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어디까지 왔나
요즘 들어 인문학에 대한 열풍이 대단하다. 그것은 정부에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것의 중심에 인문학이 있다고 강조한 후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대통령은 문화융성위원회를 별도로 만들었으며, 그것으로부터 나라가 성숙하고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적 토대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문화적 토양을 일구고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거기에 인문정신문화가 근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니 인문학이 제 이름값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인문학이 강조되고는 있으나,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체감 정도를 보면 아직도 인문학에 대한 의식 자체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현실 경제에 필요한 공업계나 경상계는 그래도 취업이 되는 편이나, 인문계열은 비좁은 자리에 취업이라는단어가 생소하게만 들린다. 따라서 대학에서도 인문학에 대한 강의를 취소하거나 아예 그런 학과를 폐지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국공립대학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립대학은 자체 생존이 가능해야 하므로 취업이 안 되는 학과에 대한 눈길이 곱지 않은 것도 수긍이 가기는 한다.
정부에서는 인문학을 강조하지만 일선에서는 인문학의 도입이 아직 안 되고 있으니, 현재까지는 구호일 뿐이며 전시행정용 보고서일 뿐이다. 그렇다고 모든 과목에 우선하여 인문학을 앞세우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먹고 마시며 쉬고 자는 것 외에도,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까지 무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 몸이 건강하려면 팔만 혹은 다리만 건강하다고 해서 내가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어느 한 쪽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인문학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인문학이 보급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그 해답은 인문학을 하면 당장 먹고 사는 게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인문학이 먹고 살기 힘든 분야가 되었을까. 그것은 지금까지의 우리 현실이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으로, 하루아침에 변화될 문제가 아니다.
이공계나 상경계를 하더라도 인문학이 밑받침이 되지 않고는 제대로 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선 눈에 보이는 현실 결과만을 추구하다보면 인문학이 자칫 간과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이 쌓여 오늘의 인문학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문학을 하면 취업이 잘 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그런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것은 어느 개인이 노력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공부한 학생들을 우선 취업을 시킨다든지 혹은 같은 일을 하면 보다 우월한 대우를 받는다든지 하는 등의 처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이 살아오면서 많은 이름을 남겼지만, 어떤 사람의 이름이 현세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 이름을 들어보면 성현 혹은 성인이라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예수와 석가를 비롯하여 공자, 맹자 혹은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지금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것은 역시 사람이 먹는 것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라는 증명이다. 그러나 이렇게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이 강조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국가를 운영하는 혹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현실 정치에 대한 정책의 부재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 제도가 그렇고 조직이 요구하는 내용이 그러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1890년에 설립하여 1929년부터 2000년도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무려 88명이나 배출한 시카고대학이나 금융의 연금술사 조지 소로스, 1,093개의 특허를 따낸 발명왕 에디슨, 전교 꼴지 출신의 아이작 뉴턴과 윈스턴 처칠의 실화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주는 일화이다. 또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같이 할 수 있다면 자신의 회사가 가진 모든 기술을 그것과 바꾸겠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 역시 인문학이 없다면 나도 없고 컴퓨터도 없다는 말을 했다. 기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류가 존재하는 마지막까지 같이 가는 것이므로, 현인들의 사상이 고전으로 오래토록 남는 것처럼 인간 삶의 근본을 잘 이해하는 것이 바로 경영에서 성공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인문학은 눈요기하는 학문이 아니라 잘 먹고 잘 사는 학문이라는 결론이 선다. 그러기에 인문학을 이끌어가는 정책이 더욱 절실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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