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차명계좌

꿈꾸는 세상살이 2014. 12. 4. 21:57

차명계좌

지난여름에 입식한 작물이 잘 자라 주는가 했더니, 이상 고온에다가 계속된 장마로 도통 힘 알태기가 없어 보인다. 이런 상태라면 가을이 다 가도록 제대로 된 놈으로 살아나기가 버거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현대화된 유리 온실이라 하여도 예상외의 기후변화는 그리 만만치 않았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야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려면 많은 수고와 비용이 들어갈 것이므로 마음은 굴뚝이나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다.

유리 온실을 지을 때에도 융자와 어느 정도의 자부담을 안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운영비를 추가로 빚내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물론 정부의 무상 보조도 있었지만, 그거야 자부담 능력이 뒷받침 되는 사람에게만 주어졌으니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상황을 구구절절 늘어놓을 사람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누가 해결 해 줄 것도 아니어서 혼자 끙끙 앓다가 가을이 되었고, 작물은 이미 말라가고 있었다. 이제는 불어오는 바람을 붙잡고 하소연하거나 시원스레 펼쳐진 푸른 하늘을 보고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산 밑의 집에 있는 아내는 이 겨울만 잘 넘기면 값비싼 꽃을 수확할 수 있으리라 부푼 꿈을 꾸었을 것이다. 정직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아내를 실망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산 속의 겨울이야 빨리도 찾아왔다. 어느덧 서리가 내리는가 했더니, 때 이른 첫눈도 내렸다. 첫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계속되는 눈보라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산간에서는 눈이 내리면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의 눈을 쓸어내리던가, 아니면 적절한 난방을 하여 눈을 녹여 내리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운영비가 없어 작물마저 죽이는 형편에 생난방을 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내었다.

눈만 뜨면 집과 온실을 오가지만 마땅히 할 일도 없었다. 그저 창문을 열고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기도 하고, 희뿌연 하늘의 끝을 초점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해 겨울에는 웬 눈이 그리도 많이 왔던지. 도로에는 제설작업 차량마저 한숨을 돌리며 쉬기 일쑤였고, 아침에 걸어올라 온 밭길은 저녁에 걸어 내려가기조차 힘들었다. 도로에서 치워 낸 눈이 인도를 넘치더니 길가 가게의 문까지 가로막아 버렸다. 갇힌 사람은 글자 그대로 고립무원이었다.

용케도 잘 버텨준다고 생각했던 유리 온실이 무너졌다. 얇디얇은 유리가 먼저 깨져 주기를 바랐지만 기둥이 주저 앉아버렸다. 유리 지붕에 쌓인 눈과 녹은 물이 하나가 되어 얼어붙더니, 그 넓은 지붕은 바로 두꺼운 얼음장으로 변해버렸다. 거기다가 계속 부어대는 눈은 이제나 저제나 그치기만 기다렸지만, 그전에 기둥이 먼저 항복하고 만 것이다. 고정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한해 농사마저 실농이니, 온실복구는 고사하고 당장 끼니가 난감하다. 이럴 때에 은행이라도 털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가 생각하였다.

기약 없이 내리던 눈도 그쳤다. 아마도 어쩌면 더 이상 내릴 눈이 없어서 그쳤을 것이다. 정부에서는 재난발생 특별지구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피해 상황에 따라 보상을 해주기로 하였다. 아내는 제일 먼저 재난 신청을 하였다. 온실 파괴 상황을 신고하였고, 그 안에 있던 작물의 예상 수확을 산출하여 신청하였다. 뿐만 아니라 남아있던 온실 난방용 연료의 피해도 추가하였다.

얼마 후 보상금이 나왔다. 그것은 내 돈으로 준 것이었다. 국가라는 예금주 명의를 빌려서 은행에 맡겨놓았던 돈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차명계좌를 이용한 탓으로 나의 권리를 온전히 주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턱없이 적은 것에도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다.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돼지고기 두 근의 선물  (0) 2014.12.06
흔들리는 유자청  (0) 2014.12.04
인간 견적서  (0) 2014.12.04
익산지방 최초의 교회  (0) 2014.12.04
열린음악회  (0) 2014.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