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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예배

꿈꾸는 세상살이 2015. 8. 9. 17:36

 

교회와 예배

영산연구원/ 서울서적/ 1993.02.20/ 163쪽

교회에 대한 정의를 하고 있다. 교회란 하나님의 성전이며 혹자는 예수님 자체라고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도 교회를 자신이라고는 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양육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다만 예수님은 교회의 우두머리와 신도는 가지라 하였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바른 인도자가 되며 길잡이로서 역할을 한다는 뜻이며, 성도들은 그 안에서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포도나무가 되며 성도는 가지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초기 기독교는 구교 즉 카톨릭에서 분종되었는데, 당시는 구교에서 교회를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것에서 잘못이 시작되었다. 그러니 그 안에서 설교를 하고 양육을 하는 자 즉 신부가 하나님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구교가 너무 많은 권력과 역할을 하게 되어 점차 변질되더니 드디어 타락하게 되는 순서를 밟게 된 것이다.

캘빈의 종교 개혁 이 후에도 이와 같은 현상은 계속되었다. 일부는 교회의 역할에 어떤 권위를 주어야 한다는 의견과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자로서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대립된 것이다. 이로써 신교는 점차 많은 파종으로 분파되었다.

또한 예배 역시 중요한 것이다. 신에게 드리는 제사가 성도와 함께 신을 바라보며 드리는 자세에서 사제가 성도를 바라보면 신을 등지고 드리는 예배로 바뀐 것도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구체적으로 설교에 있어서도 불신자를 설득하고 포교하는 입장에서 하는 설교부터 신앙인에게 좀 더 자세하고 명확한 교리를 설명하는 설교와 함께 여러 목적에 따라 다르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세는 많은 성도를 끌어 모으고 교세를 확장하기 위하여, 이들 목적에 따라 명확한 설교가 이루어지지 않고 오로지 쉽고 편리한대로 행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성도들을 타락시키고 더 많은 성도를 모으는 즉 중생을 구원하는 길은 멀어질 것이다. 오죽하면 사제가 직업적인 목적으로 탄생한다고 할까 하는 정도가 된 세상이다.

나는 이 책과 같은 제목의 문학적인 책을 보겠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으나 결국은 종교적인 책을 보고 말았다. 이것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정된 일이라면 그것 또한 아주 잘 된 일이라 생각한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이런 종교적인 책을 읽었을까 생각하니 사서가 잘못 골라준 책이라 하더라도 아주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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