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해수불양

꿈꾸는 세상살이 2013. 8. 9. 13:30

해수불양


바다는 흘러오는 모든 물을 사양하지 않는 다는 말이 있다. 그 물이 산 모퉁이를 돌아 나온 흙탕물이든, 수도관이 파열되어 넘치는 깨끗한 물이든, 눈이 녹아 만든 차가운 물이든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조건이든 어떤 상황이든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불평하지 않고 잘 받아들인다는 내용이다. 사람도 이런 사람이 있으니 우리가 말하는 성인이다. 예를 들면 예수, 공자, 석가, 간디 등이 해당되지 않을까.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면서 사고할 줄 아는 동물이라고 하였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는데, 이를 접하여 잘 소화해나가는 방안을 연구하는 것도 사람만이 가진 특성이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이처럼 행동하기가 쉽지 않으며, 반면에 여러 사람의 의견에 부화뇌동하거나 군중심리에 싸여 경거망동하기 쉬운 사회성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사람의 마음은 복잡하면서도 논리적이고 계획적이면서도 단순한 여러 결과들이 상호 작용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은 나름대로는 여러 조건을 잘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 속한다. 한 번은 몰라서 속았지만 두 번째는 알고도 속아주는 그런 마음씨라고라 할까, 아니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은 아니더라도 삼 세 번은 속아준다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려 이해해주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는 서택훈의 이야기이다.

내가 서택훈을 처음 만난 것은 부동산업을 개업하는 자리였다. 학교 동창이 부동산 사무실을 개업한다고 하여 찾아갔었는데, 나는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그 자리에는 동업하기로 한 사람이 같이 있었다. 그가 바로 서택훈이었으며, 그 때는 아무런 감정이나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었기에 별 생각 없이 지나쳤었다.

그 뒤에 교회에서 만나보니 그때의 서택훈은 나와 같은 모임의 회원으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학교 동창이라던 부동산 업자는 별 성과를 내지 못하자 사업장을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혼자 남은 서택훈은 새로운 다짐으로 일을 처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자주 만나게 된 서택훈은 만나면 만날수록 순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런 것은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항상 웃어넘기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서운하다고 하기보다는 아마 나라도 그랬을 거야 하는 말로 분위기를 진정시키곤 하였었다. 이런 서택훈이 무슨 일을 하다가 정말 화가 나서 불만을 얘기할 때쯤이면, 그때는 벌써 여러 차례나 같은 일이 반복된 후로써 더 이상은 상호간에 불편을 초래할 뿐이며 신뢰가 깨질 때쯤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그의 성격은 어떻게 보면 한량없이 좋은 것 같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다는 말에 가까운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전에 미리 얘기하면서 서로를 이해했더라면 그렇게 막바지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의 과정을 보면 택훈이가 나름대로의 경고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서택훈의 성격상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는 개념에서 강력하게 다그친다는 것도 남이 보기에는 항상 미약하기만 하였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그리하여 상대방이 이런 말뜻을 접수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결과가 막판에 가서 서로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우로 진전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보면서 그래도 서택훈이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런 일을 유발시킨 본인이 문제이지, 어떻게 생각해보아도 그런 일을 보면서 잘못 했다고 말하는 택훈이가 잘못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때에도 택훈이는 항상 묻기를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가 하는 자기반성적 질문이었다. 나는 이런 서택훈이 좋게 보이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별스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고 항상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도 지천이다. 하지만 이것을 따져보면 나름대로는 이들 각자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 어느 누가 맞고 누구는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택훈이가 아닌가 한다.

무슨 일을 하다가 상대방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보통 사람들처럼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때는 저 사람이 무엇을 원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택훈이를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손은 내밀어 상대방도 체면을 상하거나 커다란 부담 없이도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준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한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의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서택훈 역시 부동산업을 하면서 남의 등을 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등치고 간을 빼먹는 다는 말이 좋은 뜻이 아니기도 하지만 함부로 등을 치면 아프기만 할 뿐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정말로 등을 쳐야 할 사람은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이를 제지하는 수단이다거나 병자로서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에게로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그를 통하여 부동산을 매매하게 되면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를 가리지 않고 별 손해는 없는 것이다.

쉽게 생각해볼 때 어느 한 쪽에서 높은 가격을 부른 다음 상대방에게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것이 바로 부동산 업자로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는 방법 중의 하나다. 그러나 택훈이는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아 수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안 되는 매물은 이러해서 안 된다고 사전에 공지하고 협상에 들어간다. 예를 들면 그 땅은 길이 없는 맹지로서 매입자가 부담해야 될 나중의 손해에 대하여 사전 예고를 해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저렴한 매물에 대하여서도 그 곳은 곧 어떤 부동산적 호재가 발생할 것이니 매각한 후에 후회하지 않도록 미리 경고하는 것 등이다.

따라서 서택훈이를 통하여 매매가 이루어진 것들로부터는 상호 원망을 하거나 중개업자가 속여서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그런 가격은 그럴만하다는 평을 들어 양심적인 업자로 통한다. 요즘 부동산 경기가 활발하지 못하여 거래가 없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여 조건을 조정하다보니 그나마 없는 손님마저 더욱 줄어든 느낌이 든다.

나도 대로변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가끔은 들르는 편이다. 내가 가더라도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때는 사업이 잘 안되어 위로하는 차원도 있으며, 어떤 때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손님이 방문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한 경우도 있다. 시장에서 손님이 뜸한 경우를 두고 오늘은 누가 물어 보는 사람도 없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던 것이 생각나면 방문하기도 한다. 그도 저도 아닌 때는 식사 때마다 매식을 하는 서택훈이와 점심을 같이 하기 위하여 일부러 방문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때의 나는 구내식당을 이용하면 특별히 시간을 내어 외출할 필요도 없으며 가격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어려운 것은 만나면 무엇을 먹을까 하는 식단을 선택하는 고민이 더 추가된다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다.

이런 나의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식사를 하면 식사대금을 택훈이가 지불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위로를 한다고 갔었는데 여러모로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고 오기도 한다. 만약 오늘 내가 안 왔었다면 자기는 혼자 점심 먹기가 뭐해서 그냥 굶었을 거라는 말을 하면서 분위기를 덮어간다. 앞에서 말한 대로 지금쯤 상대방이 뭐를 원할지 미리 생각하여 행동하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들이다.

이런 택훈이는 자신과 관계가 없는 일은 물론 자신과 관계가 있는 일에서 조차도 남을 배려하며 자기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향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예측하여 대비하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어느 누구를 방문하였을 때 칠판에 쓰여 있었던 海水不讓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바다는 어떤 물이라도 결코 불평하거나 꺼리지 않는 다는 말이다. 이때의 불양(不讓)은 무슨 일이든 양보하지 않고 주는 대로 다 받아먹는 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의미가 있는 뜻은 호불호를 따져 어떤 누구를 편애하지 않고 똑 같이 대한 다는 것이다. 택훈이가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부동산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일과성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돌아서서 손가락질하는 그런 사람을 만들지 않겠다는 습관이 묻어나는 결과이다. 

오늘처럼 장맛비가 오는 날이면 부동산 거래가 더욱 한산할 것은 뻔하다. 7월 초는 많은 사람들이 비오는 날이면 부침개를 해 먹는 다는 말을 떠 올리는 계절이다. 비가 오거나 말거나 부동산업이 잘 되고 못 되고는 내가 관여하여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그만 두고, 오늘 점심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전화라도 해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좋은 사람과 같이 하는 식사는 우리 신체를 건강하게 하고 마음까지 아름답게 가꾸어 갈 조건이 된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