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유감
문유석/ 21세기북스/ 2014.06.09/ 247쪽
저자
문유석 : 1969년 서울생, 서울대법대 졸업, 서울행정법원, 춘천지법 강릉지원, 서울중앙지법, 법원행정처, 서울고등법원, 광주지방법원 등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있다. 근무하면서 사내 회보 및 내부 게시판에 게재한 글을 엮어 놓은 책이다.
줄거리 및 감상
저자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위하여 판사가 되었다. 그러나 학창 시절에 좋아하는 책과 음악을 가진다면 섬에서 조용히 혼자 살고 싶다고 할 정도로 개인주의적 성격이 강했다. 이런 덕분인지 글쓰기를 좋아하였고, 이를 성인이 되어서는 사내 게시판에 올리게 되었는데 처음 생각과는 달리 많은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하나의 책으로 묶어내게 되었다.
이 책은 시골의사 박경철의 아름다운 동행과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다. 자신이 판사로 근무하면서 항상 시간에 쫒기고 사건에 쫒겨 왔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인간적인 면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내면의 갈등을 접하게 되었을 때 좀 더 강한 자아를 나타냈고, 이것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썼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소수의 사람이 자신의 일에 대하여 썼기 때문에 호기심에 찬 독서 혹은 찬사가 일어났을 것도 배제할 수는 없다. 박경철의 아름다운 동행도 마찬가지다.
판사들은 매일처럼 죄에 그리고 죄인에 대한 서류를 보다보니 어떤 사건에 대하여 각본에 짜여진 모범 답안을 내놓을 수 있는 정도가 되지만, 사실은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다보면 억울한 경우도 있게 마련이고,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혹은 오랜 기간 동안 쌓이고 쌓인 감정이 어떤 계기로 폭발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원인 제공을 누가 하였느냐에 따라 다르게 판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공정한 판결이 아닐까 한다. 무전유죄 혹은 유전무죄가 아닌 누구에게나 평등한 법을 적용하여야 한다는 것과 통하는 말이다.
무고한 사람에게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우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언론이 그렇게 몰아가면 되며, 그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그냥 판사가 판결을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죄가 없는 사람이라도 그냥 죄가 있다고 판결하면 끝이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명확한 근거에 의해 확실한 죄인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이와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예를 들면 삼청교육대에 가둬놓고 정화를 시키던 때가 그랬고, 긴급조치 위반으로 인한 구속이 그런 예이다. 하지만 최근에도 그런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이 그렇고 유병언도 그렇다. 첫 단추를 어떻게 꿰었는지 따지지도 않고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것은 모두가 그런 예라 할 수 있다.
판사가 명확한 판결을 하기 위하여는 인문학이 필요하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며, 누구든지 평등하게 대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잘못 판결된 사안으로 한 사람의 죄인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며, 그와 연관된 사람들에게까지 낙인을 찍고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간첩의 아들로 살아가던 사람이 어느 날 그의 부친이 사실은 간첩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어떤 심정일까. 변화된 사실에 좋아해야 할까 아니면 슬퍼해야 할까. 아니면 그 전의 형벌이 좋았다고 그냥 모른 체 해달라고 해야 할까. 그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간 당사자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억울한 누명을 벗겼다고 해도, 그 사람의 명예까지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이미 무너진 명예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바로 세울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법관은 10년 동안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 매일처럼 야근을 하니 그럴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이런 판사가 과연 정당한 판결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은 종이에 적힌 글자로 죄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분위기와 당시의 형편을 고려하여야 함은 물론이며, 쌍방 간의 원인제공 및 저항과 자기보호에 관한 행위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리를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내용은 비록 신문을 보고 라디오를 들으며 인터넷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유교에 심취한 사람이 생각하는 효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효에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법에서는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만 따지게 되니, 최후 결과 그 전에 있었던 유발동기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저자가 책을 내게 된 동기는 자신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것에 대한 보답일 수도 있으나, 반대로는 후배 혹은 동료 판사들에게 판사의 본분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자각을 일깨우고 싶어서라는 말도 덧붙이고 있다. 이것이 글의 힘이요 책의 힘일 것이다. 내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하여 남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사람은 내가 겪은 일생의 교훈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책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저자는 판결문의 형량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어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경우에도 전혀 예상치 못하게 낮은 형을 언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때에 저자는, 아무리 죄인이라고 해도 어떤 형을 받으면 이미 그 사람은 죄를 뉘우치기 시작하며 벌써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하였다. 수감이 되면 그 좁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죄 값을 치르고 있는 것이므로, 그 형기가 길지 않다고 하여도 충분한 효과는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생각보다 짧은 형량이라 하더라도 너무 심한 비약을 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형기가 길어지면 그에 따른 비용이 증가하며, 그들을 수용하기 위한 교도소를 지어야 하니 사회적 비용이 많이 지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유는 옳지 않다. 그런 죄인일 경우는 교도소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사회적 비용은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이 수감되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면 더 큰 손해를 끼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때에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일벌백계로 다른 사고 혹은 다른 피해를 사전에 막는 각성제로 사용하자는 것이니, 사회적 비용 운운하는 것은 그저 말하기 쉬운 핑계로 위에서 말한 인문학의 부재로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저자인 판사는 형량을 높이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 말로 둘러대고 있는 것임을 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종합하여 판단할 때 그렇다 하는 것을 국민은 원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를 위하는 것은 판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다 같은 염려와 우려 속에서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많이 배웠다고 하여 혹은 월급을 많이 받는다고 하여 더 옳은 판단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따지자면 부자가 생각하면 옳고 가난한 사람이 생각하면 틀리다는 말과 같아진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생겨난 것이 아니겠는가.
201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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