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하시는 말씀(시편 제119편 49절 ~ 50절)
일반인들이 교회에 처음가면 느끼는 감정은 비슷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나가기 때문에 다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감정을 물어보면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어떤 때는 엄숙하기도 하며 경건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 앞서 마음이 차분해지며 평안한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평온 즉 평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안과 공포와 걱정으로부터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는 것일까요.
사람은 원래 위로를 받지 않고 살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죄에 묻혀있는 죄인이기에 그렇습니다. 죄인은 항상 불안하고 조급하며 어딘지 모르게 쫓기는 것입니다. 죄를 담당하는 악 즉 마귀는 선을 행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항상 멸시당하며 쫓기고 벌을 받는 입장이기에 마귀가 행하는 죄는 이와 같이 어둡고 불안하며 걱정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런 죄인을 위로하시고 구원하시는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를 거칩니다. 그때그때마다 우리는 위로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위로하실까요. 성경말씀에 따르면 고난당한 사람에게 위로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거치는 동안 고난을 받으면서도 잘 견딘 사람이 평안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고난과 고통을 받는 순간은 위로가 필요합니다. 생각하지 않은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의 위로만 가지고는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위로보다는 평안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위로와 평안의 능력은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만이 주시는 은총인 것입니다.
선지자 엘리랴는 이스라엘의 3년 반 동안 가뭄이 있을 때에 이 난관을 극복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850명과 싸워 이기면서 이루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의 위협으로 좌절감과 우울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로하시고 다시 힘을 주셨습니다. 이때 보통의 사람 힘으로는 엘리야에게 어떤 위로도 그를 평안하게 해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나라의 왕비가 가하는 압박과 핍박을 다른 어떤 사람의 위로로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며 예수님을 거짓 증거한 베드로를 위로하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움과 고난, 그리고 근심 걱정에 빠진 우리를 위로하고 건져주실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정 문제와 개인 문제, 그리고 이웃과 동료와의 문제도 위로하고 해결하여 주실 것입니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말씀을 주시고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 항상 위로가 필요하며 평안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일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통하여 일어난 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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