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1년 24절기와 세시풍속

24. 시월상달(十月上月) - 상달의 현상, 유래, 변천, 풍속

꿈꾸는 세상살이 2014. 9. 7. 15:26

24. 시월상달(十月上月)

음력으로 10월을 상달(上月)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10월이 1년 중에 제일 높은 달이라는 뜻이며, 이는 개천절(開天節)이 들어 있어 하늘이 열렸으며, 10월의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른 데에 기인한다고 본다. 그런가 하면 농사 즉 모든 활동을 마무리하고 1년의 정점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달에는 백성 모두가 하늘에 소원을 비는 고사(告祀)를 지냈는데, 이를 상달고사(上月告祀)라고 하였다. 상달고사는 집안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며, 성주신이나 조상신, 터주신, 조왕신, 삼신 등 현재 모시고 있는 가신(家神)들이 만들어 주신 풍년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다.

성주단지는 주로 벽에 작은 선반을 만들고 그 위에 올려놓기도 하며, 부엌의 살강 위에 작은 판자를 대고 올려놓기도 한다. 이때 쌀이나 벼 등 새로운 곡식을 담아두는 단지 형태가 주를 이루었으나, 일부에서는 한지로 접은 종이꽃을 안방 윗목의 벽 중앙에 매다는 방식을 취했다. 이때 종이꽃에는 돈이나 쌀 등을 넣어 재물이 풍성해지기를 빌었다.

한편 다른 의미의 상달은 농사일이 끝나니 1년 중 가장 편하고, 먹을거리가 풍부하여 가장 아름다운 달〔祥月〕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24.1 상달의 현상

음력으로 시월은 천지인(天地人)의 삼자(三者)가 화합하는 달이기에 더 없이 좋은 달에 속했다. 상달은 입동과 소설을 포함하여 겨울의 계절이지만, 아직은 가을 햇볕이 남아 있어 엄동설한(嚴冬雪寒)은 아니다. 또 겨울에 속하여 1년을 마감하기도 하며, 만물(萬物)이 숨을 죽이니 인생의 황혼과도 같은 달이다. 추수도 뒷손질에 들어 지난일에 대한 회고와 더불어 감사의 마음이 절로 생기는 때이다.

24.2 상달의 유래

상달에 지내는 고사의 유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일부 전하는 기록을 통해서 추측할 수는 있다. 상달은 1년 동안 농사를 지어 햇곡식을 거두게 된 것이 오직 하느님과 선조들의 덕분이라고 생각하여 이에 감사하는 뜻을 전하는 때이다. 그래서 시월이 되면 나라에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제의(祭儀)와 점복(占卜), 그리고 금기(禁忌) 행사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상달고사에는 햇곡식으로 술과 떡을 만들고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이리하여 상달은 풍성한 수확을 바탕으로 신과 인간이 함께 만나서 즐기는 달이 된 것이다. 이러한 상달 행사는 멀리 고구려 때에는 동맹(東盟), 부여 때에는 영고(迎鼓), 예맥 때에는 온 민족이 함께 무천대회(舞天大會)를 열었다고 전한다.

24.3 상달행사의 변천

음력 시월(十月)이 되면 나라에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세시풍속들이 있었다. 먼저 나라에서 제사하는 국행제(國行祭)를 살펴보면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과 마한의 제천(祭天)이 모두 시월에 있었다. 또 고려에서는 시월 망일(望日)의 팔관재(八關齋)를 비롯하여, 조선 시대의 종묘 맹동제(孟冬祭)가 그것이다. 맹동제는 음력으로 겨울 세 달 중 처음에 들어 있는 10월 달의 제사를 말한다.

‘무천(舞天)’이라는 말은 하늘에 춤을 추어올리는 행사로 온 국민이 함께 즐기던 행사였다. 또 마한 때에는 제천의식(祭天儀式)으로 굿을 하였는데, 이때의 굿이 바로 오늘날의 제사와 같은 것이다. 이런 의식들은 고려 때에 팔관회로 그 맥을 이어 오다가, 조선 시대에는 고사 혹은 안택으로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상달고사는 고대국가의 시절(時節) 행사인 동시에 농경사회에서는 그 자체가 생활의 일부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24.4 상달의 풍속

이렇게 하늘과 조상에게 예(禮)를 올리는 성(聖)스러운 상달에는 예로부터 많은 의례(儀禮)가 전해왔다. 초하루가 되면 궁(宮)에서는 머리를 따뜻하게 하는 난모(煖帽)를 착용하기 시작한다. 이는 겨울을 나기 위한 복장의 일종으로 당상관은 표피(豹皮)를 사용하고 당하관은 서피(鼠皮)를 사용하였다. 이 모자는 날씨가 덥다고 하여도 2월 초하루가 되기 전까지는 마음대로 벗을 수가 없었다.

손돌 바람

음력으로 10월 20일에 불어오는 강하고 매서운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한다. 조선 영조 33년 1757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邑誌)를 모아 종합지리지로 엮어낸『여지도서(輿地圖書)』의 강화부(江華府) 고적조(古蹟條)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이 몽고 군사에게 쫓겨 강화도로 파천(播遷) 가던 중 산수가 험하고 좁은 곳 즉 목(項)에 이르렀다. 뱃사공인 손돌(孫乭)은 마침 바람이 크게 불어 위험하니 잠시 머물다 가자고 진언(進言)하였으나, 왕은 일부러 사경(死境)에 유인하려는 것으로 여겨 그의 목을 베었다. 그러자 더 거센 바람이 일어났고, 그제야 뉘우친 왕이 손돌을 위로하고 제사를 지내주었다. 이후에 바다가 잠잠하여져서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다. 그 뒤로 10월 20일이 되면 통진과 강화 사이의 손돌이 죽은 곳에 바람이 거세게 분다. 여기에서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 손돌추위, 그리고 그 곳을 손돌목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위와 같은 내용에 대해서는 일부 학자의 의견이 다르며, 역사적으로 당시의 임금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어 하나의 전설(傳說)로 전해왔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유야 알 수 없다고 하여도 그때에 바람이 불고, 그곳을 지나는 배가 주의하며 제를 지내는 것 등은 엄연한 세시풍속에 속한다.

신주단지에 햇곡식 넣기

시월은 풍요로 인해 상서로운 기운이 뻗치는 상달(祥月)로, 신주에 담겨 있는 곡식을 꺼내고 새로운 곡식을 채워 넣는 풍습이 있다. 터줏대감은 집 뒤꼍의 장독대 옆에 산다고 믿었는데, 이곳의 단지를 조상단지라 부르며 곡식을 넣어 놓는 풍습이 있다. 이러한 풍습은 지방에 따라 부르는 이름과 놓는 장소가 다르지만, 호남 지방에서는 이것을 철륭단지 혹은 제석오가리, 중부지방에서는 조상단지, 영남지방에서는 세존단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단지에 햅쌀로 갈아 넣고 난 다음 묵은 쌀은 밥을 지어 식구들끼리만 나누어 먹었는데, 이는 자신의 복을 남에게 내어주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이때 묵은 쌀에 곰팡이가 피어 있거나 썩어 있으면 집 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징조로 근심을 하였고, 깨끗하여 상태가 좋으면 집안의 길조(吉兆)로 여겼다. 그래서 신주단지에 바꿔 담을 햇곡식은 반드시 잘 말리고 정성껏 손질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가을떡

지금은 거의 잊혀져가는 풍속이지만 농촌에서는 상달에 ‘가을떡’을 해 먹었다. 이 떡은 대체로 음력 10월에 드는 무오일(戊午日)에 맞춰서 만들었던 떡이다. 무오일(戊午日)은 10간 12지 즉 10개의 천간(天干) 중 다섯 번째인 무(戊)와, 12지지(地支)의 일곱 번째인 오(午)가 만난 날이라서 ‘무오날’이며, 이날의 대표적인 시절 음식이 시루떡이었다.

시루떡은 멥쌀가루와 찹쌀가루를 교대로 앉히고, 그 중간에 삶은 검은콩이나 팥고물을 교대로 뿌리는 떡이다. 일부에서는 멥쌀가루에 무채나 호박고지를 섞기도 하였으나, 찹쌀가루에 호박고지만을 섞어서 찌기도 한다. 이렇게 켜켜이 다른 재료를 넣는 것은 바로 10간 12지의 음양을 조화시키는 것으로, 한 가지 음식 맛이 아닌 여러 가지 재료를 동시에 맛보고 음미하는 것이었다. 참고로 쌀은 양의 성질이 있지만, 팥이나 녹두, 수수 등은 음의 기운을 지니고 있다.

무를 섞은 무시루떡은 농사를 풍년들게 해준 토주신(土主神, 土地神)에게 고사를 지내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한편에서는 안택(安宅)굿을 하기도 한다. 이런 행사에는 으레 떡이 등장하므로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거나 떡본 김에 굿한다는 말이 생겨났다. 또 굿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속이 있었으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다.’는 말도 생겨났다.

이엉엮기

농촌에서는 음력 10월부터 지붕에 얹을 이엉을 엮기 시작한다. 새로 거둔 짚으로 엮어 덮은 지붕은 따뜻한겨울을 나게 하였으며, 행여 부식된 지붕이 더 이상 상하지 않게 하는 목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붕을 이는 것도 자일(子日)이나 오일(午日), 묘일(卯日), 유일(酉日)에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

이날은 천화일(天火日)이라고 하여 멸망일(滅亡日)로 여겼는데, 쥐와 토끼는 짚을 쏠며, 말과 닭은 짚을 흩어 헤치는 습성이 있어 지붕에 좋지 않다고 믿었던 까닭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화일에 지붕을 이거나 고치면 그집에 화재가 나든지 아니면 집안이 망하게 된다고 믿었다. 정말로 예전 초가집에서 불이 난 경우 모두가 그런 집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기타

상달이 시작하는 음력 10월 1일의 날씨로 그해 겨울 날씨를 점치기도 한다. 이날 추우면 겨울이 춥고, 이날이 따뜻하면 겨울이 따뜻하다고 믿었다. 또 입동의 날씨로 겨울 날씨를 점치기도 하는 데, 입동이 추우면 겨울에 큰 추위가 오고, 입동이 따뜻하면 겨울에 큰 추위가 없다고 한다. 입동은 양력으로 11월 초순에 해당하여 이제 곧 추운 겨울이 온다는 것을 알리는 절기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10월의 보름달이 지는 것을 보고 다음 해의 운세(運勢)를 점쳤다. 10월 보름달이 지고 난 뒤에 해가 뜨면 이듬해 시절(時節)이 좋고, 보름달이 지기도 전에 벌써 해가 떠오르면 시절이 불길(不吉)하다고 한다. 또 경상도 지방에서는 10월에 부엉이가 울면 다음 해에 풍년이 들고, 10월이 지나서 부엉이가 울면 다음 해에 흉년이 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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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국 행사 사진 500여장을 첨부하여 '선조들의 삶, 세시풍속이야기'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