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두 근의 선물
벌써 50년쯤 지난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다. 나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돼지고기 두 근을 들고 친구네 집을 찾아갔다. 집에서 기른 돼지를 잡고 썩둑썩둑 썰어낸 고기 살점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략 1.5킬로미터는 짐직한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역시 어린 내가 제격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직 고기 손질을 다 못 끝낸 상태였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기 전 아버지는 나에게 종이와 연필을 들고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불러주시는 대로 적으라고 하셨다.‘약소하지만 받아주세요. 000’. 나는 그대로 적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해보니 약소하지만은 도무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학교에 가보신 일이 없어서 글을 잘 모르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대로‘약속하지만 받아주세요.’라고 적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왜 그렇게 적느냐고 하셨다. 약소하지만과 약속하지만의 차이를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약속하지만이 맞지 어떻게 약소하지만이 맞느냐고 대꾸하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나는 고기 뭉치를 들고 한 참을 걸었다. 친구네를 찾아가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친구는 같은 반 아이였고, 내 아버지는 친구네 아버지의 일터에서 일한다는 것이 조금은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심부름을 거절하고 싶은 생각은 처음부터 전혀 갖지 않았었다. 그냥 내가 조금 불편하면 그만이지 그랬던 것이다.
친구네에 갔을 때 마침 친구는 집에 없었다. 누구 심부름으로 왔노라며 그냥 물건을 내팽개치듯 놓고 돌아 나왔다. 그날은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고, 내가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직장 사장의 집에 뇌물을 바쳤던 것이다. 앞으로 잘 봐달라는 무언의 뇌물을.
그러나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아버지가 하시는 일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여름이면 한증막이요 겨울이면 석빙고인 채석장에서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몸은 노쇠해졌으며 작업 여건 또한 나빠져만 갔다.
다시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상사를 향한 뇌물이 아니라, 그간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추석 선물을 건넸던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 돈 주고 사서는 못 주지만 있는 고기 조금 떼어 주는 성의표시의 선물이었다.
나는 그 때 일이 생각날 적마다 후회와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아들이 잘못 한 것을 알면서도 그냥 놔주신 것도 그렇고, 자신이 한글도 모른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는데 그냥 넘어가신 것도 그랬다. 순전히 아들의 기분 그리고 아들의 체면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는 것을 안지는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였다.
나는 요즘도 생각해본다. 선물은 왜 약자가 강자에게 하여야 하는가. 반대로 강자는 약자를 위한 선물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꼭 신세 진 것을 갚는 의미의 선물이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약자는 항상 그리고 더 부족해지는 약자가 되지 않겠는가. 아니면 가진 자가 조금 나누어 주는 형식의 선물은 처음부터 의미가 없다는 것인가.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자기는 고기 체질이 아니라서 고기를 먹으면 배탈이 난다고. 그러면서 우리에게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으라고 하셨다. 우리는 그런 어머니의 체질을 아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머니는 부뚜막에서 아무도 모르게 먼저 잡수실 수 있는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약자인 아이들에게 고기를 선물하신 것이다.
어머니는‘약자를 향한 강자의 선물은 없다.’는 진리를 위반하셨다. 정말 약자를 위한 강자의 선물은 없는 것인지 지금도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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