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정철우는 나와 나이 차이가 많아서 그냥 친구라고 하기에는 뭐 하지만, 그렇다고 형님 동생 할 수는 없으니 남들 앞에서는 그냥 동료라고 부른다. 정철우는 우선 나보다 키가 크다. 나는 키가 작으므로 나보다 키가 큰 사람에게는 한풀 꺾이고 들어가는 면이 없지 않다. 풀어보면 무슨 대화를 하더라도 고개를 쳐들고 말을 하려면 분위기도 이상하고 목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썩 좋은 자세는 아닌 것이다. 이런 것을 아는지 철우는 항상 저만큼 떨어져서 이야기를 하는 센스를 보여준다. 내가 말은 하지 않았어도 정말 대단한 센스장이임은 틀림없다.
철우가 회사에 입사한 지도 제법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는 키가 크지만 덩치는 적당하여 군살이 없는 이상적인 체형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신체도 유연하여 무슨 일을 하든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다보니 과격한 운동을 할 때에는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경향도 있기는 하다. 이것이 말하자면 찾고 찾아서 골라 낸 정철우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만큼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친구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본 정철우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정이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친구들을 모아놓고 밥을 사거나 술을 사는 다정다감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다보면 어려운 또는 쉬운 일을 가리지 않고 닥치게 마련이다. 그런 중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철우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소신껏 행동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어느 누군들 자신의 평정심을 잃어가며 버둥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 까마는 그래도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철우가 더욱 그렇지 않나 하는 얘기다.
회사가 아닌 밖에서 처음 만난 철우는 드라마 서동요를 촬영하였던 세트장에서였다. 마침 드라마가 종료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래서 한창 인기 중에 방영된 드라마 서동요를 보았던 사람들은 주말을 이용하여 시골길을 멀다하지 않고 모여드는 게 일상화되었던 때였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많고 아무리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 하더라도 관심이 없으면 찾지 않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다. 게다가 장소는 여산의 저수지 옆길 산 중턱 시멘트 길이라면 말이다.
그때 본 철우는 가족과 함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부부가 찾은 것으로 보아 가족나들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생각하지도 않은 장소에서 뜻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니 반가운 면이 많았다. 출근을 하면 매일처럼 만나는 동료지만 그래도 밖에서 만난 다는 것은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교통이 편리하고 유흥시설이 잘 갖춰진 위락시설에 놀러가는 것이 일반화된 상식이지만, 그래서 그곳 시골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정에 충실하고 가족에게 자상한 아빠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되었다. 사람의 정이 흘러넘치는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철우는 나에게 부인을 소개하면서 인사를 시켰다. 그리고는 멀리 있는 아이들까지 불러서 아빠가 아는 사람으로 웃어른이라는 말과 함께 인사를 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콧등으로 인사하는 애들을 다그쳐 정중하게 다시 인사를 시키는 모습은 내가 다 겸연쩍었다. 그때 나는 철우에게서 그리고 철우네 가족으로부터 인사를 받을 만큼 행동을 한 사람인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인사 한 마디에 어느 개인이 일상을 되돌아보고 삶을 계획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럼 나는 다른 사람을 대하면서 저렇게 공손하게 그리고 사회의 규범을 지키면서 가르치고 있었는가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말하자면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더니 아마 이런 말을 두고 하는가 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은 나 역시 가족 나들이를 갔던 참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커서 객지에 나가 있는 바람에 단 둘이서만 방문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아내를 불러 정중하게 인사를 시키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핑계를 대자면 아내가 처음 보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더하여 나도 그에 버금가게 나는 나이며 너는 너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나 싶다.
그런 철우는 회사에서는 조용한 직원이었다. 남보다 앞서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며 무슨 일에 자기 공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물론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 못한다거나 다른 사람의 일을 망친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굳이 그런 것들은 세세하게 따져보자면 여느 사람들이 보통 하는 정도의 실수나 성공 정도로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가 처음 새내기로 입사한 사람이 아니라 중도에 입사한 경력사원으로서 어느 정도의 실력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입사 자체가 불가능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는 신입사원이라면 약간 부족하여도 잘 가르치면 바라는 직원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경력사원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지금 필요로 하는 직무와 관련하여 바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 경력사원 채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굳어진 근무습관과 잘못 터득한 경험이 그의 업무 적응을 방해할 수 있는 우려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기 보다는 경력사원으로 입사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정철우는 이런 관문을 뚫고 입사한 훌륭한 능력자였던 것이다.
이제 와서 입에 발린 말을 하자면 나는 처음부터 그런 철우를 좋게 보았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묻는 다면 앞에서 언급한 그런 상황들을 미리 예견하였다고 대답할 것인데 이 말을 믿어 줄지는 모르겠다.
세상을 살다보면 항상 내가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바라는 것보다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아픈 결과를 내기도 한다. 철우 역시 항상 좋은 결과만 얻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내가 겪었던 것처럼 혹은 남들이 겪었던 것처럼 어려운 고비도 많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승진과 관련된 것으로, 야심차게 기대했던 희망에 비해 낙망이 더 컸던 그런 사건이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쉽게 통과할 수 있겠다고 추측하였기에 얻은 실망도 더 컷을 것이다.
그 뒤로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철우 앞에서는 승진에 관한 이야기를 자제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철우가 마음 상할 까봐 조심하고 꺼려하였는데 급기야는 금기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일에 대하여 너무나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은 오히려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누구든지 아픈 과거를 잊고 하루빨리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는데, 그것을 덮어 둔 채 언제까지나 아픈 상처를 그대로 간직한 채 살게 만듦으로써 고통을 더하는 형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일은 마치 장애인이 장애인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정상인과 똑 같이 대해 달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처음에 주어진 환경이 불리하더라도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는 핸디캡을 주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다가 얻어진 결과로 평등하게 평가해 달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들은 능력에 맞는 정당한 사회 참여와 한 개체로서 떳떳한 인정을 받고 싶은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비록 어떤 실수를 하였다거나 어떤 시련을 당해 실패를 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평생 들먹이며 항상 핸디캡으로 덤을 주는 그런 일은 바라지 않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 앞에서는 늘 조심하고 항상 마음에 없는 말을 만들면서 눈치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그 당사자인들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할 바가 아니며 그로 인해 관계가 불편해지면서 더 좋은 결과를 만드는 동기부여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만약 어떤 부인이 유방암에 걸려 한 쪽을 절개하였다고 생각해보자. 과잉 친절한 사람이 그 환자를 위한다고 하면서 만날 때마다 유방암 환자는 이것을 조심하고 저것을 조심하라고 한다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그저 평범한 사람과 똑 같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대해 달라는 말이다.
내가 정철우와 대화를 나누었을 때 그런 기분을 읽을 수 있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비가 오는 날도 있고 바람이 부는 날도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낭만적인 눈이 내리기도 하지만 그 눈이 녹으면 통행에 아주 불편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일이 항상 나에게 좋은 일 만은 아니며, 반면에 나쁜 일이 나의 평생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때 철우는 이미 그런 일을 잊고 있었다. 어쩌면 흔히 닥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었다고 해야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철우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하였을 때, 내가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사람이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별 게 있느냐는 것.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으면 비를 맞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비싼 쇠고기 대신 값싼 닭고기만 있다면 아무리 쇠고기를 먹고 싶어도 가지고 있는 닭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 철우는 이미 세상사는 이치를 알고 있었다. 남들이 볼 때는 세상을 회피하는 것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적어도 남을 배려하며 바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그의 마음에 긍정적 평가를 내린다. 철우 역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서 현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어떤 목표를 향하여 매진할 때에 곁에 걸리는 것들을 모아 주변 정리하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아닌 상대방이 피해를 보기도 하며, 나의 공이 타인의 공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때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대로 당하기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렇게 당하기만 하는 것일까.
우리가 잘 아는 사람 중에 간디나 공자, 예수, 만델라, 나이팅게일, 슈바이처, 안중근, 안창호, 테레사 등이 있다. 이들은 항상 남에게 베풀며 자신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비록 경제적 이득은 취하지 못했더라도, 그가 마음껏 휘둘러도 좋을 권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어도, 그들을 꼭 필요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쫒아가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부를 쫒아가기도 한다. 물론 위와 같은 것들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는 수단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며 그것이 최종 목표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철우는 이미 모든 것을 깨닫고 있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보다 키가 큰 정철우가 나보다 마음도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뒤에도 나는 철우 앞에 서면 항상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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