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밭에 누운 여자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넌 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어린 시절 즐겨 불렀던 동요 중 하나이다. 장에 가시는 아버지께서 왜 나귀를 타고 가셨을까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불렀던 동요이다. 한편 할머니께서는 건넌 마을 아저씨 댁에 가실 이유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옛 시골장이라는 것이 지금처럼 매일 매일 서는 것도 아닌데, 산 넘고 물 건너가야 하는 5일 장을 꼭 골라 피해서 아저씨 댁에 가셔야 했던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거기에 왜 아이들이 고추를 먹고 맴맴, 달래를 먹고 맴맴거려야 했을까 하는 가사에 있어서는 더욱 의문이 선다. 때는 아마도 초여름 농번기 방학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집을 비운 사이에 어린 아이들이 집 안팎에서 놀다가 마땅히 할일이 없어지자, 마루에 있던 저녁 반찬용 풋고추도 먹어보고 토방에 멍석 깔고 널어놓은 달래도 먹어 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달래는 구분하기 쉽게 나무달래와 풀달래로 나눌 수 있고 나무달래는 진달래, 철쭉, 영산홍 등으로 나눈다. 그러면 위에서 아이들이 맴맴하던 달래는 진달래와 같은 나무달래가 아닌 풀달래로 생각된다. 또한 이 풀달래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달래와 산달래로 나눌 수 있다. 달래나 산달래 그리고 유사종인 산부추, 참산부추, 두메부추, 한라부추, 산파 등 모두 여러해살이풀로 파의 무리이다.
이것들은 땅속에 있는 줄기에서 가을에 잎이 나고 월동하여 우리 식탁에는 봄나물로 찾아오고, 늦봄부터 초여름에 꽃이 핀다. 그 뒤 6월 하순이 되면 휴면기에 들어가는데 뿌리만 남고 땅위의 줄기는 말라 없어져버려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달래는 잎과 뿌리를 모두 식용으로 사용하므로 보통 4월 경 늦어도 5월까지는 거두어 들여야 한다.
시장에 가신 아버지께서 행여나 맛있는 군것질 거리라도 사 오실까 학수고대하며 기다렸지만 머나 먼 장길이요, 오랜만의 나들이 길은 처음부터 쉽게 끝날 수 없었을 것이다. 기다리다 지친 아이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려 택한 것이 먹기에 탐스러워 보이는 윤기나는 풋고추이며, 한 입에 넣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달래였을 것은 뻔한 이치다. 거기다가 지척에 있으면서 숨겨 놓을 것도 없이 들어내 놓고 있었으니, 말없이 한 웅큼 집어 먹었을 것을 짐작케 한다. 혹시나 누가 다 먹어 치워 내가 먹을 것조차 없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다투지나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먹었던 달래는 파 냄새가 나고 매운 맛이 있어, 식용이나 약용으로 쓸 만큼 영양이 풍부한 것은 물론이고 맛과 향도 독특하였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달래를 먹은 아이들이 맴맴했다는 것은 잘 모르겠다.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다. 다람쥐처럼 열매를 저장하는 동물을 제외하면 개미와 같은 여름형 동물들도 있다. 한참 더운 여름날 뜨거운 햇볕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경우도 있는데 참나무 수액을 먹고사는 풍뎅이도 그렇다. 이 풍뎅이의 더듬이를 떼어내고 목을 비틀어 놓으면 제정신이 아니며, 게다가 방향감각을 잃어 제자리 돌기를 하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맴맴돈다고 말한다.
매미가 맴맴울면서 몸을 돌린다고 하여도 맴맴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마치 매미가 맴맴 우는소리처럼 다른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럽고, 매워서 펄쩍펄쩍 뛰는 아이들 모습, 또한 주위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제멋대로인 것을 상상하여 빗댄 말이라고 생각된다. 혹시 고추나 달래가 너무 매워서 맵고도 맵다는 말을 줄여서 나타낸 의태어는 아닌지도 생각해본다.
이 노래를 듣는 어른들은 또 다른 생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때 고추나 달래를 먹었던 아이들이 제대로 씻고 먹었을까 아니면 그냥 먹었을까이다. 물론 답은 그냥 먹었고, 요즘같은 식탁 먹거리 문화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 당시 아이들이 먹었던 고추나 달래는 유기농산물이고, 최소한 친환경적 농산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물리적이거나 화학적인 가공을 하지 않아도 우리 몸에 충분히 좋은 친인간적 산물들만이 존재하였었다.
현재도 이 친인간적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농부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농산물도 농부가 아닌 도시 사람들의 손에 의하여 유통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일부러 옛날 동요 속 고추나 달래를 가꾸던 농부의 마음으로 생산한 농산물이라고 하더라도 우리식탁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변화를 거치게 되어있다.
제주도에서 채 익지도 않은 새파란 감귤을 사들고 좋다고 돌아오던 수학여행도 있었다. 딸 때는 무공해 새파란 바나나도 아내가 시장을 볼 때에 농약코팅 속에서 노랗게 익어있는 것은 익숙해졌다. 맛이 떨어지지만 값싼 덕분에 잘 팔리는 수입품은 그나마 국적 표기가 되어있어 밉지는 않다. 수입산 식물 먹거리가 국산으로 둔갑하여 팔릴 때는 돈과 신용과 우리의 건강까지도 해치는 물건이 된다.
식당에서 본 고춧가루는 빨갛고 탐스러워 보였는데 막상 먹어 보아도 맵지가 않은 것은 자주 경험한 일이다. 어떤 경우는 고춧가루에 물들인 톱밥을 섞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고춧가루가 수입산은 아니었는지 걱정이 하나
더 늘어나는 순간이다.
전에 들은 바에 의하면 고추나무는 3년 간 계속하여 수확할 수 있다고 했다. 성장과 생식에 필요한 조건을 맞추어 주면 계속해서 고추가 열리며, 나무의 키도 자라고 줄기의 굵기도 커진다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조건을 갖추어 주는 것은 고추 수확의 수익성에 비하여 비경제적이므로 농부들이 실제로 적용하지는 않고 있다.
내가 아는 어느 분도 고추농사를 짓고 있다. 그 사람은 이른 봄이면 밭을 정리하고 비닐하우스를 만들며 상토를 준비한다. 그리고는 봄이 오면 벌써 파종한 육묘를 판매한다. 이것이 고추농사의 전반전이다. 그리고는 자신도 남과 같이 고추를 본심기하고 가꾼다. 이 작물도 연작피해가 있어 몇 년 후에는 다른 토양에 심어야 하니 자신의 밭에만 심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고추따기를 연간 대여섯 번 하는 동안에 가물거나 장마로 인한 피해를 막는 것이 연작피해보다도 더 큰 과제이다.
적당히 익은 고추를 제 때 따는 것도 일이며 따낸 고추를 잘 말리는 것 또한 일이다. 태양볕에 3일 정도 바싹 말려야 하지만 일기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도 아니고, 넣었다가 거두어들이기를 반복할 그럴 시간도 없다. 병들고 환경에 지친 고추를 제대로 수확하기란 쉽지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농촌에는 고추씨를 사러 다니는 사람도 있고, 말린 고추를 사러 다니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바로 앞에서 말한 도시민 농산물 유통가이다. 죽은 돼지나 소를 사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요즈음에는 병든 고추를 사러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병들고 물러터진 고추를 사러 다니는 사람들이 오면 평소에 모아두었던 고추쓰레기들을 내다 파는 농가들이 늘어났다. 이제는 거의 모든 농가들이 그러하며 조금이라도 썩지 않고 병들지 않게 하기위해 많은 농약을 사용하게도 되었다.
그러나 앞의 농가는 이러했다. 사람이 먹는 고추를 꼭 그렇게 많은 농약으로 지어야 하느냐고 하면서 자신은 친환경 농법만을 고집했다. 그러니 남들보다 수확이 적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거기다가 자신이 지은 건조용 비닐하우스에서 고추를 말리니 그것이 바로 태양초였다. 이 태양초는 불고추에 비하여 훨씬 더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한다. 또 고추꼭지를 모두 잘라내고 젖은 수건으로 고추를 하나하나 닦아내어 깨끗하게 만드니 위생적이다. 고추씨나 고추꼭지가 하나도 없이 순전히 고추만을 빻으니 곱디고운 고춧가루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농사가 마무리 될 때쯤이면 으레 나타나는 썩은 고추를 사러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온 동네가 소란해진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만들면서 어떻게 병들고 썩은 고추를 사다가 만드느냐고 따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네사람들은 옆집사람 눈치를 보아가며 그간 모아두었던 못쓰는 고추를 알게 모르게 내다 팔곤 했다.
위의 농부도 그간 열심히 모아 둔 못쓰는 고추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그 고추를 여러 사람이 보라고 동네 회관 마당 앞에서 모두 태웠다. 만약 이 못쓰는 고추를 두엄자리에 버리더라도 저 사람들이 주워가면 큰일 날 일이므로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뜨거운 여름날 뙤약볕에서 군불을 때고 있으니 참으로 더울 수밖에 없었다. 더위에 지친 그녀가 잠시 쉬려고 자신의 건조용 비닐하우스에서 들어갔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었다. 한참 후 고추위에 누워있는 그 여자를 보고 주위사람들이 한마디씩 해댔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그러나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데 이 정도야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답하는 그 녀는 유기농 농사꾼이거나 친환경적 농사꾼임에 틀림없다.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더라도 아마 친인간적 농사꾼인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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