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에서 부르고 전국에서 듣는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 익산목발노래!
전국학생농요대회도 개최
익산은 높은 산이 없으면서도 많은 물이 흘러 넓은 평야를 지닌 곳이다. 따라서 금강을 끼고 옛 포구가 형성되었으며, 내륙으로는 아늑한 평야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으니 웅포, 성당, 금마, 왕궁, 여산, 용안 등이 그곳이다. 이들은 예외 없이 농사를 주업으로 살아왔는데, 힘든 일을 하면서 시름을 달래고 흥을 돋우는 방법으로 노동요를 불렀다.
노동요는 길쌈을 하면서, 김을 매면서, 땅을 파면서, 모를 내면서, 보리를 타작하면서, 콩을 수확하면서 부르는 등 농업 전반에 걸쳐 적용되었다. 특히 지게를 지고 등짐을 져 나르면서 지게목발을 두드리는 노동요는 전국적으로 익산에서만 전해오고 있어 귀중한 유산으로 남아있다. 다른 지방에서는 지게를 지고 율동을 하거나 지게와 관련된 노동요를 별도로 부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지게를 통한 율동과 노래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은 익산목발노래뿐인 것이다. 이런 점을 들어 도에서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하였다.
‘익산목발노래’는 익산 북부권에 널리 퍼져있었으나, 삼기에 거주하시던 분이 재현을 한 후 문화재로 지정을 받았기에 일반인에게는 삼기목발노래로 불리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정식명칭은 익산을 대표하는 노동요라 하여 익산목발노래인 것이다.
특정한 여러 사람이 모여야만 형성되는 다른 문화재와 달리, 익산목발노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받고 매기는 사람만 있으면 가능하다. 원래 목발노래는 초동이 짐을 지고 내려오다가 혹은 동료를 만나 같이 쉬면서 부르던 노래이기 때문에 특정 인원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현재 불리는 익산목발노래는 집단가무악으로 창자 1명과 받고 매기는 사람 30명, 그리고 율동을 선도하는 풍물단 3명, 소품 3명으로 모두 37명이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역할이 다양하지 않아 20명 이내의 소규모로도 충분하다는 장점이 있다.
목발노래에서 불리는 곡은 모두 9곡으로 처음에 나오는 새타령을 비롯하여 육자백이, 자진육자백이, 흥타령, 등짐노래, 목발노래, 작대기타령, 둥당기타령이 있고, 마지막으로 상사소리 로 이어진다. 그러나 곡조 역시 상황에 맞춰 줄이거나 생략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특히 요즘처럼 농촌인구의 감소와 노동인력의 고령화로 인하여 절대인원이 부족한 경우에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한다.
첫째로 나오는 새타령은 유희요로 그냥 즐기는 것인데 혼자서 부르거나 여러 사람이 처음부터 합창하는 굿거리장단이다. 다음의 육자백이와 자진육자백이는 밤낮으로 일만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창자가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후렴구를 제창하는 느린 진양조와 중중모리다. 흥타령은 해변에 파도가 밀려오듯이 자신에게 밀려오는 많은 문제들을 한탄하는 곡으로 소리를 매기면 나머지는 후렴구를 제창하는 중모리다. 등짐노래는 지게에 놓인 수확물의 기쁨을 노래한 것으로 소리를 매기면 후렴구를 제창하는 중모리다.
곡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목발노래는 일명 콩꺾자노래라고도 하는데, 콩을 수확하면서 기쁨을 즐기는 곡이며 소리를 매기면 후렴구를 제창하는 엇모리다. 작대기타령은 인간의 생사화복과 모든 일상에 대하여 언급하는 유희요로, 지게작대기로 지게를 두드리면서 소리를 매기면 끝부분을 제창하지만 특별히 후렴구가 없는 중중모리에 속한다. 다음의 둥당기타령은 잘 익은 곡식을 가로채는 꿩에 빗대어 부르는 유희요로, 소리를 매기면 후렴구를 받는 중중모리다. 마지막으로 상사소리는 춘하추동 사계절을 노래한 것으로 소리를 매기면 후렴구 없이 제창하는 중중모리장단에 속한다.
익산목발노래는 1973년 6월 30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받은 후 많은 활동을 통하여 각광을 받았으나, 예능보유자가 사망한 이후 2005년 6월 12일 문화재에서 해제되는 슬픔도 겪었다. 그러다가 뜻있는 회원들의 노력으로 2009년 3월에 문화재 재지정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전주세계소리축제 및 지평선축제 등에서 시연하는 한편, 방송을 통한 소개 등 재기를 위한 몸부림을 펼쳤다. 이런 결과로 2012년 4월 27일 재지정 받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지금은 함라에 보존회사무실을 두고 있는데, 이는 목발노래가 함라를 중심으로 재현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이다. 더불어 옛 회원들을 규합하고 수없이 많은 연습을 하는 과정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을, 넉넉하지 못한 함라출신의 현 보존회장이 개인 집을 팔아 충당하였다는 사실도 문화재감이라 할 수 있다.
문화재로 재지정을 받은 후 모든 회원들 감격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옛 예능보유자의 묘소를 찾아 참배한 후 더 많은 노력으로 문화재의 가치를 홍보하겠다고 다짐하는 기회도 가졌었다. 그 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기간 동안 정기공연을 포함하여 도내 여러 무대에서 시범공연을 가졌으며, 송파놀이마당, 코엑스 시범공연, JTV 전주방송과 광주 MBC에 출연하여 우리 고장의 멋과 가락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해제되었던 문화재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다시 지정을 받았다는 기쁨과, 많은 회원들이 힘을 합쳐 위로하며 노력하는 모습은 훌륭한 문화재를 잘 보존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좁은 장소에서도 흥겹게 넘어가는 풍물이거나, 요즘 떠오르는 밸리댄스 혹은 오카리나처럼 흥미위주도 아니며, 초등학생도 쉽게 배울 수 있는 부분도 아닌 목발노래는 나름대로 애로사항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국악에서 농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소프라노보다 높은 음을 내야 하는 곡은 일반인이 범접하기 어려운 장애물이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부모나 학생들이 농요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심지어 학교에서조차 성적위주의 교육편성에 의해 민요를 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익산목발노래보존회(회장 조현숙)는 이에 굴하지 않고 2012년 8월 11일 제1회 전국학생 농요부르기대회를 개최하여 농요에 대한 거부감을 깨트리는 한편, 익산과 목발노래를 홍보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 행사역시 기관에서 단 한 푼의 지원도 받지 않고 순수하게 보존회의 힘만으로 개최하였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주어도 아깝지 않다. 올해는 전국에서 유일한 농요부르기대회가 명실상부한 전국대회로 성장하기 바라면서 7월 20일 제2회 대회를 준비 중에 있다. 특히 시민과 민요의 만남이라는 컨셉을 추가하여 국악과 현대악의 조화, 국악인이 아닌 일반 학생들의 민요에 대한 도전 등 여러 순서를 마련 중에 있다.
그러나 보존회의 가장 큰 소망은 하루빨리 익산목발노래의 교육장이 건립되는 것이다. 현재 사용 중인 사무실과 연습장은 보존회장이 개인적으로 임차한 건물로, 임차료는 물론 일반관리비와 사용료 그리고 수리비까지 직접 해결하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좋은 시설의 청사진을 그리며 전수관 건립용 부지를 이미 확보해 놓는 열정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실을 모르는 전국의 대학생들이 전수를 받고자 해마다 찾아오고는 있지만, 열악한 환경을 보고 그냥 돌아가고 있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도 기관에서는 예산의 부족을 말하는데, 그렇다고 우리 문화도 같이 쉬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보아왔듯이 문화가 없는 민족, 문화가 사라진 나라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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