다.
그런데 회사 직원들은 용제를 좋게 보는 사람보다 안 좋게 보는 사람이 약간 많은 것 같다.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찾으려 든다면 가끔은 엉뚱한 얘기를 한다는 것일 게다. 그는 회사의 직원이 아닌 내가 들어도 가끔은 엉뚱한 얘기를 하여 대답하기 난망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직접 대화의 당사자인 회사 직원들이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것이 자신의 업무와 관계되는 일이라든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관계되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에서 회사가 살아남는 방법을 이야기한다거나 경쟁구도에서 이기는 방법을 이야기할 때는 그의 논리가 선명해진다. 그는 현재의 일에서 한 수 앞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한 수 앞에서 일어날 것은 이러저러한 환경에서 일어날 것이니 애시당초 이것을 실행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나 역시 그의 혜안에 놀라기 일쑤다. 그렇게 하면 정말 이루어질까 하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대로 하면 될 것 같은 느낌은 강하게 받는다. 그래서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공감을 하게 되며, 다른 사람이 생각할 수는 있으나 생각하지 않는 것까지 끄집어내어 계획을 세우는 면은 훌륭한 사고라 할 수 있다.
김용제는 가끔 제안제도를 제출한다. 그러나 그 제안은 그냥 어떻게 하자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어떻게 되니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행작업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이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제출하는 단편적인 제안보다 훨씬 깊고 의도적인 제안이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내용을 브레인이라고 하기도 한다. 브레인이란 단어의 본래 뜻이야 특정물질을 이르는 일반명사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탁월한 제안과 그런 사람까지를 포함하여 일컫는 단어로 혼용하여 쓰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김용제는 내가 생각하는 브레인에 속한다. 아직은 덜 다듬어져서 방향이 빗나가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판단해보면 그렇게 불려도 충분한 내용들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용제는 지금 당장 내가 할 일이 많아진다거나 힘들게 돌아가는 느낌을 받더라도 전체적인 성과를 위하여 현명한 판단을 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을 되짚어 생각해보면, 김용제는 자신은 물론 타인의 이불리를 떠나서 일의 옳고 그름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해석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 말은 개인보다는 다수를 먼저 생각한다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그러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그렇지! 그래!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게 된다. 물론 이것도 그와 같은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이겠지만 말이다.
이런 김용제는 아들도 없이 딸만 넷이나 둔 딸부자네 가장이다. 딸 넷을 가르치려면 요즘 같은 세태에서 힘에 부치지 않을까 여겨진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여 부모의 기분이라도 좋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내가 들어도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썩 좋은 성적을 내주지 못했기에 상대적 박탈감에서 더욱 그런 마음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애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물론 민속고유의 창도 잘하여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아무튼 여러모로 보아 그래도 자식농사는 잘 지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 면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부러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냉정한 사회의 현실에서 본다면 그런 칭찬은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이기에, 오히려 그런 것들이 김용제와 거리를 두게 하는 것으로 작용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직장에서 받는 급여 외에 금융투자를 하여 재미를 본다는 말도 흘러 들렸다. 직장에 다닌 지도 오래 되어서 급여도 제법 많이 받는 편에 속하며, 게다가 부업으로 쏠쏠하게 번다는 것은 분명 경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요건이었다. 거기에 업무적으로도 입바른 소리를 한다면 말이다.
김용제는 지금이야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와 같은 영등동에서 그것도 바로 옆 아파트에서 살았었다. 많은 지인들이 있지만 바로 인근에 살고 있다는 것도 가까워지는 하나의 조건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지 나는 처음부터 김용제와 그렇게 거리를 두지 않고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던 김용제가 어느 날 갑자기 이사를 갔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말이다. 한참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위의 부업인 금융투자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가 하는 직업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이니, 부업에 대해서는 본업만큼 신경을 쓸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다른 사람 중에 김용제가 하던 금융투자를 본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김용제의 본업만큼 신경을 쓰면서 관리를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금융투자에서 잘못 될 확률이 적어진다는 논리다.
그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가족이 흩어지는 어려움까지 겪었다는 얘기를 들어보면 보통 그 이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때 김용제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업무시간에 왜 부업을 하였느냐, 그것도 돈이 없으면 말아야지 빌려서까지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일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므로, 그런 말로는 해결될 수가 없는 노릇이었으며 그의 아픈 마음을 달래줄 말도 아니었다. 용제는 이때 비로소 어떤 일에 합당하는 특정인에게 해줄 말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는 말처럼 김용제에게도 고난과 시련에 부딪쳤을 때 해결책을 제시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졌더라면 김용제는 지금쯤 직장에서 계속하여 근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여러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도와준 덕분으로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이때 김용제는 새로운 인생의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최저 수준으로 먹고 살면서 자신의 용돈이 한 달에 15만 원이었을 때, 그는 절약하고 또 절약하여 남을 돕는 기부를 하고 있었다. 예전에 많은 급여를 받으면서 그리고 금융투자를 하여 그런대로 재미를 볼 때에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들을 그 어려운 시기에 해낸 것이다.
이것이 김용제가 달라진 내용이었다. 어려운 시련을 겪으면서 나 외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보다도 더 어렵게 살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뜬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실천하였다. 나 자신을 위하는 것도 좋지만 눈을 조금만 밖으로 돌리면 나를 필요로 하는 다른 환경의 사람들을 충분히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셈이다.
그러기를 몇 년. 이제 김용제 가족은 다시 뭉쳤다. 아픈 상처를 남에게 보이는 것이 싫은 것은 확실하지만, 더군다나 남이 그 상처를 들춰내는 것은 견디기 힘든 것이지만, 어찌 되었든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긴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것이 비록 남에게 자랑할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과정에서 다시 일어선 것만큼은 높이 평가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그의 생활은 거의 정상수준까지 와 있다. 게다가 큰 애가 올해 말이면 교육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그러면 교육비면에서 한 사람 몫을 덜게 되는 것은 물론이며, 자신도 수익을 내는 경제활동을 할 것이니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것도 분명하다. 김용제는 이런 환경에서 딸 재미로 산다고 하였다.
공부를 시킨다는 명목으로 멀리 부산으로 혹은 광주로 떠나보냈던 때, 그리고 잠시라도 가족이 헤어져 살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분명 행복한 시간임이 틀림없다.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가족은 다시 뭉치고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제 그는 가족들과 만나 단란한 시간을 보내도록 일부러라도 기회를 만들고 있다.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말처럼 그의 가족들은 어려운 고비를 넘겼으니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며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의 이유를 알았으니 더 행복한 가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이 어려운 고비를 넘겼듯이 남에게 처한 어려운 환경을 잘 이해할 것도 믿는다. 때로는 견디기 힘든 어려우면 닥쳐오더라도 그럴수록 더 힘을 내어 잘 헤쳐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그가 나에게 고마움을 전해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그를 도와준 것은 없다. 어려운 처지를 당해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그에게 박수를 보낸 것이 전부인 나다. 그러나 용제는 그런 과정 하나하나가 자신에게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는 말을 하였다. 정말 내가 한 작은 한 마디가 용제에게는 큰 힘이 되었단 말인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현실 속에서 세 치 혀 한 마디가 어느 한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나 반대만 하지 않으면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이것은 천 냥 빚을 갚지 않으려고 입에 발린 말 한 마디를 꾸며내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얘기가 된다. 따라서 질책보다는 칭찬을 하며, 냉대와 멸시보다는 위로와 격려가 더 필요한 것이다. 내 처지를 진정으로 설명하고 이해와 양해를 구하면 속마음이 전달되어 천 냥 빚을 탕감 받을 수 있는 말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빚을 준 사람은 천 냥이나 되는 돈을 한 번에 탕감해주는 쓰라림을 겪으면서도 기꺼이 탕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진정성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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