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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조언을 구하겠다는

꿈꾸는 세상살이 2013. 8. 9. 13:23

종종 조언을 구하겠다는


전산을 전공한 사람이 관리팀장을 맡고 있는 경우를 보았다. 어떻게 보면 전공을 무시한 잘못 된 인사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좋은 측면에서 보면, 관리자들의 순환보직으로 폭넓은 식견을 습득함으로써 부서 간 협조를 잘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좋을 수도 있다. 또 자신이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분야의 일에 도전함으로써 업무의 효율적인 수행은 물론 자신의 계발을 위하여 노력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의 최용태 팀장이 맡고 있는 관리팀장을 먼저 했던 사람으로서, 그가 나를 방문하여 필요한 경험담을 듣겠다고 하니 반가울 따름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 직무는 물론 그 회사까지 그만둔 상태라서 내가 어떻고 어떻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남의 일에 간섭하는 꼴이므로 극구 사양하였다. 그러나 최팀장은 사실 내가 전직 관리팀장이었던 것을 몰라서 그랬지, 만약에 알았더라면 진즉 찾아와도 한참 전에 찾아왔을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자신은 회사의 간섭이나 업무의 협의 차원이 아니라 모르는 문제에 부딪친 개인으로서 경험이 있는 인생 선배에게서 충고를 듣겠다고 하니 그것마저 거절할 상황도 아니었다.

나에게 했던 최팀장의 말이 사실인지 꾸밈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듣기 좋은 말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기분이 좋아진 나는 나의 경험을 현재에 비추어 가능하면 알기 쉽게 이야기하게 되었다. 처음 접하는 업무는 손에 쥐어줘도 모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마음속으로는 잘 알 것 같다가도 막상 실행하려면 부딪치는 것인 현실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그러나 듣고 또 듣다보면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계를 전공하였다. 그러다가 회사의 필요에 의하여 전산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때의 전산은 회사가 아직 전산을 도입하지 않은 상태로써, 전산도입을 위한 전산담당이었던 것이다. 처음 접하는 업무라서 회사 내에 그런 내용을 아는 선배가 한 명도 없었으며, 보통의 회사에서는 아직 전산을 도입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다른 회사에 가서 물어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나는 정상 업무가 끝나면 전산학원으로 가서 전산용어와 프로그램 작성에 대한 교육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산 용어가 생소하며 더구나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작업이었기에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은 1년 혹은 2년에 배우는 과정을 나는 학원 수강 몇 달에 끝내려고 하니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어렵게 학원 수강을 통해 프로그램 작성을 파악하였다 하더라도, 그 내용을 가지고 회사에서 전산 도입에 필요한 회의를 하면 서로 대화가 되지 않았다. 회사 직원들은 전산 용어를 몰라 이해를 하지 못했으며, 나는 그들에게 쉽게 설명할 만큼의 능력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던 때문이었다.

급기야 학원 강사를 회사에 불러 전산을 설명하고 회사 직원들이 그 말에 따라 자료를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학원 강사가 아는 것은 전산 용어일 뿐이며 그가 회사 생활을 해보지 않아 이해하지 못하는 양극화가 생겨났다. 따라서 정확한 자료를 요구하지 못해 정확한 결과가 산출될 수 없는 상태로 진행되었다. 한편 직원들은 회사 용어는 잘 알지만 전산 강사가 구사하는 전산 용어를 잘 알지 못하니, 이런 때에 필요한 것이 중재자로서 나의 역할이었다. 나는 회사 용어를 잘 알면서 전산 용어도 어느 정도 알게 되어 그 둘을 묶어 주면서 통역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모르긴 몰라도 중소기업으로서는 아마 전국 최초로 전산을 도입하는 성과를 만들어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의 최용태가 나에게 관리의 경험담을 듣자고 찾아오니 예전에 내가 전산을 공부하면서 안타까웠던 일이 생각났다. 지금의 최용태와 그때의 나는 정 반대의 입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었다. 초기에 전산을 전공한 사람이 현재는 관리를 맡고, 그때의 기계를 전공했던 사람이 전산을 맡았다가 다시 관리를 맡았던 것이 그런 내용이었다.


최용태는 그 뒤로 몇 번을 더 찾아왔다. 업무와 관련하여 어려운 문제가 있거나 난처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조언을 듣기 위하여 찾아온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지나가다가 시간이 나면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방문을 당하는 나로서는 어떤 경우에 찾아오든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일이 하루에 한 번 혹은 이틀에 한 번 있는 일이 아니라, 석 달에 한 번 아니면 넉 달에 한 번 정도이니 그것으로 시간을 빼앗긴다거나 내정 간섭을 한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최팀장은 무슨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이 바로 처음 접하는 일에 속했다. 업무를 담당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는 모든 일이 최신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때에 최팀장은 남이 하는 얘기를 잘 들어주었다. 나에게서 듣는 말도 잘 들어두었다. 나이가 많고 회사생활을 오래 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그러했을 것이지만, 그 보다 더 큰 요인은 역시 전직 관리팀장이었다는 것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대화를 하거나 토의를 할 때 남의 말에 경청하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남의 말을 잘 들어서 내용을 충분히 파악한 후 자신의 의견과 조율하여 협의 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주장만 할 것이 아니며 남의 주장만 들어줄 것도 아니니 많은 토의를 거쳐 합의를 도출해 내라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의 최용태는 남의 말을 완벽하게 경청하는 타입이었다. 남이 무슨 말을 하면 그런 말이 왜 나왔을까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하면 남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를 유추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경험이 부족하여 그런 결정이 잘 맞을지 안 맞을지는 아직 미지수인 상태지만 말이다.

남들과 대화를 하는데 상대방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면 화자는 신이 나서 더 많은 말을 더 쉽게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은 입장일 것이며, 그것은 상대방이 지금 나에게서 뭔가를 배우고 싶어 한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최팀장은 그런 면에서 탁월한 실력자였다. 남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자신의 의견을 붙여 토의하는 자세가 존경받을만하였다. 나 또한 매일같이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쩌다 한 번 기회가 왔을 때 좀 더 많은 것을 이야기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러다 보니 대체적으로 나의 이야기기 많았던 것 같다. 이것은 경청과 대화의 원칙에 위배되는 사항이다. 나는 이런 면에서 최팀장 보다 한 수 아래였던 것이다. 만약 내가 말을 아끼고 좋은 제안이 있어도 조금씩 조금씩 풀어놓았더라면 좀 더 많은 기회로 대화의 장을 이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좀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나는 어떤 일을 하다가 어려운 일에 봉착하게 되면 예전의 전산을 담당하던 때가 떠오르곤 한다. 그러면 그때 전산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르던 내가 어떻게 해결해 나갔던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그 일을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그런 상황에 닥칠 수도 있다. 그것은 환경이 변하여 그러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방해를 하여 그러할 수도 있다. 또는 처음부터 해결 불가능한 그런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최용태가 나에게 조언을 구하면 나 역시 최대한의 협조를 해주는 편이었다. 비록 내가 접하던 당시와 현재의 상황이 같지는 않기에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이라는 말은 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때에 내가 어떻게 하였다는 것은 이야기해 주었다. 당시 상황이 이러하였을 때에 이렇게 하여 해결하였다는 것은 비록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다.

최용태는 그런 것까지도 빠트리지 않고 받아갔다. 돌아서서 버릴지는 몰라도 최소한 들을 때 만큼은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창호지 위에 파란 잉크 방울을 떨어뜨렸을 때 종이가 물기를 빨아들이듯이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받아갔다.

나는 최용태의 그런 면을 좋아했다.


최용태팀장은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 말고도 익산에 관한 내용도 요구하였다. 익산이라는 도시에도 처음인 당사자로서는 가족과 나들이하기에 좋은 곳이라든지 혼자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 등의 정보도 얻어갔다. 그런가 하면 역사적인 정보도 빼놓지 않고 받아갔다. 그렇게 함으로서 내가 힘들여 모은 자료들을 최용태는 10분도 되지 않아 터득하는 효과를 얻는 셈이었다. 이것이 바로 경청이 주는 최대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나는 최용태와 같은 사람을 위하여 약 20년을 준비해왔다. 익산이 고향이 내가 잠시 객지에 있다가 돌아왔을 때 처음 느낀 것이 바로 익산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단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때 모든 것을 한 번에 그리고 빨리 알릴 수 있는 것은 역시 문화라는 생각을 하였고, 그 뒤로 나는 익산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문화의 최종 결정체가 문화재라는 것을 생각하면 문화재를 검토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하여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였었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 그 완성을 보았으며, 문화재를 이용한 첫 번째 수혜자가 바로 최용태였던 것이다.

최용태는 나에게서 어떤 것을 얻어 갔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최용태를 통하여 나의 오랜 꿈을 실현시키는 기회를 가졌다. 어떻게 보면 최용태가 나에게 20년에 걸쳐 풀어 낸 숙제를 검사해준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주는 것 없어도 최용태가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 사람의 관계에 있어 서로 좋게 지내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관계이기는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어디 그렇게 되는 것이던가. 요즘 세상인심 같으면 누군가가 좋아하고 누군가가 좋다고 하면 그것은 정말 축복받는 사람의 일이고 행운아에 속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내가 보는 최용태는 나에게 꿈을 완성시켜 준 고마운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