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논쟁
김대식, 김두식/ 창비/ 2014.04.21/ 286쪽
저자
김대식 : 서울출생, 어려서부터 활달하고 장난이 심했다. 뉘늦게 공부에 눈을 떠 반에서 20등 하던 학생이 공부를 하여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하였고,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물리학박사를 취득. 1994년부터 서울대교수가 되었고 사이언스 등 여러 저널에 논문을 기고하였다. 2003년의 젊은 과학자상, 2012년에 서울대학술연구상, 2014년에 한국과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여러 학회에 펠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김두식 : 1967년생으로 김대식의 동생. 조용하고 모범생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고려대법학과에 입학하였으며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군법무관을 거쳐 검사와 변호사를 역임하였으며, 한동대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헌법의 풍경』으로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평화의 얼굴』,『불멸의 신성가족』,『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불편해도 괜찮아』,『욕망해도 괜찮아』,『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공저)』,『다른 길』등 법과 인권 그리고 국가에 관한 책을 썼다.
줄거리 및 감상
괴짜 물리학자인 형 김대식과 삐딱한 법학자인 동생 김두식의 대담을 엮어 놓은 책이다. 물론 처음부터 책을 내기 위한 대담이었음을 알고 읽어야 한다. 책의 처음 도입부에서는 지루하고 내용이 없는 이야기들로 진행되어 이 책을 마저 읽어야 되나 덮어야 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잠시 뒤에는 이 책을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쉽게 따라 읽을 수 있다.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옳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처음에 그 일을 하기 전에 그 일을 하면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따져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 경우에 실천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결정을 하고 행동하기 시작하면 그 뒤에는 어떤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그 뜻을 굽히기 힘든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농촌봉사활동을 나서기도 한다. 이름하여 농활인데, 이 활동을 하는 동안 농사일을 체험하고 농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삶을 살기 위한 배움의 기회를 만들려는 목적도 있지만, 농민을 계몽하고 농촌 생활에 어떤 보탬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출발하기도 한다. 물론 요즘은 예전과 달라 후자의 경우는 다소간 줄어들었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
그러나 농촌에서 생활하는 농부들 역시 대학생의 농활에 대하여 대학생들과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것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농부들은 대학생들이 와서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저 일손을 더는 일이며, 그것 자체가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거기에 어떤 지식적인 혹은 사회적인 제도 등 여러 각도에서 가르침을 주고 깨우침을 주기 바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생만큼 몰라서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오히려 여러 경험을 통하여 대학생들이 하는 일은 귀엽게 여기고 잘못 해도 손자들 재롱쯤으로 보아 넘겨주는 재치고 가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귀한 시골에서 젊은이들의 목소리만 들어도 좋다는 그런 심정으로 대하는 것이다. 농촌봉사활동을 나가는 대학생들도 아마도 이런 사실쯤은 알고 갈 것으로 믿는다. 요즘 아이들도 영악하니까.
국내 대학에서 교수를 초빙하는 경우, 해외파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자기대학 출신의 교수를 초빙하는 것에 비하여 어리석은 일이지만, 그 뒷감당을 하기에는 오히려 부담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기대학 출신의 교수를 초빙한 경우는 그 교수를 추천한 교수가 그 뒤를 케어해 주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교수 임용 뒤에 얼마나 좋은 실적을 내느냐 혹은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느냐 등등의 문제를 보이지 않는 책임감으로 엮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해외파인 경우는 미국에서 어떤 학위를 따 왔으니 그 사람을 추천한다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추천받은 교수가 원하는 만큼의 실적을 내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새로 임용된 교수의 잘못이며 추천한 사람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이다.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해외파이며 실력이 좋은 사람인데 주변 여건이 안 좋아서 그랬을 것이라는 대리 변명만 해주면 끝이다. 이 얼마나 편한 이치인가.
그러나 제대로 된 교수라면 제대로 된 학교라면 자기 대학 출신을 더 우선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더 애착을 가지며 더 열심을 내서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것을 두고 자기 자식은 미워하면서 남의 자식을 예뻐해 준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경우 후자는 연구 과제를 선정하는 문제부터 과정 하나하나를 외국에 박사학위 지도교수였던 사람과 유대관계를 맺고 그 사람의 지휘? 아래 움직이는 게 보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얼마나 망국적인 현상인가. 이게 사실이라면 자신을 추천해준 사람에게 자신을 가르친 사람에게 보은한다는 말이니, 국내에서 자기 대학 출신 교수를 채용할 경우 이와 같은 논리에서 얼마나 충성을 할 것인가. 그러니 국가적으로 보면 얼마나 이득이 되는 일이며, 대학으로도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일인가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같은 조건에서는 자기 대학 출신의 교수 즉 국내파 교수를 채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글로벌 시대에 어긋나는 것처럼 해석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가시가 될지 몰라도, 사실은 우리가 홀로 서는 강대국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해외파를 좋아하는 것은 사대주의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종업원들이 볼 때에 항상 놀고 먹으면서 남는 이윤은 모두 가져가는 악덕 지주로 비쳐지기 쉽다. 그러나 경영자 입장에서는 월급날은 왜 그렇게 빨리 돌아오며 경기는 왜 이렇게 안 풀려서 매출이 안 좋은지 눈만 뜨면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종업원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걱정이 있는 것인지조차 알지도 못한다. 이것이 종업원과 경영자의 입장 차이다. 이 말은 교수들이 실적을 내기 위한 혹은 어떤 발견을 위하여 연구를 하는 것은 자신이 작은 사업체를 경영한다는 생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에서 주는 연구비는 그냥 받아서 쓰면 그만이고, 적당히 보고서를 작성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부터 수주를 하기 위하여 얼마나 절약하며 품질을 위하여 노력하는데, 대학의 연구소는 어떤 노력으로 어떻게 실행하여 계속적인 사업 즉 연구 과제를 따 올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세계 석학인 예를 들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사람들을 많은 초청비를 들여 모셔다가 강연을 듣고 지도를 받아 물리학계를 개선하겠다는 발상은 애초부터 틀린 생각이다. 그런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처음에는 아! 우리도 분발하자! 하는 생각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이것을 끝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어떤 것을 구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 석학이 있었던 그 석학이 연구했던 조건은 지금 우리나라 즉 현재 우리의 연구 조건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게 해서 성공했으니 너도 그렇게 해보라고 한다고 하여 그렇게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우리나라 초등학교 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애초부터 우리 조건을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값 비싼 석학을 데려오지 않아도 스스로 그런 연구 결과가 나오게 되어있다. 말하자면 바탕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인성교육부터 시작한다면 비웃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건은 줄세우기임으로 그 줄에서 타락되면 끝이다. 그래서 남을 딛고 서라도 내가 줄을 잘 서야 되는 것이다. 이런 경쟁에서는 앞에서 얘기한 바탕이 좋은 연구를 할 수가 없다. 이 연구 하나로 나의 안위가 보장된다는데 어찌하면 옆 동료의 연구를 탐하지 않을 수 있으며, 많은 연구비를 타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려 좋은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 말이다.
다시 말하면 구멍 난 물동이에 물을 퍼붓는 격이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이유야 어쨌든 국내파 교수를 애용하였고, 국내에서도 외국과 단절된 상태에서 자체 개발을 통한 기초분야를 튼튼하게 하였다. 그 결과 시간은 좀 더디 결렸다 하더라도 어느 특정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실적을 보였다. 그리고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 등을 받은 과학자를 여러 명 배출한 나라가 되었다. 지금도 일본의 기초과학 분야는 그런대로 세계에서 알아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런 제도가 없는 것이 차이다. 나는 이런 것조차 모든 시발이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친일파를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일본을 동경한다는 뜻이 되며 그것은 바로 사대주의 사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사대주의는 자신을 비하하며 남을 앞세우고 드높이는 것으로써 항상 남의 비위를 맞춰가며 남의 눈치를 보아 시키는 데로 하기를 자청하는 것이다. 자기주장은 없고 시키면 하고 안 시키면 하지 않는 노예근성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빌붙어 노예처럼 살기를 원한다. 그것이 대물림하는 것이다.
친일파 청산은 과거를 청산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잘 물려주어야 하니 잘못된 부분을 파악하여 제대로 알고 넘겨주자는 말이다. 잘못 한 것을 잘한 것처럼 거짓으로 포장하여 후손에게 물려주지는 말자는 말이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철밥통을 없애야 한다. 대체로 몰상식한 공무원을 지칭하는 이 말은 주로 공무원 혹은 준 공무원에 해당한다. 여기에 교사와 국립대학의 교수들도 포함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한 번 임용을 받으면 정년까지 임기가 보장되는 직업으로서는 충실한 연구를 시행해야 할 의무가 없어지며, 자신이 해야 할 본분을 망각하기 쉽다. 그러므로 3년에 한 번쯤 혹은 5년에 한 번쯤은 그를 시험해보는 과정을 두어야 한다. 그렇다고 부족함이 드러난 그날 당장 자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렇게 하는 과정을 두어 항시 긴장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세상에 그런 공무원들 말고는 어떤 직업이 그냥 지 편한 대로 해도 되는 것이 어디 있는가. 자영업자가 그런가 아니면 그런 곳에서 종사하는 종업원이 그런가. 대기업의 사장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대업의 임원이 그런가. 철밥통을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악덕 사채업자만도 못한 사람들이다. 악덕 사채업자도 눈먼 사람들을 꼬드겨오기 위한 전략을 펴고 다방면으로 힘을 기울인다. 다만 그 방법과 결과가 여러 사람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므로 좋지 않게 볼 뿐이다. 그 사람들을 두둔해서가 아니라 그들 역시 그냥 무사안일 혹은 복지부동으로 일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201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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