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속인 거짓말
이종호/ 뜨인돌/ 2004.02.20/ 274쪽
저자
이종호 : 고려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에서 열역학과 유체이동에 대한 연구로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2년 유치과학자의 일원으로 국내에 들어와 한국과학기술연구소와 한국에너지기연구소에서 세계 및 한국의 문화유산을 연구하였다.
현재는 각종 강의와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저서에『신화와 역사로 읽는 세계 7대불가사의』,『피라미드의 과학』, 『노벨상이 만든 세상1,2,3,』,『세계 최고의 우리문화유산』등이 있고, 소설로는『아누비스』,『 피라미드』가 있다.
줄거리 및 감상
이 책의 내용은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에 대하여 일부 오류가 있었고, 중요한 사항이 처음부터 거짓말로 꾸며진 것이라는 것이다. 전부 11가지의 중요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 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때로는 상대방을 속이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기고 하며, 어떤 때는 나를 위하여 그리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거짓말을 하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의 사람들은 과거의 어떤 거짓말에 대하여 검증하기 어려운 나머지 그대로 믿고 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역사는 거짓 없이 사실대로 기록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곡된 역사는 또 다른 거짓말과 왜곡을 낳게 된다. 그것은 우리 삶에 있어 불행한 일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남북전쟁을 기화로 북군의 대통령이었던 링컨이 노예해방을 주요 이슈로 삼고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실제 링컨은 노예제도를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노예를 해방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남부의 여러 주가 반기를 들고 자치적으로 선출한 대통령을 앞세워 독립하였다. 사실 누가 억압한 상태가 아니었으니 독립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었지만 링컨을 미합중국의 통치자로 받들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였다. 이때 남부군은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귀족정치 혹은 부자들의 세습 정치를 하고 있었으며, 링컨은 이때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라기보다는 남부군이 분리 독립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유화정책을 펴고 있었다.
남부군을 다시 흡수할 수만 있다면 노예제도를 운영하는 남부군에 대한 기득권을 보장하겠다는 말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불리한 전세를 파악한 남부군이 자발적으로 노예제도를 철폐하겠다고 하면서 흑인들의 전쟁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북군이 승리하면서 전쟁은 끝이 났으나 링컨이 노예제도의 전면 철폐를 천명한 것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흑인의 인권을 옹호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사회적 흐름에 의해 남부군이 스스로 노예제도를 철폐하였고, 결과는 승리자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는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의 링컨의 행보에 있다. 사실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는 약간의 고비가 따랐다. 그러나 상대방을 거짓과 모략으로 비방하면서 당선을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한 링컨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져다 준 링컨은 대통령이 된 후에는 다른 대통령에 비하여 청렴하고 순수하며 올바른 정책을 폈고, 사생활 역시 칭찬 받기에 충분한 대통령이었던 데서 기인한다. 사실 이렇게 잘못 전해진 데에는 당시 여론을 그렇게 몰아간 것에 원인이 있으며, 그토록 모든 것을 조작하여 선전을 한 당사자들에게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2014년을 보내면서 대한민국을 한 마디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지록위마(指鹿爲馬)라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손가락으로는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로는 그것을 말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즉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양 거짓말을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2014년의 역사는 후세 사람들이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것을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는 지식인들 역시 지록위마의 누(累)를 범하고 있는 것이리라.
콜럼버스가 위험한 해양 탐험을 통하여 신대륙을 발견한 것은 맞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다. 훗날 세기의 위대한 탐험가 콜럼버스를 기리는 차원에서 그렇게 선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대륙을 발견하면서 원주민을 압박하는 것이나, 대륙을 탐험하기 위한 선발대를 모집하는 것 등도 모두가 처음부터 거짓으로 꾸며진 철저한 위장이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하여 일대 성공을 이룬 후, 후퇴하는 과정의 보도 역시 거짓말이었다. 당시 나폴레옹 군대는 채 갖추어지지 않은 겨울 월동준비 관계로 후퇴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이를 혹독한 추위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와서 그랬다고 보고서를 썼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대부분의 내용은 여기까지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른 해보다 추위가 늦게 찾아왔으며 나폴레옹 군대가 철수할 때까지는 별다른 추위도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말하자면 준비되지 못한 전쟁을 기상 악화로 돌려댄 것이다. 또 한 가지, 나폴레옹이 철수를 시작한 이유는 러시아 군대가 항복을 할 듯 하면서 자꾸 시간만 끌자 침략군은 식량이 떨어지고 추위를 견딜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못 버티고 철수한 것이라고 한다. 이때 러시아는 철저히 계획된 작전으로 후퇴하는 지역마다 식량과 옷 등 월동 장비를 모두 없애버리는 작전을 폈다. 또 내륙 깊숙이 끌어들이는 유인 정책 후에 시간을 끌면서 로마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봉쇄하는 고사 작전을 펴고 있었으며, 나폴레옹은 이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실패한 작전이었다.
아프리카에서 휴먼 정신을 펼치다 행방불명된 영국의 리빙스턴을 미국의 스탠리가 찾아 나선 것도 처음부터 조직적인 거짓 작전이었다. 처음에는 많은 탐험과 인도적 차원에서 시작된 리빙스턴이었으나 내륙 깊숙이 그리고 원주민 사이에 파고들면서 고립되고 말았다. 이런 차에 미국의 스탠리가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미국의 신문사에서 철저한 계획 하에 시작된 상업주의적 차원이 숨겨있었다.
당시 리빙스턴이 유명세를 탔는데 이런 사람을 찾아나서는 것부터가 세상의 관심을 끌었으며, 이것은 신문사의 신문 판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연출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실제로 리빙스턴을 찾았을 때에는 부가적인 결과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리빙스턴이 인도적 차원의 출발이었던 것에 반하여, 스탠리는 상업주의적 차원에서 아프리카를 식민지화 하면서 자원의 유출에 목적을 두었다. 따라서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 지도를 놓고 자로 선을 그어가면서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사태를 빚게 되었다.
현생 인류와 가장 가깝다는 크로마뇽인의 출현도 마찬가지다. 그 이전에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으로부터 어떠한 진화의 조짐도 발견하지 못한 체, 그보다 훨씬 진화한 크로마뇽인의 화석 발견은 참으로 불가사의에 속했다. 그러나 계속하여 발굴되는 크로마뇽인의 화석은 이러한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두 화석의 비교에서는 서로 유전자의 연관성이 거의 없이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신기에 가까운 발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 대하여 다른 학자들이 현장 접근이 철저하게 봉쇄되었고, 그가 죽은 후에는 다른 어떠한 크로마뇽인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 데에 문제점이 대두되었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추적하여 조사한 결과 이는 도슨이라는 고고학자의 철저한 속임수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두개골은 오래된 것이었으나 턱뼈 등은 현생 오랑우탄의 것이라는 결론이 난 것이다. 턱의 어금니도 일부러 마모를 시킨 것으로, 인위적으로 조합하여 접합 한 것임도 드러났다. 이후 크로마뇽인에 대한 언급은 고고학에서 사라졌다.
이러한 일들은 중국 북동부 요동성의 전기백악기 지층에서도 이어났고, 일본의 미야기현 가미타카모리의 석기시대 유물에서도 일어났다. 모두가 발굴을 시도하는 학자들이 일부러 조작하여 만든 가짜 유물을 묻어 둔 후 다른 학자들이 발견하게 만드는 얄팍한 수법을 썼던 것이다. 이들은 개인의 영달과 국가적 차원에서 우수한 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독일군이 유태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현상도 그렇다. 독일군은 유태인에 독일을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고, 유태인은 독일을 떠나 인근 국가로 망명을 하게 되었다. 이때 영국 등도 독일의 유태인 추방을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상태였다. 그러나 그 수가 너무 많아 인근 국가에서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을 하자 독일은 이에 난색을 표명하였다. 그러자 독일이 꾀를 낸 것은 바로 유태인 학살이었다.
이 방법에는 일본군이 우리 여인들에게 성노리개로 유인하던 방법이 적용되었다. 다른 곳으로 유태인을 이주하게 한다는 것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그대로 가지고 가는 것은 물론이며 취미 활동에 관한 것까지도 보장한다는 말로 꼬드겼다.이를 순수하게 받아들인 유태인을 있는 재산을 모두 팔아 귀중품이나 현금으로 바꾼 후 한두 개의 가방만을 가지고 이주 대열에 자진 동참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모인 유태인에는 대량 학살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 위하여 소독과 목욕을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모든 재산을 한 곳에 모아놓고 자진하여 독가스실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유태인 420만 명에서 많게는 570만 명까지 살해되었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치가 왜 이런 결정을 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 원인을 한 마디로 할 수는 없겠지만, 1903년 러시아에서 비밀경찰의 후원 하에 발간된『시온 장로의 정서』라는 책이 주요 원인이 된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은 유태인 장로들이 24번에 걸쳐 비밀회의를 한 것으로, 타 민족을 유태인으로 흡수하기 위하여 민주주의, 사회주의, 언론, 예술 등 각론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처음부터 거짓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사실이 아니라는 판명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치는 이를 계속하여 악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채 철저하게 언론을 통제하였다. 모든 것은 검열을 통하여 지정하는 대로 보도되었고, 불리한 내용은 절대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 결과 소문은 퍼지지 않았으나, 일부 몇 명이 탈출에 성공하여 언론에 호소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연합군은 항상 전적을 부풀리기 위하여 과장된 언론 플레이를 하였기에 이번에도 독일군에 대한 기사를 과장되게 쓰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소문이 확산되지 않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 수용소의 사실은 한참 지난 뒤에야 진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세상을 놀라게 하였던 것이다.
이집트19왕조의 투탕카멘 파라오의 무덤에서 비롯된 파라오의 저주는 순수한 언론플레이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사실은 일반 무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부각시킴으로서 언론 판매 부수를 늘리고 개인 재산을 증식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었다. 오히려 무덤에는 자기 무덤을 파 헤쳐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자는 영광이 있을 것이라는 글을 써 놓았었다. 그것은 아마도 무덤의 주인공이 어린 나이에 타살로 죽었기에 억울함을 풀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라오의 저주라는 말을 퍼트리면서 개인의 치부 수단으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잘못 전달된 역사를 그대로 믿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후세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바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 진다고 전한다. 그것은 모든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게 쓴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어떤 역사에 대하여 항상 올바르고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선조들의 역사적 사명이라 할 것이다.
성경에도 잘못은 선조들이 하고 후손은 그 죄로 인하여 대가를 치른다고 하였다. 자신이 잘못하여 후손들에게 짐을 지우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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