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가 내렸다.
차 유리에 앉은 서리를 긁어내느라 부산한 아침이었다. 아침 출근 시간에 바쁜 걸음을 재촉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들이 말 붙이기를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서 농을 걸거나 시비를 걸만한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차에 시동을 걸어 놓고는 모두들 차 밖에서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서리를 긁어내지 않고 그냥 두었다. 앞면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닌데 서리가 조금 내렸기로서니 그게 무슨 대수냐 싶었다. 혹 가다가 운전에 방해가 되면 그냥 천천히 가기로 마음먹은 탓이었다. 나도 이미 많이 게을러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전 같았으면 된서리가 내린 날이면 몸도 마음도 바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자동차의 앞 유리를 녹이는 기계장치를 가동시키고, 그것도 모자라서 플라스틱으로 서리를 긁어내는 작업을 해댔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운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조급해하였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 정도의 추위라면 물도 꽁꽁 얼었을 것인데, 그렇다면 오늘도 영하 3도는 짐작되고 아마도 시골집 주방의 물이 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안에서 잠자는 한 평 면적이야 전기 매트를 사용하여 따뜻하다고 하지만, 그 외 방바닥은 아마도 냉골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죽어서 지고 가야할 최대한의 면적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둘러 싼 모든 것들은 전혀 필요 없는, 그냥 보기 좋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작년 겨울에는 방바닥으로 전해졌던 차가움이 출근할 때마다 두꺼운 신발을 거쳐 양말도 뚫고 옮겨오더니 온몸에 소름이 솟았었다. 일순간 사지가 마비되더니 온몸이 뻣뻣해져 옴도 느끼곤 하였었다. 그때마다 냉혹한 환상에서 벗어나는 듯 유리를 세게 문질러댔고, 긁지 않아도 되는 옆 유리까지 닦아도 보았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한결 여유가 있었다. 서리를 긁어내릴 생각은 안하고 그냥 녹아내리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방의 냉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벽장 속에 들어가는 작은 보일러를 안고 사시는 분이 더 이상 안 계신 때문이다. 오늘 내가 걱정하지 않는다고 세상의 냉기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 냉골에서 체온으로 구들을 덥히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건만 나는 마음이 편했다.
천정에 매달아 놓은 굴비를 보며 마른 밥을 먹던 지혜가 바로 이것인가 싶었다. 언제든지 단추만 누르면 방안이 훈훈해지고 따뜻한 물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차가운 겨울을 이기게 하였을 것이다. 연료통에 가득 채워 놓은 기름은 언제든지 보일러를 가동시킬 수 있다는 유비무환의 만족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맨 밥을 먹다가 체하여 병원에 가는 우를 범하는 것이 우리네였고, 단추만 누르면 되는 유비무환 속에서 수도꼭지가 얼어붙어 밥을 굶어야 하는 우리네였다. 우리 세대는 그들을 부모님이라 불렀다.
바람이 불면 체감온도가 더 내려 간다는 데에 걱정이 늘었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춥다는 데에 근심이 되었었다. 가까이 있지만 같이 살지 못하니 매번 챙겨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 안타까웠는데, 이 세상의 모든 변화조차 만사튼튼 유비무환인 분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었나보다. 이런 것조차 자동차 앞 유리를 닦으면서 걱정하는 부족한 자식의 메아리로 되돌아왔었다.
오늘 내린 서리는 된서리가 아니라 아주 약한 무서리였다. 무서리나 된서리나 엄동을 전하는 전령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이 엄동에 짐을 하나 벗었다. 그러나 커다란 짐을 벗었음에도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이 없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이 병을 치료하는 데는 어서 이 겨울이 지나가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건 돌리기 떡 돌리기 (0) | 2014.12.04 |
---|---|
선물 (0) | 2014.12.04 |
새하얀 눈이 내렸으면 (0) | 2014.12.04 |
상생으로 물려줄 우리 미래 (0) | 2014.12.04 |
사망공고 (0) | 2014.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