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올 해 가을 추석에는 선물을 안 주고 안 받자고 많은 기업들이 말했다. 그 중에 우리 회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말이 그렇지 어디까지 선을 그어 어디 까지를 받아도 되고 어디 까지를 줘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 회사에서는 통상적으로 추석이나 설 명절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의 선물은 괜찮다고 했었다. 그리고 업무와 관련된 사람이 주는 선물은 받지 말라는 정도의 지침이 있었다. 그래도 그 선이 어딘지 선명치가 않은 것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선물을 받았다고 억지를 잘 봐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예 속 편하게 주고받기는 무조건 안하면 된다고 자의적으로 해석들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우리는 공식 비공식 암행감찰도 없으니 그저 조용히만 있으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그냥 사원들의 양식에 맞기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이러다가는 고유의 풍습도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는 것은 아니다.
또 회사에서는 추석 전에 위의 선물 안주고 안 받기를 실시한다는 공문을 전 협력업체에 보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 공문이 약간 늦게 겨우 일주일을 남기고 도착하도록 보내졌다는 점이다. 사실 이정도의 시간이면 벌써 어느 업체들은 이미 선물을 보낸 뒤이거나, 또는 보내고 있는 경우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일부업체는 이 공문 내용을 보고 한결 마음이 편해졌으리라 생각된다.
전자의 어느 업체들은 선물을 주기 위하여 얼굴을 맞대하는 것도 쑥스럽고, 시간 맞추기도 어렵고 하니 아예 택배로 보내기도 하고, 허물없는 경우는 인편에 그냥 심부름을 시키기도 한다. 만약 이런 경우에 선물을 받게 되면 받는 사람도 난처하게 된다. 마침 본인이나 알만 한 사람이 물건을 받으면 그래도 바로 돌려주면 되거나, 발신인이 있는 경우는 반송이라도 하면 어느 정도는 해결이 된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본인이 없는 동안에 생물을 다른 사람이 대신 받았다가 전해 주는 경우는 곤란하기 짝이 없다. 그동안 보관하는 것도 일이고 물건에 따라 보관방법도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나도 올 추석 며칠 전에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선물은 생물로써 저녁 늦게 심부름을 시켜 인편으로 보내왔었다. 안 주고 안 받기를 마음먹었으니 지키려고 노력을 하였다. 그래서 생선을 모두 꺼내어 냉동실에 넣었다. 싱싱한 물건을 냉동실에 넣었다가 먹으면 대부분 맛이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도 그랬다. 냉동실에서 일정시간 동안 숙성을 시키는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냉동실에서 꺼낸 물건을 그 상자에 넣어 포장을 하고 다시 테이프로 잘 붙였다. 그리고는 전화를 걸어 사정이야기를 하고 정중히 사과하였다. 상대방은 나하고 업무상 전혀 상관이 없으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아니냐고 하면서도 다행히 이해를 해주었고, 나의 뜻에 동의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전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그 사람에게 달려갔다. 혹시나 그 사이에도 마음이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주위의 사람들에게는 내가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혹시나 자기가 준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받지 않고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할까봐서 둘러댄 말이었다. 그러면 그 선물을 준 사람도 무안해하지 않아도 되며, 돌려주는 나도 덜 쑥스러울 것 같아서 말이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정말로 가벼웠다. 내가 깨끗하고 고고해서가 아니라 작은 일이지만 어려운 일을 내가 용케도 해 냈다는 점에서 기뻤다.
그런데 추석 후에 또 다른 내용이 있었다. 5일 간의 추석 연휴가 끝나는 날 사무실에 들렀다. 거기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보자고 한다. 때는 이미 추석도 한참 지났고, 우리는 벌써 공문도 보낸 뒤였으며, 그로 인해 본인도 수긍하고 선물을 돌리지 않은 상태였기에 부담 없이 만났다.
그런데 그 사람은 다짜고짜로 선물을 차 안에 던지다시피 하면서 하는 말이 걸작이다. 추석 때 줄려고 선물을 이미 구입한 뒤에 그 공문을 받았고, 그러다 보니 물건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업무와 아무 상관도 없는 나에게 주는 것이니, 그냥 쓰레기 치우는 심정으로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정말로 차 안에는 많은 선물이 쌓여 있었다. 나 아니면 자기 혼자서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 선물을 기분 좋게 받았다. 그러나 돌아서는 순간 이 선물을 어떻게 돌려 줄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어느 누구를 주어야 하는지. 불우이웃 시설에 주어야 하는지. 돌려주어야 하는지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선물은 쉽게 상하지 않는 것이었다. 식용유와 참기름 세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우이웃 시설에 가져가자니 양도 적거니와, 추석이 지난 때라 한창 많이 쓸 시기를 놓친 것이고, 누구에게 주려해도 줄려면 일찍 줘서 사지 않도록 할 것이지 왜 이제야 주느냐고 할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우물쭈물 하는 사이 약 한 달이 지나버렸다.
이제는 결론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그 사람에게 전화해서 가져가라고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어서 결국은 전화를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이 변치 않고 있는 사이 드디어 그 사람을 만났다. 나는 마주 서서 얼굴을 보면 다시 마음이 약해 질 것 같은 생각에, 그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차안으로 그 선물을 무조건 반납하고 말았다.
방법이 어리숙하고 떳떳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고 위로해 본다.
내 판단으로도 고등어 몇 마리와 식용유 몇 개는 받아도 되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업무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고, 평상시에도 자주 만나고 농담도 곧 잘하는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부담감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한 일은 내가 잘나고 청렴결백해서가 아니라, 나의 행동에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하다가 결심한 것이기에 지키고 싶었다.
지난 과거는 얼마나 떳떳하냐고 물으면 답변이 궁색해지니, 묻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굴뚝같다. 현재를 과거와 비교하지 말고, 미래를 현재에 비교하여 행동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잘못을 용서하고 격려를 해 주어야지, 아픈 허물을 들추어내면 어느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얼마나 값지게 살 것이냐에 더 많은 무게를 두어야 할 것이다.
과거도 중요하지만 현재는 미래로 가는 길목이다.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가는 우리는, 무한한 개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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