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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한옥에 살다

꿈꾸는 세상살이 2015. 8. 17. 23:52

 

인문학, 한옥에 살다

이상현/ 채륜서/ 2014.12.05/ 255쪽

이상현 : 서울시립대졸업,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입사 후 집과 인연을 맺었고, 소설을 쓰겠다고 퇴직하여 한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구체적인 한옥 전문가로 나서기 위해 목수를 자처하여 현장에서 배웠고, 저서로『즐거운 한옥 읽기 즐거운 한옥 짓기』,『우리 한옥 고고씽』이 있다. 최근에는『이야기 따라가는 한옥 여행』,『한옥과 함께 하는 세상 여행』을 냈다. 근래에‘한옥과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강의도 하면서‘한옥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집을 짓는 목수가 인문학 책을 냈다는 라디오 인터뷰를 들은 후 불현듯 이 책이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인문학에 대한 열풍이 부는 가운데 목수가 책을 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책을 펼치는 순간, 단순한 목수가 아니라 한옥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내가 저자를 잘못 판단한 것이다.

서양의 집은 대체로 벽이 두껍고 천장이 높다. 그것은 구조상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벽을 두르고 그 위에 지붕을 얹어 집을 이룬다. 그림을 그릴 때에도 땅위에 벽을 그리고 지붕을 그린다. 우리나라는 하얀 종이 위에 먼저 지붕을 그리고 다음에 기둥을 그려 완성한다. 이처럼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서양의 집과 우리 집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서양의 집은 온돌이라는 난방 구조가 없으니 집안에 불을 때서 온도를 높여야 한다. 그러기에 천정이 높아야 하고 실내 공간이 넓어야 한다. 반면에 벽을 낸 후에 지붕을 얹었으니 밖의 채광을 많이 받고 싶어도 창을 크게 낼 수가 없다. 최대한 넓히고 넓힌 것이 바로 현재의 주택 구조인 것이다. 거기다가 처마가 있으면 빛을 차단함으로 처마가 없이 그냥 밋밋한 벽이 바로 외부로 노출되는 형식이다.

반면에 우리는 기둥을 세운 후 아직 벽을 만들지 않았어도 지붕을 얹을 수 있으며, 채광은 사면 모두가 완전 개방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히려 은근한 채광 즉 많은 채광을 줄일 수 있도록 그림자를 만드는 처마가 발달하였다. 또한 온돌이라는 특수한 난방 방식은 천정이 높을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낮으면 낮을수록 열효율이 좋아 초기의 집들은 대개가 낮은 형태를 띠기도 한다.

서양은 난방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았을 시절에는 서로의 체온으로 살아가야 하였기에 사람은 물론 동물까지도 사람과 함께 기거하는 형태를 보였다. 이로써 애완동물의 역사가 서양에서 더 깊은 이유도 된다. 예수가 마굿간의 구유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우리 방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시 유럽은 동물과 같은 공간에서 기거하였다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비위생적이고 비효율적인 생활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은 모르겠으나 가축의 체온으로 난방을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단지 온돌이라는 구조가 그것을 해석하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축을 부엌 한 켠에 들여와서 외양간을 짓기도 하였다. 이것은 소의 체온을 이용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가축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바로 인본주의와 동물 사랑에 대한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

물론 집이라는 건축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서양은 집 안에서 모든 일을 치러야하기에 넓은 거실 혹은 넓은 방이 필요하였다. 특별한 날에 파티를 하더라도 별도의 넓은 거실을 두어 활용하였으며, 문을 닫으면 모든 것이 단절되고 혼자만의 공간이 되는 구조를 이룬다. 이런 경우 건물에서는 서로 대칭이나 건물 자체의 조화로 건축물을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반대로 우리는 대청과 마당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있어 그곳에서 일상의 행사와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마당이 하나의 주거의 일부분이 되었으며, 집을 지으면 으레 마당이 따르게 하였다. 정원 역시 자연과 어우러지고 인근 야산이나 개울 또는 논밭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서까래 혹은 대들보가 자연 상태에서 굽어진 그대로 사용한 것은 일견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으로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실천하고 있는 철학이다.

일본의 정원이 아기자기하면서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공으로 만든 것으로써 그것은 자연과 아주 거리가 먼 것이다. 마치 자연을 다스리는 사람이 조화를 부려 만든 것처럼 연상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연 혹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며 우선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군국주의가 발전하였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인근의 중국은 우리와 다른 구조다. 이들은 집안에 가축과 함께 기거하는 형태를 보이면서 일부는 온돌이라는 것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러기에 중국은 외형적으로 서양과 가까우며 내용적으로 우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서양의 미학 기준에서 보면 한옥은 한 마디로 집을 짓다 만 혹은 집이라고 할 수 없는 조잡한 상태를 이룬다. 우선 좌우 대칭이 맞지 않으며 들어가고 나가는 위치가 어울리지 않는다. 또 벽이 웅장하거나 일률적인 면도 없으며, 방에서 방으로 건너가는 혹은 마당에서 방으로 가는 것들이 모두 규칙적이거나 자연스럽지 않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모두 통틀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벽이 얇으니 바깥의 소리가 다 들리며 바람이 통하는 것은 자연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별도의 창이 없어도 문이 바로 창의 역할을 함으로 채광은 충분하며, 천정이 유달리 높아야 할 이유가 없으니 난방의 효율성이 높아 경제적이다. 가축과 함께 기거하지 않으니 위생적이며 사람의 존엄성이 포함된다.

이런 것들이 바로 한옥의 장점이며 서양의 집과 다른 면이다. 한옥은 어딘지 어설퍼 보이지만 사실은 완벽하게 완성된 집이며, 대칭이 맞지 않아 기울어진듯하지만 사실은 수백 년을 견디는 우수한 건축물이다. 마당에서 부는 바람이 토방을 거쳐 문풍지로 가는 것은 바람의 흐름을 고려한 과학적인 구조이다. 처마를 통해 여름 뙤약볕을 피하면서 겨울철 볕을 흡수하는 과학으로 승화시켰다. 부엌에서 방으로 연결되다가 대청이라는 빈 공간을 둔 것은 채움과 빔의 조화이며, 비어 있는 마당은 세간이 들어있는 방과의 관계에서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조화를 이룬다.

한옥이 어떻게 인문학이 될 수 있을까는 다른 각도에서 보아야 한다. 서양의 미적 감각 기준에서 보면 한옥은 사실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이 한옥을 보면서 좋다는 말을 한다. 이것은 자기들의 보는 각도에서는 잘못 된 것이지만 여러 방면에서 검토한 결과 한옥이 아주 훌륭하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여기서 한옥의 인문학성을 찾을 수 있다. 남들이 보기에 잘못 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훌륭하다는 것, 남들이 모두 원하고 바라는 것을 갖추고 싶지만, 힘들고 어렵더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행동하는 것은 인문학이 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한옥이 인문학이 되는 것이다. 자연과의 조화, 집이 자체의 미적 가치 존재보다 사람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할 것인가의 집으로서의 역할, 온도와 습도의 조절이 용이하며 채광과 난방이 효율적인 것들이 모두 인문학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방 하나와 부엌 혹은 마당 하나와 대청 등 모든 것이 조화롭게 연결되는 것은 서양의 집인 독불장군의 존재 가치에서 한옥의 인문학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것의 가치를 인정하여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부여한 것,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요소 혹은 모든 공간과 서로 교통하는 것들이 바로 인문학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옥을 서양의 미학 가치 판단 기준에서 볼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통 한옥에 대한 가치 부여에 따른 판단 기준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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