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1년 24절기와 세시풍속

23. 중양(重陽) - 중양의 유래, 풍속, 음식, 현실

꿈꾸는 세상살이 2014. 9. 7. 15:23

23. 중양(重陽)

중양은 음력 9월 9일을 말하며 중광(重光) 혹은 중양일(重陽日), 중양절(重陽節)로도 부르는데 양력으로 10월 중에 속한다. 9월 9일이라는 글자 때문에 중구일(重九日)이라고도 한다. 홀수(奇數)를 양(陽)의 수로 하여 양수가 겹쳤다는 뜻에서 중양이며, 1월 1일,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을 모두 속절(俗節)로 삼고 있다. 이를 홀수에 의한 기수민속(奇數民俗)이라 하는 데, 특히 9는 숫자 중 가장 큰 수이면서 양수 가운데서 극양(極陽)이므로 9월 9일을 특별히 중양이라고 부른다.

지난 추석에 철이 일러 햇곡식이 없어서 묵은 곡식으로 차례를 지냈다면, 이날은 햇곡식을 수확하여 추수감사제를 지내기도 한다. 또 시주단지에 쌀을 넣고 주인 없는 귀신들의 제사를 지냄으로써 넉넉한 인심과 함께 떠도는 혼백(魂魄)을 위로하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여름에 들끓던 모기가 이날 없어진다고 하였으며, 3월 삼짇날 강남에서 돌아왔던 제비가 다시 강남으로 떠난다고 하였다. 이때부터 뱀과 개구리가 동면(冬眠)하러 땅속으로 들어가는 날로 알려져 있다.

23.1 중양의 유래

옛날 중국의 어느 마을에 신통력을 지닌 ‘장방’이란 사람이 살았다. 어느 날 장방이 ‘환경’이라는 사람을 찾아와 ‘9월 9일이 되면 마을에 큰 재앙이 닥칠 것이니 식구들은 모두 주머니에 꽃을 넣었다가 팔에 걸고 산꼭대기로 올라가라.’고 하였다. 환경이 장방의 말대로 식구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며 하루를 놀다가, 이튿날 집에 내려와 보니 집 안의 모든 가축들이 죽어 있었다. 환경은 이때 만약 자신도 집에 있었다면 그와 같이 죽었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장방을 고맙게 생각하였다. 그 후로 중양절이 되면 산에 올라가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중국은 한대(漢代) 이래로 중구절에 상국(賞菊), 등고(登高), 시주(詩酒)의 풍속이 있었고, 당송대(唐宋代)에도 관리들에게 휴가를 주어 추석보다도 더 큰 명절로 삼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구(重九)에 행하던 풍속이 전해 오고 있다. 신라 시대에는 안압지의 임해전(臨海殿)이나 월상루(月上樓)에서 연례적으로 군신(君臣)이 모여서 시가(詩歌)를 즐겼고, 고려 시대에는 중구의 향연(饗宴)이 국가적으로 정례화되었다. 조선 세종 때에는 삼짇날과 중구를 명절로 공인하였으며, 성종 때에는 추석에 행하던 기로연(耆老宴)을 중구절로 옮겼다. 고려 광종 9년 958년에는 과거(科擧)를 도입하였으며, 조선 고종 31년 1894년까지 이어졌다.

그런가 하면 밖에 나가서 죽은 사람의 제사일(祭祀日)이 언제인지 모를 때는 제사를 그 사람의 생일에 지냈으며, 또는 지방에 따라 칠석에 지내기도 하였으나 대체적으로 중양에 지냈다.

제사는 돌아가신 날 즉 망일에 지내는 것이 원칙이나, 흔히들 돌아가시기 전날에 드리는 것인 줄로 잘못 알고 있다. 이는 제사가 전해오는 과정에서 드리는 사람의 편리성에 의하여 변형된 것이다. 원래 귀신은 사람과 반대이기 때문에 활동하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밤 11시인 자시(子時)부터 다음 날 새벽 첫닭이 울 때까지만 다닌다고 믿었다. 따라서 제사는 전날 밤 11시부터 드리기 시작하여, 새벽 1시 혹은 늦어도 3시 즉 귀신이 떠나갈 때까지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런 시간을 지키기 위하여는 전날 저녁에 음식을 장만하였다가 밤 11시가 되기 전에 상을 차리고 귀신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점점 시간이 앞당겨지면서, 제사는 저녁에 일찍 드리고 산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3.2 중양풍속

조선 후기의 문인 유만공(柳晩恭)이 지은 『세시풍요(歲時風謠)』에는 ‘금꽃을 처음 거두어다가 둥근 떡을 구워 놓고 상락주(桑落酒)를 새로 걸러 술지게미를 짜냈다. 붉은 잎 가을 동산에 아담한 모임을 이루었으니, 이 풍류가 억지로 등고(登高)놀이하는 것보다는 낫다. 중양절의 술을 상락(桑落)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상락주는 요즘 용어로 오디술뿐만 아니라 산딸기 혹은 복분자 등과 같이 일반적으로 여름에 담갔다가 가을에 먹을 수 있는 주류(酒類)를 통칭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술지게미는 밥이나 과일로 술을 담근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액체를 따르는데, 이때 거르고 남는 찌꺼기 즉 젤 상태의 고체를 의미한다. 흥부네가 술지게미를 얻어다가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밥 대신 먹었다는 것이 바로 이처럼 술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먹었다는 것인데, 아직 술 성분이 농후하여 많이 먹으면 술에 취하게 된다.

그러나 조선 후기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서울의 풍속을 보면 중구날 남산과 북악산에 올라가 먹고 마시며 단풍놀이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중구(重九)는 그 이전부터 이어져온 우리의 풍속이며, 등고가 아주 중요한 행사였음을 알 수 있다. 북악산 외에도 남한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후조당 등이 주요 등고(登高) 장소로 등장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중양일을 속절(俗節)로 여기는 것은 중국의 풍습에서 온 것이지만, 다른 북방민족 여러 나라에서도 속절로 삼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삼월 삼짇날이나 단오 혹은 칠석에 비해 더 중요한 명절로 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중국의 북제(北齊)에서는 기사(騎射)를 행했고, 요(遼)에서는 사호사연(射虎射宴)을 했으며, 금(金)에서는 배천사류(拜天射柳)의 의식을 거행했다. 그런가 하면 한(漢)과 위(魏) 이래로 환경(桓景)의 등고고사(登高故事)로 말미암아 중양일에는 높은 곳에 올라 하루를 즐겼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모방하여 옛날 사대부들은 남산이나 북악산에 올라 시를 짓는가 하면 먹고 마시며 하루를 즐겼다.

민가에서는 지인(知人) 중의 술친구를 찾아가서 술잔을 기울이거나 술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이때 선비들은 단풍을 주제로 하여 시를 지었으며 부녀자들은 내방가사를 읊었다. 또 농부들은 농악을 울리며 하루를 즐겼다. 일부는 투호(投壺)놀이도 하였다.

또 이날 차례를 지내는데 햇곡식을 조상에게 바치며 감사의 뜻을 전하던 것으로 전한다. 성주단지를 햇곡식으로 갈아주며 정성으로 제물을 차려 성주차례도 지낸다. 지역에 따라서는 시월상달의 좋은 날 혹은 섣달그믐, 정초의 좋은 날을 골라 갈아주는 곳도 있다. 이때 기일(忌日)을 모르는 조상의 제사도 함께 모셨으며, 연고자 없이 떠돌다가 죽었거나 전염병을 앓다가 죽은 사람의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런 제사는 특별히 여단(厲壇)에서 지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일부는 집 안에서 지내기도 하였다.

여단은 조선 시대의 행정관서가 있던 중심 고을에서 무주고혼을 달래기 위하여 제사지내던 단을 말한다. 당시 큰 고을에서는 죄인을 다스리던 곳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구치소나 교도소에 해당하는 치소가 있었으며, 이곳에서 죽은 영혼을 포함하여 객사한 무연고 영혼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경상도지방에서는 이날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서낭제를 지내기도 한다. 여단은 각 지방마다 특별한 곳에 설치되었으며, 관청이나 마을 공동으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예로부터 단이나 당, 혹은 제실 등은 우연찮게 음의 기운이 강한 곳이 대부분이다. 이런 곳은 외진 곳이거나 인적이 드문 곳이 많았으며, 이런 곳에서 도깨비불을 보았다거나 귀신에게 홀렸다는 말들이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유교 중심이었던 조선 시대에는 서울과 군현에 문묘, 사직단, 성황단 그리고 여단을 포함하여 일묘삼단(一廟三壇)을 두었으며,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제사하였는데 이를 묘단제(廟壇祭)라 하였다. 여기에 등장하는 문묘(文廟)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학문의 최고봉이라는 뜻에서 공자를 문성대왕(文聖大王)이라 부른 것에서 기인한다. 궁중에서는 기로소(耆老所) 내에 있는 원로 문신들을 모아 위로하는 기로연(耆老宴)을 베풀었다. 기로연은 삼월의 상순 뱀날과 삼짇날, 중양절에 70세 이상으로 정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을 대상으로 하였다.

23.3 중양 음식

중양절은 10월에 해당되어 각종 과실이 풍부하며, 모든 곡식을 수확하는 계절이다. 각 가정에서 국화전(菊花煎) 혹은 감국전(甘菊煎)을 해 먹거나 국화주를 빚고, 술과 음식을 장만해 가지고 가까운 산에 올라가 단풍놀이를 즐겼다. 이때 그냥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인들이 시를 읊으면서 흥을 돋우며 산수를 즐겼던 것이다. 국화꽃잎으로 화전과 화채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며, 술에 띄워 마시는 방법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이런 국화꽃에는 크로로케닉산, 퀘르시트린, 아피케닌 등이 함유되어 있어 심혈관계 질환 예방과 항산화 및 항암효과가 있는데, 이런 사실을 예전부터 알아낸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9월조에 의하면 ‘누런 국화를 따다가 찹쌀떡을 빚어 먹는데, 그 방법은 삼월 삼짇날 진달래 떡을 만드는 방법과 같으며, 이를 화전(花煎)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誌)』 세시편에도 ‘국화꽃잎으로 떡을 해먹는다. 이는 3월 삼짇날 진달래떡을 해 먹는 것과 같다. 이것이 화전이다.’라고 하여 풍국놀이를 적고 있다. 지금의 국화떡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배와 유자, 석류, 잣 등을 잘게 썰어서 꿀물에 타면 이것을 화채라 하는 데, 이것은 시절 음식도 되지만 제사에도 오른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중구의 시절 음식으로 삼짇날의 화전과도 같은 국화전이나 국화화채를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어란, 유자차, 유자화채, 유자정과, 밤단자, 도루묵찜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다. 그런가 하면 무시루와 물호박, 대추인절미, 토란단자, 밤단자 등으로 만든 각종 떡도 맛있는 시절 음식에 속한다. 토란은 성질이 차갑고 성분이 강하여 인체에 해로운 독성을 지녔다. 따라서 고사리와 마찬가지로 데쳐낸 후 사용하거나 쪄서 요리를 해야 한다.

23.4 중양과 현실

9월 중양일은 모든 약초를 갈무리하는 시기다. 따라서 약초의 효험이 가장 큰 때이므로 이날 약초를 뜯어 말리는 일이 하나의 풍속이 되었다. 구절초 역시 이때 뜯어 말리는데, 아홉 마디로 굽어 있어 구절초(九節草)라 부르며, 구월 양중에 뜯는다 하여 구절초(九折草)라 부르기도 한다.

중양절은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하게 발동하는 날이다. 따라서 사내들은 국화전과 국화주를 들고 가까운 산에 가서 긴장을 풀며 몸을 보했다. 한편에서는 바지를 벗고 남근(男根)을 내 놓은 다음 따사로운 태양의 양기를 쏘여 주는 거풍(擧風)도 행했다. 이는 삼짇날과 단오에 그네를 타던 아낙들이 펄럭이는 치마 밑으로 음기(陰記)를 내뿜던 거풍(擧風)과도 같은 이치다. 그래서 봄은 사내를 유혹하는 여자의 계절이며, 가을은 양기를 담뿍 머금은 남자의 계절이라 일컬어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옛 풍속으로만 남아 있다.

요즘 학교에서 봄소풍이나 가을소풍을 가는 경우도 답청(踏靑)과 단오(端午) 그리고 중양(重陽)의 나들이 행사에서 비롯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산천경개가 좋은 곳에서 자연을 만끽하고 호연지기를 펼치며, 실내에 갇혔던 답답함을 푸는 심신단련의 목적이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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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국 행사 사진 500여장을 첨부하여 '선조들의 삶, 세시풍속이야기'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