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1년 24절기와 세시풍속

22. 추석(秋夕) - 추석의 유래, 추석의 풍속,

꿈꾸는 세상살이 2014. 9. 7. 15:18

22. 추석(秋夕)

추석은 음력으로 8월 15일에 해당하는 날이다. 2010년도에는 9월 22일, 2011년도에는 9월 12일, 2012년에는 9월 30일, 2013년도에는 9월 19일에 들었다. 이날은 한가위, 중추절, 가윗날 등과 같이 다양하게 불리는 우리 고유의 명절이다. 한가위에는 햇곡식이 이미 익고 추수가 멀지 않으므로 아무리 어려운 집에서라도 풍성한 시절을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반찬을 만드는가 하면,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 감사하는 마음을 표했다. 그래서 누구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러나 요즘은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하여 점차 더워지고 있기 때문에 추석에 느끼는 계절은 아직도 여름에 가깝다. 따라서 오곡의 결실이 조금 늦게 맺어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추석은 대체로 추분 전후에 든다.

이때의 중추절은 가을의 절기 중에서도 가장 중앙에 든다는 말이다. 가을은 보통 양력 8월 초에 드는 입추(立秋)로부터 석 달간을 말하는 데, 음력으로는 7월, 8월, 9월에 해당한다. 이때 7월은 가을의 첫째 즉 맏이라는 맹(孟)달이며 8월은 가운데인 중(仲)달이다. 그리고 나머지 9월은 지는 계절의 아쉬움을 달래는 막내로서 계(季)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맹, 중, 계는 춘하추동 각각의 계절 모두에 적용하였다.

22.1 추석의 유래

『삼국사기(三國史記)』나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의하면, 신라 유리왕 때 7월 16일부터 8월 보름까지 장안(場內)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을 하였다. 이 두 편은 각각 왕녀(王女)가 주동이 되어 지휘하였으며, 진 편에서는 술과 음식을 내어 이긴 편을 대접하며 놀았다.

아울러 조정에서도 부족국가(部族國家)에서 고대국가(古代國歌) 체제(體制)로 전환되는 시점에 부족 내의 결속력과 응집력을 이끌어내는 방편으로 길쌈내기를 하였다고 보인다.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탄식하면서 ‘회소(會蘇) 회소’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애절(哀絶)하면서도 단아(端雅)해서 후대(後代) 사람들이 그 곡으로 ‘회소곡(會蘇曲)’을 지어 부르게 되었다. 회소는 모여서 다시 해보자는 의미로 다음에는 반드시 이기겠다는 반성과 각오가 담긴 표현이라 할 것이다.

이날은 햇곡식으로 술을 빚고 떡을 만들었고, 오색(五色) 과일로 제사상을 차려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고 성묘하는 날이다. 여기에 자주 등장하는 차례는 시제나 집안제사가 아닌 경우로 모든 명절날에 음식을 진설하고 예를 올리는 것을 통합한다. 성묘(省墓)란 산소에 가서 제를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산소를 둘러보고 잘 관리하는 것을 포함한다.

한편 입던 옷을 깨끗이 손질하여 입거나 새 옷을 준비하는 데 이것을 추석빔이라고 하여 정성을 들였다.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마친 다음,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각종 노래와 춤으로 하루를 흥겹게 보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오는 가배(嘉俳)는 오늘날의 가위 즉 한가위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가위는 중앙이라는 뜻이며 한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의 아버지인 할아버지가 원래 한아버지에서 유래된 것과 같은 이치다. 또 신라의 조정에서는 8월에 달을 보고 절하는 배월(拜月) 의식이 있었고, 보름이 되면 풍악을 잡히고 활쏘기대회를 열어 우승자에게 삼베를 상으로 주기도 하였다.

결국 가배(嘉俳)를 풀어보면 아름다운 광대라는 뜻이니, 어떤 의식을 통하여 국가적 단결(團結)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풍요와 결실의 성과를 누릴 수 있는 계절에 선택된 민족의 풍속(風俗)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때 사용된 풍악을 잡힌다는 말은 지방에 따라 사물놀이를 한다거나, 풍장을 친다 혹은 농악을 친다, 풍악을 울린다는 말과 혼용하여 사용된다.

『고려가요(高麗歌謠)』 ‘동동’에도 가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아 예전부터 계속하여 중요한 명절로 자리 잡아 왔음을 알 수 있다. 조선 말의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의『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추석이 가락국(駕洛國)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중국에서도 중추(仲秋) 또는 월석(月夕)이라 부르며 명절로 삼고 있는데, 8월 보름날 저녁의 달빛이 가장 아름다워 월석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또 추석이라는 말은 『예기(禮記)』의 춘조월추석월(春朝月秋夕月)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에서도 추석을 쇠는데 음력 8월 15일의 대보름달을 보면서 술과 떡 등 푸짐한 음식을 먹는 것으로 우리와는 성격이 다르다.

22.2 추석의 풍속

추석절(秋夕節)은 오뉴월 뜨거운 태양 아래 땀 흘려 일한 보람을 느끼는 시기로서 ‘오월농부팔월신선(五月農夫八月神仙)’이라는 말을 실천하는 날이었다. 즐거운 날에는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도 고향을 찾아 함께 즐기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조상의 은혜를 잊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아름다운 풍습으로, 그 전통에는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였다.

특별히 고인의 망일을 기리는 제사도 있지만, 추석이나 설날처럼 감사하여 지내는 제사도 있다. 제사는 방안에서 지내는 차례와 산소에 가서 지내는 성묘로 나눌 수 있다. 성묘를 하기 전에는 여름내 자란 잡초를 베어 말끔하게 만들었다. 이 또한 조상에 대한 명절을 맞는 예의에 속했다. 벌초는 추석과 한식에 하는 데, 그 간격이 길어 여름에 자란 풀이 무성하면 추석 전인 백중을 전후하여 한 번 더 실시하기도 한다.

추석의 음식은 차례(茶禮)라는 상차림 방식에 따르는데, 조상들이 즐겨 마시던 차(茶)를 준비하여 드리던 예절에서 유래한다. 이날의 상차림 음식도 풍성하여 준비하는 손길은 바쁘기 여념이 없다. 따라서 그 전날인 8월 14일을 작은추석이라고 한다. 차례가 끝나면 성묘를 하고 일부는 농악을 치며 즐겼다. 농악은 현재도 경기농악, 영동농악, 호남좌도농악, 호남우도농악, 경남농악, 경북농악으로 나뉘며, 이 중 진주삼천포농악, 이리농악, 강릉농악, 평택농악, 임실필봉농악, 구례잔수농악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에 속한다.

우리는 밥을 먹는 상(床)은 산 사람을 기준으로 가장 오른쪽에 수저와 젓가락을 놓는다. 다음으로 국을 놓은 후 밥을 왼쪽에 놓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제사상에서는 오른쪽에 밥을 놓고 그 왼쪽에 국을 놓으며 가장 왼쪽에 수저와 젓가락을 놓는다. 이는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구분하는 한 가지 방식이며, 추석에는 밥과 국 대신에 송편을 놓고 설날에는 떡국을 놓는 것이 상례다.

하지만 추석이 되면 아직 논밭에서는 황금물결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아직 덜 익은 풋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풋것을 따서 음식을 만들었다. 이렇게 덜 익은 나락을 타작하는 것을 풋바심이라 한다. 타작을 지역에 따라 바심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적은 양을 특별히 추수할 때는 빗살처럼 생긴 도구 즉 홀태에 이삭을 넣고 잡아당겨 수확하기도 하였다.

아직 덜 여문 이른 벼를 베어 올겨쌀을 만들었고, 풋콩을 넣어 송편을 만들었다. 밤도 아직 여물지 않아 작년 가을에 수확한 밤을 사용한다. 그러나 일찍 여무는 조생종은 아직 여리기는 하지만 풋밤을 사용할 수도 있다. 조상께 감사의 제사를 올리면서 아직 덜 익은 풋것을 사용하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완전히 익은 것은 개성이 강하고 맛이 강하여 제수용품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며, 아직 푸릇푸릇하여 싱싱한 그러나 막 익어가는 먹을거리가 더 좋다는 생각에서였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어릴 적 배가 고플 때 맛있게 먹었던 쌀맛을 보고 싶다는 장면이 나온다. 그 사람은 아직 철이 일러 귀하디귀한 조생종 즉 올벼의 쌀을 먹고 싶었던 것이다. 올벼쌀은 오려쌀이라고도 하며 오례쌀, 방언으로는 오리쌀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첫 열매를 수확하여 사당에 제사를 드리면 천신(薦新)이 되고, 일반 사람이 먹으면 올벼의 새로운 맛 즉 올벼 신미(新味)가 되는 것이다. 이는 발음상의 문제로 올겨심니를 거쳐 올게심니로 불리는가 하면, 때로는 그 쌀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원래 조생종은 아니지만 같은 품종 중에서도 조금 일찍 여무는 부분의 열매를 일부 수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도저도 없을 때에는 간혹 덜 익은 열매를 걷어다가 인공적으로 여물게 하여 올벼처럼 만들기도 한다. 이때 적용된 어떤 방법이든 올벼를 수확한 것과 마찬가지로 모두 오려쌀이라고 한다.

중국의 한가위가 우리의 한가위와 계절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송편빚기

추석날에 사용할 송편은 전날 밤에 준비하는 데, 햇곡식으로 만들며 온 가족이 정성을 들였기에 더욱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예쁜 배우자를 만나게 되고, 밉게 만들면 못생긴 배우자를 만나게 된다고 하여 모두들 솜씨를 다투었다. 그런가 하면 혹시 태중(胎中)인 부인이 있으면,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 알아보는 방법도 있었다. 송편 속에 바늘이나 솔잎을 가로로 넣고 찐 다음, 송편의 한쪽 끝을 깨물어서 바늘의 실구멍이 있는 귀 쪽 혹은 솔잎의 벌어진 쪽이면 태아는 딸이고, 솔잎의 꼬투리나 바늘의 뾰족한 부분이면 아들이라고 하였다.

송편을 만들어 솥에 넣고 찔 때는 솔잎을 깔기도 하는 데, 이는 향긋한 냄새가 좋기도 하지만 일종의 방부제 역할도 하여 가을 날씨에 쉬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는 강강술래와 같은 말로 전라남도 남해안(南海岸) 지방에서 시행하던 부녀자의 놀이인데 임진왜란 때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문화재청에서 정한 공식 명칭은 강강술래이다. 밝은 달밤에 곱게 단장한 마을 부녀자들 수십 명이 모여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뛰노는 놀이로 남자는 참여하지 않았다. 강강술래는 부인끼리 또는 소녀끼리 시행하는 놀이지만 어떤 때는 어린아이를 제외한 젊은 아낙과 처녀가 무리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이는 경상도의 남자들이 행하는 '쾌지나칭칭나네'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원래 강강술래라는 말은 '왜적이 쳐들어온다'는 의미의 한자(漢字)인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 혹은 ‘강강수월래(强羌隨月來)’로 설명된다. 우리말 어원설로 ‘강’은 물체의 주변이나 둥근 원(圓)을 의미하고 ‘술래’는 한자어인 순라(巡邏) 즉 경계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러니 해안지대에서 둥글게 모여 왜적이 나타나는 것을 예의 주시하여 경계한다는 뜻이다.

한편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얽힌 이야기로는 강강수월래가 왜적을 속이는 위장술이었다고 전한다. 부녀자들이 많이 모여 저녁 늦게까지 노래하고 춤추며 노는 것은 그만큼 태평성대하다는 것이며, 그 이면에는 마음 놓고 놀 수 있도록 우리 군사들이 튼튼히 지키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내용이었다.

목청 좋은 사람이 맨 앞에 서서 ‘강강수월래’를 선창(先唱)하거나, 원의 중앙에 들어가고 나오면서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후렴(後斂)으로 따라 불렀다. 처음에는 진양조로 느리게 춤을 추다가 차츰 빨라져서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변하고, 선도자의 지휘에 따라 고사리꺾기, 남생이놀이, 멍석말이, 문턱넘기 등 변화무쌍한 춤으로 발전하여 밤늦도록 이어진다. 이 놀이는 밤이 이슥하여 힘에 부치게 되면 끝을 맺는 것이 일반적이다.

강강술래는 2009년 9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소먹이 놀이

소먹이 놀이는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농악대가 신명나게 풍물을 울리고 놀다가, 허리를 굽힌 두 사람에게 멍석을 씌우면서 시작된다. 앞사람은 작대기 두 개로 뿔을 만들며 뒷사람은 새끼줄로 꼬리를 달아 소와 같은 형상을 만든다. 그다음 동네의 부잣집을 돌면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이내 안주와 술을 비롯한 먹을거리가 주어진다. 그러면 그에 대한 답례로 한바탕 풍악을 놀아주고 떠난다.

이와는 별도로 실제 소를 이용하여 싸우는 소싸움도 있다. 원래는 소의 체급에 관계없이 출전하였으나, 최근에는 등급을 매긴 후 일정한 규칙을 정하여 실시하고 있다. 무릎을 꿇고 넘어지거나 꼬리를 보이고 도망가는 편이 진다. 단편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것처럼 벼슬에서 선혈(鮮血)이 낭자하는 닭싸움도 있다. 벼슬은 닭이나 꿩의 머리에 난 톱니바뀌 모양의 붉은 살덩이인 볏의 방언이다. 또한 그네뛰기도 하며 닭잡기 놀이로 하루를 즐긴다.

줄다리기

제주도에서는 남녀가 모여 춤을 추고 노래하며 즐겁게 노는가 하면, 좌우로 편을 가르고 큰 줄로 줄다리기를 한다. 이 줄다리기는 전국적으로 많은 설화를 가지고 있으며, 『동국세시기』에는 특별히 제주지방에서 줄다리기를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가끔 줄다리기를 하는 도중에 줄이 끊어져서 모두가 뒤로 넘어지는 현상도 일어난다. 이때 구경꾼들이 웃고 즐기는 것에 비유하여 조리지희(照里之戱)라고도 한다. 현재는 일정한 규칙을 정하고 국제경기로까지 발전하였다.

씨름

씨름은 원시사회부터 전해 온 무술의 일종으로 행해졌으며,『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충혜왕 5년 1334년 2월과 7월에 왕이 직접 씨름을 관람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도 성했음을 알 수 있다. 충청도에서는 음력 8월 16일에 술과 음식을 차려 놓고 씨름판을 벌였다. 이것은 지금까지 애쓴 수고를 위로하고 농한기를 맞아 그간의 피로를 풀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씨름은 주로 명절에 벌어지게 되는데, 단오와 추석, 설날 등의 주종목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평소 짬을 내어 겨루는 경기로 머슴날, 칠석, 백중 등에도 빠지지 않아 일상 중에 퍼져 있었다. 씨름은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보통 오른손잡이 형태로 하는 오른씨름과 왼손잡이 형태로 하는 왼씨름이 있다. 또 서서 하는 선씨름이 있고, 띠를 매고 하는 띠씨름, 샅바를 매고 하는 샅바씨름으로 나누기도 한다. 한편, 공평한 경기를 유도하는 목적으로 체격에 따라 어린이의 애기씨름, 젊은이의 중씨름, 어른의 상씨름으로 구분하였다. 이런 씨름은 남자의 전유물인 듯 알고 있지만 사실은 여자들이 하는 씨름도 있다.

씨름을 한자어로는 다리에 힘을 주거나 다리 기술로 인한 놀이라고 하여 각력(角力), 각저(角觝, 角抵), 각희(角戱), 상박(相撲)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한자 용어가 반드시 한국의 씨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문헌에 따라서 중국의 씨름 혹은 씨름과 유사한 경기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특히 상박(相撲)은 일본의 스모(相撲)와 같은 문자를 사용한다.

샅바라 불리는 헝겊 띠를 사용하는 씨름은 힘과 기(技), 그리고 지구력(持久力)을 모두 갖춰야 하는 고도의 무예 중 하나에 속한다. 사용되는 기술로는 오금당기기, 앞무릎치기, 앞다리들기, 안다리후리기, 바깥다리후리기, 안다리걸기, 배지기, 들어놓기, 뒤집기, 허리꺾기 등이 있다. 지금도 추석장사씨름대회가 열리고 있으며, 예전의 민속씨름도 단오와 추석에 두 번 열려 전반기대회와 후반기대회를 연상케 한다.

반보기

애틋한 전설로는 시집간 딸과 이를 애타게 기다리던 친정어머니가 중간에서 만나는 반보기도 있다. 이는 당시의 시집살이가 엄중하여 친정나들이를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교훈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오고가는 시간조차 아끼기 위하여 중간 지점에서 만나 장만한 음식을 먹으며 해후를 하고 돌아서는 것은 안타까움의 상징이 되었다.

밭고랑기기

전남 진도에 전하는 풍속의 하나로 8월 14일 밤에 아낙들이 밭고랑을 기던 풍습이다. 이때 밭둑에 음식을 장만하여 지신께 빌면서 벌거벗은 몸으로 기면 밭농사가 풍년이 들고 몸에 부스럼도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다.

지게목발춤

지게는 예전에 가장 중요한 농사 도구의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농군에게는 힘든 일을 떠올리는 대상이 되었고 벗어나고 싶은 농사 필수품이었다. 추석을 맞아 벌초를 하거나 농사일을 하면서 지고 있던 지게다리에 작대기를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 지게목발노래다. 이는 전라도 지방의 농촌에서 성행하였으며 현재는 익산에서 무형문화재로 복원하여 ‘익산목발노래’로 전승하고 있다. 초동(草童)들이 혹은 농부(農夫)가 수확물을 져 나르면서 목발을 두드리는 것인데 작대기타령, 등짐소리, 꿩타령 등으로 나누어 부른다.

원놀이

서당에서도 추석을 맞아 하는 놀이가 있었다. 훈장 선생님이 명절을 쇠러 간 사이에 학동들끼리 모여 고을의 원을 가장한 후 다른 학동들이 상소한 모의사건을 해결하는 놀이다. 이들은 세금이나 제사문제, 관혼상제의 시비, 노비의 비위사실, 부역의 참여 등에 따라 논하고 문초를 하였다. 이에 따라 푸짐한 주안상으로 대접을 받은 후, ‘암행어사 출두요!’라는 호령에 따라 다음 집으로 이동하였다. 이로써 장차 과거에 나갈 학동들의 꿈과 지혜를 키우는 기회가 되었다.

소싸움

소싸움의 유래에 대해서는 명확히 전하는 바가 없으며, 일부 기록에서는 전승기념 행사의 하나로 시작하였다고 하지만 농경 시대의 주요 수단이었던 소의 용맹성과 강인함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출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놀이는 강점기 때 협동과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꺼려하는 차원에서 금지되었다가 근래에 부활되었다. 현재 전하는 주요 경기로는 120년의 역사도 넘는 진주소싸움을 비롯하여 청도, 의령, 김해, 안동, 창녕, 정읍, 완주 등 일부 지자체에서 민속놀이 겸 축제 행사의 성격으로 채택하고 있다.

투견(鬪犬)이나 투계(鬪鷄)를 법으로 금하고 있는 것에 비해 투우(鬪牛)는 합법적인 행사에 속한다. 투우는 체급에 따라 백두, 한강, 태백의 세 분류에, 다시 크고 작음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 총 6개 팀으로 분류한 후 토너먼트방식으로 경합하게 된다. 이때 참여하는 소의 안전을 위하여 일정한 규칙을 정하게 되니 하나의 전통놀이가 된 것이다. 개최 시기 역시 3월, 5월, 10월 등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기타

경기도와 충청도 일부에서는 거북놀이를 하는 데, 이는 수신(水神)인 거북을 즐겁게 함으로써 다음해에 비를 흡족히 내려 농사가 잘되게 해 달라는 뜻의 기풍의례(祈豊儀禮)에 속한다. 다른 의미로는 거북처럼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뜻도 있다.

이 외에 평안도와 황해도 등지의 소먹이놀이, 의성의 가마싸움 등도 전하고 있다. 또 콩밭의 이슬을 받아 먹으면 더위가 낫는다고 하였고, 이슬을 모아 병에 담아 두었다가 홍역을 앓는 아이가 있으면 약으로도 먹였다. 벼나 조 등과 같은 이삭 달린 곡식을 거두어 문지방에 걸어두는데, 이것을 올게심니라고 한다. 올게심니는 장독대에 넣어 두기도 하는 데, 새것으로 교체하면서 나온 묵은 것은 떡을 하거나 밥을 지었다. 또 일부는 내년의 종자로 사용하거나 떡을 해서 사당(祠堂)에 천신(薦新)하였다.

---------------------------------------------

이 글은 전국 행사 사진 500여장을 첨부하여 '선조들의 삶, 세시풍속이야기'라는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