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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하

꿈꾸는 세상살이 2014. 9. 1. 16:10

 

태평천하

채만식/ 삼성출판사/ 2010.08.01/ 327쪽

저자

채만식 : 백릉, 1902년 전북 옥구출생, 1918년 보통학교 졸업, 1920년 결혼, 1922년 중앙고보졸업 및 와세다대학 입학,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하여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근무. 1924년『조선문단』12월호에『세길로』라는 작품으로 등단, 1930년대 초 동반자적 성향을 보여면서 1932년 단편『부촌』,『농민의 회계보고』와 1933년 중편『인형의 집을 나와서』, 그리고 1934년에『레디메이드인생』을 발표하였다.

채만식은 풍자소설을 통하여 세태를 꼬집었는데, 인테리가 직업이 없어 빈둥대는 것과 일제하의 생활상을 많이 풍자하였다.

작품은 그 외에도『명일』,『쑥국새,순공있는 일요일』,『사호 일단』,『탁류』,『금의 정열』,태평천하』등이 있다.

줄거리 및 감상

주인공 윤직원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으며, 악착같이 돈을 모은 만석꾼지기다. 만석꾼이 된지 벌써 오래 전이나 웬일인지 더 이상 재산이 불어나지 않고 있다. 재산을 유지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인사할 곳도 많고 도와달라고 손벌리는 곳도 많으니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남을 도와 준 것은 자신의 얼굴을 내기 위한 경우에 국한되었으니 그것은 해당사항이 없으나, 자식들이 허랑방탕하는 것이 더 큰 낭비였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 역시 특별한 벼슬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자수성가로 돈을 모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도 있겠지만, 원래 타고난 기질이 그런 사람이었다. 남에게 줄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안 주려고 하는가 하면, 받을 것은 차용증을 썼다가 경매를 붙여서라도 반드시 받아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항상 허전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조상 대대로 벼슬한 못한 것이 원한이며, 현 가족 중에라도 그런 사람 혹여 경찰서나 군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족보를 세탁한다거나 권력층과 연줄을 대어 놓는 그런 곳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쓰는데, 응당 지불해야 할 것도 이리저리 핑계를 대면서 체면도 불사하고 우기는 데는 있던 정도 다 떨어진다.

그런데 이런 윤직장에게는 지금 같은 시절이 가장 좋은 때다. 예전에 시골에 살 적에는 화전민들이 야간에 침입하여 무력으로 재산을 빼앗아가기도 하였지만, 도회지로 와서는 그럴 염려가 없으니 만고강산이었던 것이다. 요즘도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재산은 여전히 충분하여 그것을 다 쓰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놀고 싶으면 창이나 들으며 기생집에 드나들고,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장리를 주고, 말 안 듣는 소작농은 논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고,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차압을 붙이고 자신이 경매로 사들이는 수법도 마다하지 않으나 모든 것이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으니 요즘 시절보다 더 좋은 때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윤직장에게는 지금이 바로 천하태평 시절인 것이다. 윤직장의 자식이 허송세월로 호의호식하며 있는 재산으로 먹고 사는 것은 지 애비나 자식이나 다를 바가 없다. 윤직장은 윤용규의 자식으로 본 이름은 윤두섭이며, 직장은 하나의 직급으로 주인공 윤두섭이 시골에서 향교에 있었던 것에서 연유한다.

그런데 요즘에도 천하태평인 사람들이 많이 있다. 채만식이 본 강점기 말기의 태평성대보다 지금의 태평성대가 더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옆집 사람의 정당함보다 내 정당함이 더 중요하며, 남의 급한 사정보다야 나의 급한 사정이 항상 우선이 사람들이 그런 예다. 어느 누구든지 자신이 주장하는 것이 항상 옳고 급한 것이니 누가 더 급하고 누가 더 옳은지는 따질 수가 없다. 그냥 그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을 뿐이며, 자기 형편에 맞게 그냥 그렇게 급한 사람 저렇게 급한 사랑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보는 태평성대다. 이웃이 죽든 말든, 내가 운영하는 기업의 종업원이 죽든 말든, 사회가 부조리하든 말든, 국가가 이득을 보든 말든, 국민이 손해를 보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자기 수중에 얼마의 돈이 들어오느냐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애국지사 혹은 그의 자손들이 곤난에 찌들어 있는데 오히려 친일분자나 그의 후손들이 떵떵거리려 재산과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인텔리 백릉 채만식이 아닌 범부 내가 보아도 참으로 가관이다.

오죽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채만식이 본 강점기 말기의 사회도 아마 이러하였는가 보다. 당시 수령이‘너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하면 그만이었다. 아무리 죄가 없다고 해도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그냥 죄가 있다고 하면 없던 죄도 생겨나서 있는 것이니 지금의 관리들과 똑같다. 하긴 그때, 나쁜 것만 배워서 써먹던 놈들을 보고 다시 그것을 배워 써먹는 것이니 어디 다를 수가 있겠는가. 오래 전에 죽은 백릉 채만식이 살아 돌아온다면,‘아니 아직도 이 짓거리하고 있느냐?’고 호통을 쳐도 골백번을 쳤을 일이다.

채만식은 레디메이드인생에서 자신을 비탄한 것처럼, 태평천하에서도 자신을 빗대고 있다. 세상이 올바르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이 아니고, 요행수나 바라며 어떻게 하면 남을 속여서라도 내 뱃속을 채울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잘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다보면 당시 채만식은 정말 인텔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식자들이 사용할 단어를 그대로 구사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까지 모두 알아내어 소설에 옮겨놓았다. 아무리 국제 유학을 갔던 백릉이라 해도 단지 1년만 있다 온 사람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파악하는 데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아는 사람이 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을 아무런 연고도 없이 무작정 덤벼서 풀어가는 세상이 너무나 어설프고 안타까웠을 백릉이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큰 소리 쳐가면서 위세 하는 것이 못마땅하였을 백릉이다. 그런 세상이 싫었을 백릉이다. 그가 말년에 병이 들어 고생할 때에도 고향 옥구가 아닌 인근의 도시 익산에서 지냈던 것도 그냥 아무 상관이 없었던 일은 아닐 것이다.

201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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