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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니는 집

꿈꾸는 세상살이 2014. 6. 3. 17:51

 

 

 

책과 노니는 집

이영서/ 문학동네/ 2009.01.09/ 191쪽

저자

이영서 : 건국대학교대학원에서 동화 창작을 공부하였고,『말썽쟁이 티노를 공개 수배합니다』가 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십 분도 못 버틸 만큼 산만하고 이야기 한 편을 쓰자면 앉았다 일어서기를 백만 번쯤 하는 성격인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라는 작가 자평이다.

줄거리

주인공 장이의 아버지는 천주학에 관한 책을 필사했다는 죄로 곤장을 맞았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겪었던 것과 같은 고초를 당하면서도 그 책을 사간 사람의 이름을 대지 않자 더욱 심한 매질을 당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혹시라도 불똥이 자기에게 튈까봐 아무도 얼씬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약값에라도 보태 쓰라며 한 밤 중에 돈을 건네주었는데, 이름도 없이 그냥 서라고만 쓰여 있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서 책방 가게 주인 최서쾌가 찾아오자 아버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맞았으나 다음날 돌아가시고 말았다.

이후 천주학에 대한 사건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사대부가에서 소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최서쾌는 다시 책방을 열었다. 그리고 장이는 거기에서 심부름을 하는 조건으로 기거하고 있었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적이 없는 장이는 한자보다는 언문으로 된 책에 더 관심이 많았고, 기생집 도리원을 비롯하여 양반 댁인 홍문관 교리의 집 등에 책 심부름을 다니면서 조금씩 글이나 글씨에 대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어느 날 홍교리의 서고 서유당에 진열된 많은 책들과 함께 홍교리가 천한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에 감격을 하게 되었다. 책을 보자 죽어가면서도 약값을 아끼시던 아버지가 떠올랐고, 책을 읽는 재미와 더불어 놓고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을 느꼈다. 묵은 책에서 나는 냄새와 창문사이로 비추는 햇빛, 그리고 옆에 걸린 붓이나 종이들이 장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얼마 전에 아버지가 일러주시던 그런 책방의 모습 그대로였다.

장이가 심부름으로 전해준 동국통감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그리고 책을 펼치는 순간 그것은 어려운 동국통감이라기보다는 아버지가 매질을 당하던 서학 즉 천주실의라는 것을 알고는 마치 자신이 죄인이라도 되는 양 황급히 덮고 말았다.

장이는 계속하여 필사된 책 심부름을 다녔다. 하루는 귀한 상아찌를 잘 잘 건네 드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동네 왈패에게 빼앗기자 누구에게 말도 못한 채 그 돈을 마련하느라 고된 나날을 보냈다. 이 사실이 도리원의 계집 종 낙심이에게 알려졌고, 온 동네가 발칵 뒤집힌 가운데 왈패 허궁제비가 잡드리를 당하였다. 그때 장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최서쾌의 양아들로 입적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기다리시던 사람, 아무도 모르게 약값을 던져주고 갔던 사람, 청지기를 하면서 왈패를 잡아다 혼을 내주던 사람, 그리고 그런 일이 진행되도록 일을 꾸며준 나이 어린 낙심이까지 이제 장이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낙심이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린 동생의 백일 상차림에 쓰일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기생집에 팔려온 불쌍한 아이였다. 그래서 세상이 모두 부정적이며 믿을 것은 오직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일의 옳고 그름은 따질 줄 아는 아이였던 것이다.

열네 살이 되던 장이는 잔심부름 대신 이제 필사를 하면서 최서쾌를 돕게 되었다. 그럼에도 귀중한 서책을 보낸 때에는 가끔씩 장이가 심부름을 나서기도 하였다. 어느 날 장이가 서책 심부름을 가다가 말을 타고 들이 닥치는 관원들을 보았고, 그에 쫓기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이 허연게 마치 지난 번 도리원 잔칫날 밤에 보았던 안방마님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였다.

장이는 가지고 있던 책을 떨어뜨릴 정도로 놀랐지만 그것을 주워 집을 겨를도 없었다. 무작정 책방으로 달려온 장이의 말을 들은 최서쾌는 심각하게 일렀다. 이제까지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이대로 도망하여 숨었다가, 저녁이 되면 마포나루로 은밀하게 오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책방에 들르지 말 것이며 홍교리 댁이나 도리원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엄명이었다. 그리고 장이에게까지 위험하게 하여 미안하다고 하였다. 마치 아버지에게 약값을 건네며 말하던 미안하다는 말과 흡사하였다.

생각이 돌아가신 아버지에 닿자 벌써 장이는 벌써 홍교리의 담장을 뛰어 넘고 말았다. 그리고는 온 서고를 뒤져 책들을 찾았다. 지난 번 보았던 동국통감을 비롯하여 동국세시기, 동국여지승람, 동국이상국집, 동국문헌비고, 동국병감 등 동자가 들어간 서책들을 모두 찾아 불태웠다. 내친 김에 다시 도리원의 담을 뛰어 넘으려는 순간 장이는 강한 힘에 붙잡히고 말았다. 도리원에 사는 사람들은 비록 기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종으로 팔려온 낙심이나 고아인 장이를 어엿한 한 사람으로 대해주던 곳이었다.

멀리 대구의 한 향교에 머물면서 유생들에게 필요한 책을 필사하던 장이가 최서쾌를 만나 동학사로 향한다. 이때 장이는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다. 당시 동학사에 머물던 장이 아버지는 동짓날 몰래 절을 떠나 속세로 향하던 중 보따리에 싸인 장이를 보았고, 그 이후로 혼자서 길러왔던 것이다. 장이가 고마워야 할 사람이 여럿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벌써 동학사에 닿았고, 거기에는 홍교리와 낙심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예의바른 홍교리는 지난 번 천주학 사건 때 먼저 와서 책을 치워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였으며, 그 답례로 보따리에 싸인 선물을 주었다. 장이가 보따리를 풀자‘책과 노니는 집’이라는 현판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홍교리는 한 마디 덧붙였다. 어느 날인가 장이의 아버지가 배오개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스무 냥이 조금 못되는 돈을 맡겼다고 하였다. 배오개 집은 장이도 익히 알고 있는 집이었다. 아버지가 가끔씩 장이의 손을 잡고 들러 이곳은 사람의 내왕이 빈번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가는 사람들이 유생들이라 책방을 여는 데는 이만한 데가 없다고 말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집주인이 요구하는 스무 냥에서 아직은 조금 모자란다는 말도 들었던 그곳이었다.

감상

이야기의 배경은 조선에 천주교가 들어왔으나 뿌리 깊은 유교에 의한 거부감으로 배척을 당하던 때에, 그 책을 필사하여 보급시키던 책방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사람에게 귀천이 없고 직업에도 귀천이 없다는 말과 함께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자신이 받은 은혜를 악으로 갚지 말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 장이의 아버지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장이 역시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여러 사람들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한다. 이는 모두가 내 탓이요 하는 심정으로 비록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을 섬긴다는 천주의 사상을 실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책과 노니는 집은 한자로 서유당이다. 홍교리의 집에서 보았던 서고의 현판 서유당이자 장이가 내게 될 책방의 언문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책을 필사하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필사쟁이가 된 장이지만, 아버지께서 읽어주신 책으로 독서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책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된 곳이기도 하다.

예전에 책이 귀하던 시절에 그것도 목숨을 걸고 보았던 책에 비하면 요즘은 많고 많아 걸리는 게 책인 시절이며, 언제든지 아무 때나 보고 싶으면 볼 수 있는 것이 책이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든다. 비록 천주학 책을 보던 사람들을 발설하지 않고 필사쟁이 혼자서 매를 맞으며 죽어가는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한 것과 같은 심정에는 못 미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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