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들/산문, 수필, 칼럼

마음의 표현 방식

꿈꾸는 세상살이 2015. 5. 1. 05:53

마음의 표현 방식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할 때가 많이 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일상에 부딪치면 거짓말을 곧잘 하는 것도 그런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뻔한 거짓말에 관대하다. 애교 섞인 거짓말 혹은 남을 기쁘게 하는 거짓말! 꼭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이것 역시 거짓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거짓말에 대하여 비판적이지 않고 오히려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가 거짓말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보다 남을 더 우선하는 마음이 저변에 깔려있다. 굳이 배려니 자비니 하는 어려운 용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나의 어려움을 표현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요즘 외환위기 때보다 더 경기가 안 좋은 데도 누가 물어보기만 하면‘그냥 잘 지내고 있어요.’하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식사 때가 지났는데 미처 밥을 먹지 못했더라도‘예, 밥 먹었습니다.’는 기본이며, 연락도 없다가 3년 만에 만났어도‘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하며 환대한다.

여기서 그 말이 거짓말이냐 진실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사 표현에 대하여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정확하게 이야기해줘야 같이 밥을 먹든지 약을 가져다 주든지 할 것이 아니겠는가.

나로 인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바라는 마음은 대단히 아름다운 생각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진짜로 행동할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파악하기 힘들어진다.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과 계획의 변동을 불러 올 수도 있다. 나아가 이런 말씨는 상대방의 진심을 파악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안겨 주며, 생활의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다른 나라 혹은 다른 민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를 낮추면서까지 남을 추켜세우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여 경쟁에서 그들이 우리에게 더 좋은 우선권을 주는 것도 아니며, 한국 사람에게만 특별한 대우를 해주자는 국제법을 만들지도 않는다. 물론 사람의 근본을 무시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좋든 싫든 예전부터 내려온 전통의 하나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한국에 와서 연설을 한 후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한국 기자들 어느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자 중국 기자가 질문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때 오바마는‘내가 한국 기자에게 질문권을 주었으니 다른 나라 기자는 잠시 기다려라.’하는 말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자들이 질문을 하지 않자 오바마는‘내가 한국말로 하여야 한국 기자들이 알아들으려나 보다.’고 하였다. 그래도 질문하는 기자들이 없자‘정말로 질문할 기자가 없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 현장은 전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중계되었다.

정말 물어보고 싶었던 말이 없었을까? 설사 없었다면 만들어서라도 물어보아야 하지 않았을까? 영어를 몰라서 물어보지 못했을까? 그 똑똑하고 잘난 체하던 기자들은 다 어디 갔었을까. 만약 한국말로 물어보았다면 오바마는 그 기상마저 칭찬하였을 것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배가 고파도 배부르다고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이 말해야 할 때에는 아무 말도 못한 꼴이 되었다. 예의범절을 따지는 사람들이 불의를 보면 못 본척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항상 남의 눈치만 보면서 자신을 올바르게 표현하지 못해본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그러나 상대방에게 예의범절을 지켜 가면서 표현하는 것은 훌륭한 대화의 기술이다. 이순신 장군의 검에 새겨진 나아갈 때와 멈출 때를 아는 것처럼, 말을 해야 할 때와 참을 줄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내 것들 > 산문, 수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는 삶의 시작이요 아버지는 삶의 끝이다.   (0) 2015.05.01
거북이와 토끼  (0) 2015.05.01
머피의 법칙  (0) 2015.05.01
토끼와 거북이  (0) 2015.05.01
미륵산 가는 길  (0) 2015.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