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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버지

꿈꾸는 세상살이 2015. 8. 9. 17:38

 

대한민국 아버지

이중원/ 다산초당/ 2005.06.10/ 215쪽

 

대한민국의 아버지라는 책이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아버지가 없는 국가는 없다. 그런데 왜 하필 대한민국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특수성이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쇄국정책을 폈던 조선시대를 거친 후 무력을 앞세운 일본의 강점기를 거쳐야 했다. 그리고 온갖 고초를 겪은 후 피값으로 얻어낸 독립을 제대로 만끽하지도 못한 채 다시 한국전쟁이라는 동족간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어렵사리 휴전이 성립되었지만 전쟁이 완전히 멈춘 상태가 아니라 특수 유격대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서 여러 해 동안을 소탕작전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아버지들이 겪었던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편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그간의 고통이 사라지는가 했는데 다시 찾아온 것은 국제통화기금의 요구에 의해 원치 않게 쓰라린 처방을 받았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하여, 포도청인 목구멍에 밥을 넣기 위하여, 자식들 입히기 위하여 노력했던 아버지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는 고통을 당했다. 이런 아버지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쓰라린 경험을 가진 아버지들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은 슬픈 그러나 말 못할 자화상이 되었다. 그간의 경제적인 측면 외에 문화적으로도 유교 사상에서 효도와 충성을 다하다가 지금은 너무도 급격하게 변해버린 개인주의 그리고 자기중심적 사회에서 아버지들이 더 이상 서 있을 공간이 없어진 상태다.

이런 아버지들은 겉으로는 웃어도 속으로는 울고 있으며, 입가에는 미소가 흘러도 목구멍에서는 피눈물을 삼키고 있다. 무엇이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할 수 없지만 우리의 문화에서 그렇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이 전쟁이나 내전을 겪지 않은 나라가 없으며 그곳에 아버지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는 우리나라의 아버지들과는 또 다른 이면을 보인다. 물론 부정이나 가족 간의 사랑이 다르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네는 효도와 충성심 그리고 동기간 우애와 장유유서 및 부부유별의 문화에서 오는 아버지들의 몫이 다르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많은 책들이 가정 그리고 아버지를 다루고 있지만 아버지를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다. 제 아무리 잘 묘사하였다 하더라도 아버지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아버지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현재도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를 설명하는 작가 역시 어떠한 아버지로 살아왔는가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작가 이중원이 지은 것으로 자신의 아버지 혹은 자신을 아버지의 입장에서 표현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장편 소설도 아닌데, 이는 자신이 보아온 이 땅의 아버지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아버지들이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짤막하게 17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나는 어느 유형에 속할까 생각해보게 된다. 아니면 우리 아버지는 어떤 유형에 속했을까 되돌아보게 한다. 어쩌면 이런 17가지 아버지 유형 모두를 합하여 내가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혹은 그렇게 나의 아버지가 살아오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가장이면서 가족의 한 구성원이고, 경제적 책임을 지는 동시에 가정교육의 중심이었고 가문의 대표선수였다. 또한 정신적 지주이면서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자식들에게 비치는 아버지는 어떨까. 혹시 물리적인 방패막 혹은 경제적 수단으로서의 방편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흔한 말로 기러기아빠는 자식 그리고 아내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주고 또 주는 아버지를 말한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단 어느 것 한 가지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가 없다. 오로지 자식들 그리고 아내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친다. 삶의 여유는 고사하고 개인적인 취향이나 소질도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이든 하기 싫은 일이든 따지지도 않는다. 내가 집을 팔아야 할지 아니면 전세금을 빼야 할지도 내 의지대로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순전히 가족을 위하여 당연히 그래야 하는 통과의례에 불과한 것이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이런 사회에서 나의 아버지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미로 들린다. 미처 아버지를 아버지답게 대해주지 못했다면 내가 어떤 잘못을 했었는지 돌아보자는 의미도 시사한다. 아버지는 오늘도 아무 말없이 그저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 호기롭게 술을 마시고 큰 소리를 치지만 사실은 내일 땟거리가 없어 걱정하는 아내를 제대로 쳐다보기 민망하여 애써 외면하면서 술을 마시는 사람이다. 아이들의 학교에 바빠서 갈 수 없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사실은 아이들이 기죽을까봐 일부러 가지 않을 구실을 만들기에 바쁜 사람들이다. 비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학교에 갔지만 차마 여러 아이들 앞에서 만날 수가 없어 누군가가 전해달라고 해서 심부름 왔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돌아서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런 아버지를 두고 돈을 잘 못 벌어온다고 손가락질하며 욕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런 아버지를 두고 몸이 불편하여 귀찮기만 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작 아버지가 병들어 침대에 누워있어도 좋으니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고 비는 사람은 누구인지 아는가?

자식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이 땅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머니들이 설령 이름뿐인 남편이라 하더라도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고 그토록 소원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그 이름만으로도 훌륭한 선생님이고 훌륭한 사회인이며 훌륭한 가족 구성원인 것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는 그 이름만으로 벌써 이름 값을 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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