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 돌리기 떡 돌리기
지난 주 토요일에는 장인어른의 생신날이어서 식구들이 모였다. 처가는 9남매를 둔 대가족이라서 이들이 모이는 날이면 항상 잔칫날에 속한다.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에도 그렇지만 생신이나 혹은 이사하여 개업이라도 하는 날이면 시끌벅적 예사 난리가 아니다. 자녀들이 모이는 것은 물론이면 각자가 하나 둘 데리고 오면 그 숫자는 어느새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만다. 그래서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해놓고도 상은 항상 따로 차려 먹는 것이 불문율이다. 먼저 오는 사람이 먼저 먹고 나중에 오는 사람은 나중에 먹는 것이다. 그러니 밥을 먹는 순서는 위아래가 없고 그냥 선착순이 대세다.
따라서 밥을 먹고 나면 자기가 먹은 밥그릇은 자기가 들어내어 설거지통에 넣어두는 것도 하나의 규칙이라면 규칙이 되었다. 다음 사람을 위하여 그리고 치우는 사람의 수고를 덜기 위하여 뭔가 조금은 성의 표시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신이라고 하여 어떤 집처럼 거창하게 장만하고 고급 술도 돌리는 그러한 일은 없다. 우리는 집에서 가꾼 채소를 중심으로 하여 자급자족을 최우선으로 한 후, 부족한 것이 있다면 필요한 만큼 사다 장만하는 편이다. 이날의 식단을 보아도 별 것이 없었다. 잔칫날의 감초라는 잡채, 묵은 김치, 겉절이 김치, 쇠고기미역국, 도토리묵, 조기튀김, 돼지갈비찜, 그리고 주 메뉴에 속했던 오리찜이 등장하였다. 이 중에서 특별히 음식을 장만하기 위하여 구입한 것은 조기밖에 없다. 다른 재료들이야 항상 먹는 혹은 집에서 기르는 것, 그리고 예전에 준비했던 재료를 조리한 것뿐이다.
그럼에도 밥상은 항상 교자상 3개를 펴놓고 교대로 먹어야 한다. 그것도 나란히 붙여놓지 않고 사이를 조금씩 떼어놓아 중간중간에도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더라도 항상 끼워주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술이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으레 술이 주빈이었을 법하지만 우리는 정 반대였다. 우선 술을 즐기는 사람도 없지만, 행여 술을 찾는 사람이 있어도 오늘은 다른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데 왜 혼자만 술을 마시느냐고 하면 바로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술에 대한 집착이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니 술로 인한 실수도 없을뿐더러 별도로 술상을 차리는 등의 수고도 필요 없다.
따라서 서로가 만나도 술기운에 의한 흥을 돋우는 일 역시 없지만, 진솔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줄 기회는 생기는 장점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한 번 뱉은 말은 꼭 지켜야 하는 것도 이런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는 술기운에 나도 모르게 그랬다느니 하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끔은 실수도 하여 서로를 웃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하겠지만, 입에 발린 말 때문에 실수를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속마음을 아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주 토요일에는 집들이가 있었다. 이날의 처남 집들이는 신축 건물 입주 겸 이사 집들이임으로 다른 약속이 있었지만 빠지기도 그런 날이었다. 새로 택지개발을 한 곳의 동사무소 바로 맞은 편에 건물을 짓고 1층은 상가로 세를 내놓고 2층은 자신이 살면서 사무실 겸용으로 사용한다고 하였다. 건물 인테리어를 직업으로 하고 있으니, 말하자면 이런 저런 형태의 디자인과 새로운 자재를 활용한 전시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런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새로운 구조의 집을 구경한 것 같았다.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스크린에 빔프로젝트를 활용한 홈시어터 겸 거실, 중정을 연상하게 하는 높은 거실천정, 주방의 식탁을 겸한 스텐드바 형식의 식탁, 윗층에서 아래층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트인 공간의 복층, 부분조명과 집중조명이 가능한 엘이디 등, 거실바닥의 데코타일, 편백나무 판재를 이용한 벽면, 대리석을 연상시키는 시트지 등 다양한 재료의 시험장을 방불케 하였다.
그러나 보는 사람의 눈에는 단점도 들어왔다. 고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구조를 하다 보니 남향으로 앉은 방이라 하더라도 창문이 작아 햇빛이 적게 들어온다든지, 안방에서 주방까지의 동선이 길다든지 하는 것들은 생활하기에 불편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주인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 집은 오로지 재료나 구조를 보여주기 위한 집이며, 자신은 잠만 잘 작은 공간 하나면 족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말을 듣고 보니 그 또한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의 음식은 출장뷔페로 하였다. 덕분에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수고는 덜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우선 돼지고기를 사다 삶아 수육을 만들었으며, 잔치용 시루떡도 맞췄다. 직접 기른 배추를 뽑아 김치도 담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왕 돈 들여가며 출장뷔페로 하였으니 부족하든지 남든지 아무 것도 신경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으나, 정작 주인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기왕 먹는 것이라면 그 집 가서 잘 먹고 왔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기억에 남아 다시 만날 때는 나의 고객으로 찾아온 다는 이론이었다. 별도의 광고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이왕 하는 잔치에 조금만 신경 쓰면 저절로 홍보가 된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듣고 보면 그게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발 물러서서 아무리 그래도 별도로 고기를 별도로 삶고 김치를 담은 것은 잘못했다고 말했지만 대답은 매 한 가지였다. 별도로 마련한 고기와 김치, 시루떡은 잔치에 모인 사람들이 먹는 것은 둘째로 치고, 돌아가면서 싸가지고 가라고 한 음식이라는 것이다. 현장에 참석한 사람들이야 많은 종류의 음식 앞에서 먹으면 얼마나 먹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같이 와야 할 사람이 참석하지 못한 경우, 그 사람들도 온 사람과 똑 같은 분위기를 느끼라고 한 배려였다는 것이다. 정말 입구에는 위생 팩이 두 상자나 놓여있었다. 듣고 보니 이 또한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친척들은 손님이 오기 전에 음식도 먼저 먹었고 기념품도 미리 챙겨나갔다. 시간이 지나자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하나 둘 자리를 떴다. 그리고 돌아갈 때에는 떡 두 봉지와 포장된 수건을 두 개씩 들고 갔다. 수건은 최고급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기 좋은 그런 수건이었다. 그런데 보통의 수건 같았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상호나 주는 사람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수건을 펴 본 친척들은 걱정하는 마음에서 혹시 기념품점에서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그러나 수건에 대한 대답 역시 같은 내용이었다.
어떤 집에 가서 수건을 보면 누구네 잔치 기념품으로 받은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단다. 그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집 주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수건을 걸어놓는 것이 마음에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단다. 물론 싫어하면서도 그런 수건을 어쩔 수 없어 내놓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로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수건이니 그런 것은 전혀 안 따지고 사용되는 것이 수건의 임무일 것이다.
내가 펴본 수건에는 수건이라는 글자만 새겨져 있었다. 수건 공장에서 볼 때 아무 글자도 없으니 밋밋하여 그냥 수건이라는 글자만 수놓았던 것이다. 하긴, 내 이름이 적힌 수건을 다른 사람이 발로 뭉갠다거나 더러운 것을 닦아내는 걸레로 사용한다면 그것도 보기에 좋은 현상은 아닐 수도 있다. 아무리 손을 닦고 발을 닦는 것이 수건의 역할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내 이름을 홍보하기에 앞서, 수건을 내 주는 주인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수건에는 그냥 ‘수건’이라는 이름표만 달아 주었구나 하는 생각에 닿자 손아래 처남이 멋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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