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2013년 11월 8일 화요일

꿈꾸는 세상살이 2014. 12. 4. 21:01

2013년 11월 8일 화요일

 

아침 출근길에 은행나무의 노란 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오늘부터 떨어진 것은 아니며 벌써 10일 이상 전부터 그랬었지만, 앙상한 가지들은 어제와 그저께 이슬비가 온 뒤에 더 처량하게 보이는 것 같다. 덕분에 나무 밑에는 노란 물감을 칠해 놓은 듯 화사하다. 그러나 성질 급한 사람이 바쁘게 칠한 나머지 군데군데 빠트린 곳이 있어 더러는 연분홍색 바닥이 보이기도 한다. 칠하려면 제대로 칠할 것이지... 그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런 계절이 오면 낙엽을 밟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가을의 운치를 얘기한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운치는커녕 가을을 꺼내기도 전에 걱정부터 하는 사람도 있다. 자고 나면 떨어지고 쓸고 나면 떨어지는 나뭇잎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때이기 때문이다. 상강을 지나 입동을 맞으면 무슨 시합이라도 하는 듯이 떨어지는 낙엽들로 몸서리를 앓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분들이다.

그래도 그런 낙엽을 밟고 가는 사람들은 사각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져 또 다른 세상의 맛을 느끼게 된다. 천당에 가면 이런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을까 생각해본다.

또한 이맘때쯤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언제 배웠는지 기억조차 없는, 그런가하면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 줄도 모르는 시를 중얼거리며 나름대로 예술을 논하는 계절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더니 정말 가을은 먹을거리는 물론 사람의 마음까지 풍성하게 만드는 계절임에 틀림없나 보다. 천고마비의 계절도 맞고, 독서의 계절도 맞다. 보이는 모든 것이 보름달만큼이나 풍성한 계절이다. 천만 송이의 국화꽃이 풍성하고 구경꾼도 풍성한데, 때를 놓치지 않고 뿌려지는 홍보물도 풍성하다. 떨어진 이파리가 풍성하다 했더니, 이파리 포장을 벗어낸 가지가 얼기설기 풍성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치는 나도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는 아침이다. 이런 때에는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노래를 잘 불러서가 아니라 그냥 기분이 좋아져서 나오는 노래다. 그러니 박자나 목청 따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며, 지금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아는 노래가 없으니 한 구절 부르다가는 다시 다른 노래의 한 소절을 부르는 것이 고작인 나다. 그래도 뭐라고 할 누가 없으며, 누군가가 있다 해도 거기에 신경 쓸 나도 아니다. 그냥 나오는 대로, 부르다가 모르면 그냥 멈추면 되는 노래들이다. 나는 지금의 내 기분에 가을이 주는 정서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낙엽이 주는 낭만이라고 해야 맞을 지도 모르겠지만...

물기를 머금은 은행잎이 아침 햇빛을 받아 영롱한 구슬을 선보인다. 어두운 밤에는 어느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을 구슬이다. 오늘 아침, 지금이라는 단어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모아 빗살무늬를 만들어 놓았다.

그 햇빛을 바라보는 나는 나의 미래를 가늠하기 위하여 눈은 감았다 떴다를 반복한다. 그 눈 깜빡할 사이에 비치는 풍경은 다시 보기 힘든 광경이다. 노란 구름 위로 나무가 솟아 있고, 그 가지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이 따스하게 비친다. 그것은 마치 천상에 난 열두 대문 사이로 비치는 햇빛과 같다.

저 많은 구슬을 꿸 수만 있다면... 지난 생일날 변변한 선물조차 하지 못했던 아내에게, 그때 준비해놓았었는데 깜빡 잊었노라며 내 놓을 수 있을 텐데... 아니 어쩌면 세상에서 누구도 부럽지 않은 보석상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그러는 어느새 은행나무는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있다. 늘어 서 있는 은행나뭇길을 내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들뜬 내 가슴 속으로 은행나무들이 지나간다. 하나 둘... 셀 수 없이 많은 나무들이 지나간다. 그리고 헤어지기가 아쉬운 듯 추억을 남겨놓았다. 자기를 잊지 말라며 하트모양을 한 이파리를 남겨두었다. 한 손에 쥐고 다닐 정도로 아담한 이파리를 남겨놓았다. 얼마나 고이 간직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벌레가 전혀 범접하지 못한 청순함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떨어진 낙엽은 말하고 있다. 자신은 쓸쓸한 가을의 끝이 아니라 겨울이라는 새로운 계절의 전령이라고. 문득 어릴 적 지나친 미술시간이 생각난다. 그때 아마 하얀 색은 순수요 빨강은 정열, 그리고 노란색은 희망이라고 하였었지?

 

아침 일곱 시. 새벽을 놓친 사람들이 경적을 울리며 길을 재촉한다. 그 바람에 나는 현실로 돌아온다. 숨 가쁜 세상에서 눈을 감고 천상을 꿈꾸던 내가 놀라 주위를 살핀다. 나는 내 갈 길을 잘 가고 있는데 왜 나를 가지고 그러는지 모를 일이다. 길에 떨어진 낙엽을 보는 것도 잘못이란 말인가. 그것을 보면서 인생을 설계하는 것도 안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애당초 낙엽을 떨어뜨린 나무에게 뭐라고 해야지 왜 나를 가지고 그러는가 말이다.

삶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갈 때가 많이 있음을 느낀다. 나는 슬퍼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행복하고 싶은데... 나는 늙고 싶지 않은데...

문득 생각해보니 약관인 듯하였는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립을 지나 불혹을 넘겼다. 세월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지천명을 지나 이순에 다다랐다.

세상에는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일이 많이 있음을 실감한다. 오늘 아침의 출근길도 마찬가지다. 나는 낙엽을 보며 예술을 논하는데, 그것조차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이다. 나는 낙엽을 보면 다가올 겨울채비를 하는데, 그것조차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이다. 나는 저무는 한 해를 바라보면서 남은 내 인생을 설계하는데, 그것조차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이다. 그러면 도대체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해보니 이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확인한다.

내 나이 이순이 되어서야 이런 것을 깨닫다니 정말 아무렇게나 정해놓은 이름이 아닌 것을 느낀다.

그렇다면 저 낙엽은 누가 뭐라고 해서 떨어지는 것일까? 저 낙엽의 나이가 벌써 이순이 되어 자연의 섭리를 알아차렸다는 말인가? 세상의 아웅다웅을 벗어버린 이순이 세월의 짐을 벗어버린 이순에게 마음을 전한다.

‘아! 이래서 가을이로구나. 역시 가을은 풍성한 계절이야. 만물이 고개를 숙이며 세상의 이치를 모두 알아버릴 정도로 풍성한 계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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