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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매혈기

꿈꾸는 세상살이 2014. 8. 25. 16:21

 

 

허삼관매혈기

위화/ 푸른숲/ 2004.10.20/ 342쪽

저자

위화 : 1960년 중국 항저우출생, 소년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1983년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를 시작으로 소설가로 나섰다. 이후에 ‘18세에 집을 나가 먼 길을 가다’와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등의 단편소설을 냈고, 장편소설『가랑비 속의 외침』을 내면서 중국의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등장한다. 두 번째 소설『살아간다는 것』으로 소설의 형식을 바꿨고, 세 번째『허삼관매혈기』는 중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주목을 끄는 소설이 되었다.

줄거리 및 감상

위화는 의사로 생활하면서도 어릴 적에 키웠던 문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경우에 속한다. 그리고 타고난 재질인양 의식 있는 소설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 허삼관은 암울했던 중국 개화기의 전형적인 시골 촌부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실히 그러나 가난하게 살아가던 허삼관이 인근에서 아내를 맞아들이고, 아들 셋과 함께 힘들지만 그럭저럭 살아간다. 그러나 첫 번째 아들은 아내가 결혼 전에 알았던 남자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겪는 인간적 갈등과 양심 그리고 사회적 시각에서 괴로워한다. 한때는 아내를 부정하고 큰 아들을 부정하였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인간적 양심을 지키는 주인공으로 묘사하고 있다.

원래 물려받은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는 그러면서 남을 속이거나 인간의 본심에서 어긋나는 일을 할 수가 없는 허삼관은 유일한 재산 즉 자신의 피를 팔아 몫 돈을 마련한다. 이 돈은 자신이 열심히 일하여 받은 6개월어치 보다 더 많은 액수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피는 매우 중요하지만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에게는 3개월만 지나면 다시 팔 수 있다는 극단적인 상식으로, 손쉽게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허삼관이 결혼 전에는 결혼자금을 마련하고 집을 짓기 위하여 피를 팔았다. 결혼 후 기근으로 온 가족이 옥수수 죽으로 6개월을 버티고 있을 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피를 팔았다. 아내와 다른 남자의 관계를 알았을 때 마음 둘 데가 없어 방황하던 시기에 정을 나눈 동네 여인을 위해서도 피를 팔았다. 주워온 자식이라고 믿었던 큰아들이 병들었을 적에는 한 달에도 몇 번씩이나 거푸 피를 팔았다. 둘째 아들이 집단농장에서 일을 하는 도중에 마지막 배치를 좋은 곳으로 받게 해달라고 접대를 할 때에도 피를 팔았다. 일상에서 버는 돈은 먹고 입에 풀칠을 하는데 사용하지만, 그 외에 돈이 필요한 경우는 어쩔 수 없이 피를 팔아야 했던 것이다.

허삼관이 나이 60이 되면서 몸도 쇠약해지고 병들었을 때에 자신을 되돌아보고, 지나온 삶을 반추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보신을 위하여 아니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하여 피를 팔기도 마음먹는다. 그러나 그 때는 아무도 그의 피를 사주지 않았다.

허사관이 큰아들을 두고 남의 자식을 계속해서 키워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남의 자식인지도 모르고 속아서 키워주고 있다는 남의 말을 들으면서, 아무리 그래도 어린 나이에 아직 사람구실을 못하는 녀석을 그대로 버릴 수가 없어서, 그 자식마저 버리면 아내가 받을 상처가 너무나 커서 갈등과 고민을 하는 허삼관은 영락없는 선량이다. 비록 배운 것이 없고 교양이 없어서 점잖고 듣기 좋게 말하지는 못하지만, 그의 마음만은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모습이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1950년대에 훑고 지나간 유행과도 같은 것이었다. 중국은 워낙 땅덩어리도 크고 인구도 많은데 상대적으로 해야 할 일이 적은 관계로 피를 팔아 큰일을 치르던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여겨진다. 중국이 천안문사태 개방화 이후에 급속도로 발전하기 직전까지는 이런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을 것이다. 가난하고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으로서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탈출구로 다가왔다.

이런 류의 소설은 다른 나라에서도 가끔 등장하는 내용이다. 이런 소설을 보면 당시 사회상을 짐작할 수가 있다. 문학이란 이처럼 인간사 모든 것을 함축시킬 수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시보다는 수필이, 수필보다는 소설이 더욱 그렇다. 좀 더 직접적으로 그리고 상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 것이 소설이고, 주인공의 마음을 그리고 독자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과 수필을 쓰는 사람에게는 한 가(家)를 이루었다고 하여 소설가(小說家) 혹은 수필가(隨筆家)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반면에 시인(詩人)은 시가 곧 그 사람이라고 표현되지만 주인공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주기에는 뭔가 방법적으로 부족한 면이 있다.

201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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