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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라 성도여(고린도전서 제15장 1절 ~ 11절)

꿈꾸는 세상살이 2015. 4. 20. 07:53

부활하라 성도여(고린도전서 제15장 1절 ~ 11절)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서 이 낮고 낮은 땅으로 내려오시고 인간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기까지 하였으며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가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죄를 포함하여, 원래 타고난 죄 즉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가지고 나온 원죄까지도 주님이 짊어지시고 해결해주신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감옥에 들어가셔서 3일 동안 옥고를 치르시고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지 죄의 문제로 인하여 주님 앞에 나오면 예수께서 모든 것을 다 받아 주시고 우리의 이름으로 기록된 모든 죄들을 지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육체의 죄에서 모두 해방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의 비밀을 완전히 벗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기 전까지는 사망 권세가 왕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가 깨트려지고 더 이상 왕노릇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의 부활을 바라보면서 사탄을 향하여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 이상 죽음의 의미가 없습니다. 죽어도 살 것이며 살아서 주님이 오시면 영원히 죽지 않고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죽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다음으로는 인간의 무의미한 삶을 벗어나게 합니다. 인간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와 있는 동안 무슨 일을 하다가 가는지 왜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잠시 잠깐 머물다 갑니다. 그러니 삶의 꿈도 의미도 잘 모르며 단순히 인간적 육체적 의미로만 해석하며 살다가 갑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꿈과 목표를 정하여 살다 가는 인생은 인생의 현 세상에 대한 적응 그 이상의 어떤 의미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적인 꿈과 희망을 이루고 살다가 죽는 경우에도 무엇인지 허탈한 느낌을 느끼며 아쉽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적인 삶을 산 증거입니다. 부귀영화 외에도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인간적인 삶만 살다가 가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러서는 허무하고 비참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즉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인간의 참된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적 삶 외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고 직장을 다니며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맺더라도 나 외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기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사람들에게 과시하던 것들 외에 하나님께 칭찬받고 하나님께 보여드릴 것이 있기에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 만들기로 병자 고치시기로 소외된 자를 돌보기로 복음을 전파하시기로 바쁘게 사셨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참된 삶을 살도록 일깨워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주님을 본받아서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인간적 삶 외에 다른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고 그 안에서 거주할 새로운 목표와 새로운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