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16인의 기생들
이수광/ 다산초당/ 2009.08.28/ 303쪽
저자
이수광 : 추리소설에서 역사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역을 아우르는 우리 시대의 마에스트로. 팩션형 역사서의 새 장을 연 베스트셀러 작가로 탄탄한 대중적 입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는 항상 마이너로서 살아왔기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이 흐른다.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한 시대를 흔들었던 기생들이 자유를 꿈꾸며 열정적으로 살았던 삶을 되짚어보는 이 책은, 사료를 뒤집고 사연이 담긴 자취를 찾아 길을 나서는 작가의 정성에서 시작된다.『조선을 뒤흔든 16인의 왕후들』,『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등 꾸준한 집필활동을 통해 한국뿐 아니라 영미권 독자들을 사로잡을 작품을 쓰고 싶은 꿈을 엮어가고 있다.
줄거리 및 감상
조선시대의 기생들은 유교의 영향을 받아 학문에도 뛰어난 경우가 많이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16인 역시 미모와 무예뿐만 아니라, 한시에도 밝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사대부가 한 시를 지으며 기생을 농락할 때 어찌 한 수를 읊어 답이 없으면 동석하며 즐길 수 있었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당대에 이름깨나 날리던 기생이라면 당연히 시가에도 일가견이 있었으리라. 그러니 이런 기생을 좋아하는 것은 당시 유학자들의 체면과 명분을 세워주기에 충분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기생이란 조선의 천민 중의 천민에 속하며, 이들 신분은 대대로 물림을 하는 굴레와 같았다. 그러나 이들이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대부가의 첩으로 들어가서 면천하는 길밖에 없었으니, 기를 쓰고 명문가에게 잘 보이려고 하였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눈에 들어야 했으니, 반대로 해석하면 남보다 특출한 미모에 무예나 시가가 뛰어나 남다른 조건이 짐작된다. 이런 기생들 16명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이다.
기생들이 뛰어난 기량을 보일 적에 그 곁에는 항상 뛰어난 선비가 있었다. 당대의 최고 유학자였던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 허균, 소세양, 이귀, 화의군 이영, 평원대군 이임, 계양군 이증, 박연, 서경덕, 이사종, 심희순, 정약용, 영천군 이정, 성종, 유희경, 민제인, 정시, 채제공, 최경희, 송상현, 심수경, 서시랑, 서명빈, 이종성, 유상량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기생을 농락하거나 혹은 정신적으로 사랑하거나 한 사람들이다. 몰론 이들 외에도 이 책에 등장하는 기생들과 접촉한 사람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 유명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은, 그렇게 유명한 사람들과 접촉하였기에 비록 기생이라 하였더라도 지금까지 이름이 남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만약 한낱 범부였다면 아마 그들을 맞이한 기생 역시 범부로 남아 이름이 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을 뒤흔든 16인의 기생들에서는 초요갱, 김섬, 황진이, 초월, 가희아, 두향, 소춘풍, 매창, 성산월, 영흥, 만덕, 논개, 유지, 동정춘, 취련, 영산옥 등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양가에서 태어나 집안의 형편에 따라 기생이 된 자도 있었고, 기생의 신분으로 대물림하던 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왕에게 상소문을 올릴 정도로 학문에도 정통하였으며, 목숨을 걸고 사랑할 정도의 절개를 가지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마음으로 정한 지아비를 위하여 수청을 거부하면서 곤장을 맞고, 나라를 위하여 적장을 안고 물에 뛰어든 경우도 있었다.
이 책은 기생이라 하더라도 인격을 가진 엄연한 한 사람이었으며, 당대의 제도 및 습관에 의할 뿐 마음만은 여느 사대부와 같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람대우를 해 준 사람에게 정을 주었으며, 그들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쳤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서는 것은 항상 선비에 의해서였으니, 역시 기생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지조를 지켰다는 것을 언급하며 변하기 쉬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꼬집는다.
기생은 노류장화라 하였다. 길가에 선 버드나무요 담장 밑에 핀 꽃이라서 임자가 없으니 아무나 보는 대로 꺾을 수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다. 여기서 꺾는다는 뜻은 품는 다는 뜻이니 당시 신분제도에 따르면 이는 허가 낸 매춘과도 같은 것이었다. 특히 한 고을의 수령에게라면 관기라는 이름을 가진 기생이 공식적으로 수청을 들어야 하는 신분이었다.
이런 마당에 플라토닉한 사랑이 있었으니, 천박한 기생이라는 이름에서 유일한 탈출구가 되었다. 저자는 이런 면을 강조하여 당시 잘못 된 사회 풍조를 꼬집는 한편, 기생이 익힌 무예와 시가에 따라 여느 여인네 혹은 남정네에 못지않은 훌륭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예를 들면 궁중악을 연마한 사람이 어느 특정 기생에게만 있었다는 사실과, 그런 까닭으로 벌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지만 자칫 맥일 끊길까 걱정되니 그냥 사면하자는 말이 나오기도 하였던 것이다.
세종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박연의 음악을 온전히 전수한 사람이 바로 기생 그것도 한 사람이라면 어찌 망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기생이 종묘사직을 찬양하는 곡을 연주하고 무예를 보여주던 차원이라면 이미 하나의 예능보유자로서 현재로 보면 특정 분야의 예술가였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가 강조하여 말하는 것은 뭇사내를 울리던 요염한 여성이 아니라 바로 이런 측면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은 모두 정사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라, 야사에 나오는 것들이다. 그리고 어느 특정 사람의 문집 혹은 이들을 해설한 책들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따라서 어떤 측면에서는 정사보다도 더 정확하고 더 확실한 내용일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야사가 없다면 우리는 지나간 역사의 대부분을 알지 못한 채 얽매어 주어진 것만 알뿐이다.
201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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